전기로 뛰는 심장, 한층 농밀해진 교감능력. 사이보그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2013 국제자동차전시회’를 관통한 주제다. 각 업체가 그린 미래 자동차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신차에 스민 기술의 흐름은 크게 ‘전기 이동수단(Electric mobility)’과 ‘연결성(Connectivity)’의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었다.
이번 모터쇼엔 유럽의 위축된 경기가 고스란히 투영됐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차분했다. 흥미 위주의 볼거리와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올 법한 컨셉트카도 드물었다. 신차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S클래스를 빼면 대부분 중소형이었다. 공교롭게 볼보와 푸조는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요란하지 않고 점잖게 다듬은 신차를 무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35개국 1091개 업체, 159대의 신차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로 불리는 이 전시회의 공식 명칭은 독일어 머리글자를 딴 ‘IAA(Internationale Automobile-Ausstellung)’. IAA의 역사는 116년 전 시작됐다. 1897년 베를린에서 처음 열렸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VDA)가 주최하는데, 홀수 해엔 프랑크푸르트에서 승용차와 부품, 짝수 해엔 하노버에서 상용차를 전시한다.
올해 IAA의 표어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쇼(The World’s Most Auto Show)’. 유럽 자동차 공업의 중심이자 세계 자동차 기술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자신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슬로건이다.
올해 IAA는 23만㎡의 공간에 35개국, 1091개 업체가 참가해 부스를 꾸몄다. 159대의 신차가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외국 업체의 비중은 42%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아시아 업체가 40%를 넘는다. 19%였던 2011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취재 열기도 더없이 뜨거웠다. 전 세계 96개국에서 7500명의 저널리스트가 사전에 온라인으로 등록했다.
전통적으로 IAA에선 터줏대감인 독일 업체의 입김이 강했다. 올해 역시 그랬다. 그러나 텃세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보단 절박함에서 비롯된 몸부림이 느껴졌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 때문이다. 기대 이상 빠르게 활기를 되찾고 있는 미국 자동차 시장과는 대조적이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승용 신차 시장의 규모는 7100만 대다. 예상대로라면 세계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보다 3%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의 약진도 계속된다. 1520만 대로 무난히 1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역시 1520만 대로 5% 성장이 예상된다. 반면 서유럽은 1120만 대로, 전년 대비 5%가량 위축될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전기차
IAA에서 전기차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었다. 생생한 현실이었다. BMW의 전기차와 시트로앵의 하이브리드 카, 현대차의 연료전지 차가 전시장 내에서 셔틀로 등장했다. 이들은 숨소리, 쇳소리 한 번 뻥긋 않은 채 사람들을 각 전시관으로 실어 날랐다.
2007년 이후 세계 전기차 시장의 규모는 해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내년 말까지 16개 차종의 순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2020년까지 독일의 전기차 시장은 100만 대 수준까지 커질 전망이다. 이를 위해 독일 자동차 업계는 향후 3~4년간 대체동력원 개발에 수십억 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이번 전시의 테마를 아예 ‘e-모빌리티’로 삼았다. 마틴 빈터콘 폴크스바겐 회장은 “내년까지 14개 차종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로 내놓고, 2018년께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고 선언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이번에 100% 전기차인 폴크스바겐 ‘e-업!’과 ‘e-골프’, 하이브리드카인 아우디 ‘A3 e-트론’, 포르셰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와 ‘918 스파이더’ 등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e-업!’은 전기차의 상용화와 대중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였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165㎞까지 달릴 수 있고, 최고 속도 역시 시속 130㎞로 고속도로 주행을 할 수 있다.
포르셰 918 스파이더는 하이브리드 수퍼카의 미래를 제시했다. V8 4.6L 608마력 엔진과 전기모터를 짝지어 총 887마력을 낸다. 여기에 카본파이버로 차체 무게를 줄인 결과는 초현실적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을 2.8초에 마치고, 최고시속 340㎞를 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연비다. 유럽연합 기준 29.4~33.3㎞/L를 기록했다.
BMW는 세계 최초의 프리미엄 전기차 ‘i3’(아래 사진)를 선보였다. 170마력을 내는 전기모터를 갖춰 한 번 충전으로 최대 160㎞를 달린다. 에어컨 작동을 제한하는 ‘에코 프로 플러스’ 모드로 달릴 경우 주행가능 거리는 200㎞까지 늘어난다. i3는 내년 5월 국내에 수입될 예정이다. BMW는 늘씬한 자태의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도 함께 선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V6 3.0L 터보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한 ‘S50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공개했다. 외모와 덩치는 신형 S클래스 그대로지만 연비가 33.3㎞/L에 달한다. ‘B클래스 일렉트릭 드라이브’도 내놨다. 출력 100㎾의 전기차로 시속 160㎞, 최대 200㎞까지 달린다. 현대 ‘ix35(투싼) 수소연료전지차’와 기아의 하이브리드 컨셉트카 ‘니로’도 눈길을 끌었다.
비약적으로 향상된 정보교환 능력
IAA에 선보인 신차들의 두 번째 특징은 ‘연결성’이다. 자동차가 이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에 ‘심(SIM) 카드’를 꼽는 순간, 스마트폰과 인터넷 공유기로 변한다. 운전자는 온라인으로 늘 자동차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주차된 차의 각종 기능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각종 정보를 보다 빠르고 이해하기 쉽게 전해준다. 언덕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미리 알 수 있다. 교통상황을 미리 파악해 우회할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의 내비게이션 기능과 연결돼 앞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를 감안해 기어도 알아서 바꿔준다. 운전자의 부담은 더욱 줄어든다. 차선을 바꾼다든지,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주차도 대신해준다. 이런 연결성은 더 높은 수준의 안전과 편안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동화된 운전(자율주행)에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S500으로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100㎞ 구간의 무인 주행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연결성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신차 시장이 해마다 36%씩 성장해 2016년엔 지금의 4배인 2억10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영역도 기존 고급 차에서 대중 차로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 모델을 기반으로 한 신차들도 대거 공개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기함인 S클래스를 완전히 바꿔 선보였다. 차체 안팎 디자인과 성능, 각종 기술 모두 혁신으로 가득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BMW는 ‘4시리즈’를 공개했다. 기존 ‘3시리즈 쿠페’의 새 이름이다.
푸조는 2014년형 308과 3008, 5008을 선보였다. 차종 이름의 맨 뒤 숫자가 바뀌지 않았으니 세대교체까진 아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로 봐도 좋을 만큼 외모 변화가 크다. 앞서 밝혔듯, 푸조 특유의 사나운 눈매를 부드럽고 담담하게 다듬었다. 렉서스는 차세대 소형 SUV의 힌트를 담은 컨셉트카 LF-NX를 공개했다. 공격적이고 입체적인 외모가 더없이 자극적이다.
현대차는 기아 모닝(현지명 피칸토)과 동급인 i10(아래 사진)을 앞세웠다.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유럽에서 소화한 현지 전략 차종이다. 2008년 출시된 i10의 2세대째로 이전보다 덩치를 키우는 한편 보다 매끈한 디자인으로 안팎을 감쌌다. 직렬 3기통 1.0L와 1.25L의 두 가지 가솔린 엔진을 얹는다. 기아차는 신형 쏘울을 유럽에 처음 선보였다.
김기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