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엔딩(Happy ending); 영적승리 “주님의 전사다운 삶”
2026.10.3.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욥 42,1-3.5-6.12-17 루카 10,17-24
오늘은 4대 국경일중 하나인 개천절 제435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도 상징하는바 깊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이 땅에 하늘 은총이 가득 내렸다는 뜻입니다. 사실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이라 함이 옳습니다. 개천절 노래 가사 1절 단군도 하느님 아버지를 상징한다 싶습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한 아버님, 하느님의 은총으로 앞으로의 이 나라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 대로 결국은 <해피엔딩>,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지 이제는 하느님의 가호아래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교성인들이 이 나라의 수호자들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 전한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잘 될 것입니다. 늘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어제는 지인 두 분에게 반가운 소식에 준 답 글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통장 면접 합격 통보 받았습니다. 6일날 임명장 받고 업무시작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느님께 영광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성실히 준비했던 분으로 꼭 하고 싶었던 통장 합격했다는 해피엔딩의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또 한분의 반가운 소식입니다.
“조카 요아킴이 경찰 실기 시험 치르고 합격했다고 전화 왔습니다. 최종면접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기도해 주시고 용기주심 감사드립니다.”
“최종면접 합격하리라 믿습니다. 결국은 해피엔딩, 잘 될 것입니다.”
가을은 해피엔딩 축제의 계절, 수확의 계절입니다. 신고 배 수확이 끝난 배 밭이 흉작이라면 <텅 빈 허무>의 쓸쓸하고 허전한 가을이겠습니다만, 반대로 수도원의 배 밭은 근래 보기 드문 풍작으로 <텅 빈 충만>의 해피엔딩의 행복한 분위기입니다. 좋은 기후를 주신 농부 하느님의 공로가 절대적입니다. 가을 인생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 가을 이때쯤의 두 짧은 시도 생각납니다.
“당신의 기쁨은 나의 기쁨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기쁨과 행복은 나의 존재이유”<존재이유;1998.10.3.>
28년전 개천절에 쓴 시입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바 물론 주님이요 이런 고백의 삶이라면 하루하루가 영적승리에 해피엔딩의 삶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시입니다.
“겨울, 봄, 여름
인고의
기다림 끝에
피어난 가을 들꽃들
한결같이 깊고 은은하다”<가을들꽃;2000.10.1.>
가을축제의 주인공들인 해피엔딩, 영적승리를 상징하는 <가을들꽃들>이요 이런 가을인생을 맞이하는 영혼들의 구원의 향기 역시 <깊고 은은할> 것입니다. 바로 그 좋은 모범이, 해피엔딩, 영적승리의 참 좋은 모범이 제1독서의 욥이요 복음의 제자들과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지난至難했던 인고忍苦의 시험을 승리로 끝낸 인동초忍冬草같은 욥의 인생이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과 사탄과의 대결에서 욥이 승리함으로 하느님의 승리가 되었고 말 그대로 욥은 해피엔딩의 성공적 인생이 되었습니다. 욥의 승리에 결정타가 된 것이 마지막 겸손의 절정인 참회입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서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참된 참회의 삶이라면 해피엔딩, 영적승리는 보장됩니다.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 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전에 소유하였던 것을 갑절로 더해 주셨습니다. 그 뒤 욥은 백사십년을 살면서 사대에 걸쳐 자식과 손자들을 보았고, 늘그막까지 수를 다하고 죽었으니, 말 그대로 해피엔딩,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분위기는 어제 회개하지 않는 세 고을들에 불행을 선언하는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리떼 세상 한복판에 파견되었던 제자들은 영적승리에 기뻐하며 전과를 보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복종한다는 보고에 주님은 이들의 사기를 더욱 고무시켜 줍니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영적전쟁을 수행하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제자교육이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한지 깨닫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이어지는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바치는 감사기도를 통해 <철부지들>로 계시되는 우리의 복된 신원입니다. 역설적으로 큰 지혜를 지닌 거룩한 바보들이 우리 제자들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 제자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흡사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을 두고 바치는 감사기도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큰 지혜를 지닌 거룩한 바보들이 우리 제자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주님의 은혜로운 독보적인 신원과 우리의 신원을 정확히 밝혀주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결정적 열쇠는 예수님뿐임을 배웁니다. 그러니 예수님과의 <우정의 여정>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배웁니다. 예수님은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영적승리에 따른 해피엔딩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10,23-24).
주님은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영적승리의 해피엔딩을 내다보며, 앞당겨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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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욥의 승리에 결정타가 된 것이
마지막 겸손의 절정인 참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