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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남(좌)은 '미래'를 책임져야 할 포수, 정상호는 '현재'를 이끌어 나갈 포수다.
올 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는 3년만에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었다. 영입 대상은 SK 와이번스에서 자유의 몸이 된 포수 정상호(34). 지난 2012시즌을 마치고 정현욱(38)을 품에 안은 이후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LG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고 볼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LG가 30대 중반의 베테랑 포수를 4년 간 32억원의 조건에 영입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상호의 포지션이 LG의 취약점, 포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상호는 올 시즌 LG의 거의 유일한 전력 보강 요소가 됐다.
LG가 포수난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을 끝으로 조인성(41)이 FA 자격을 얻어 SK로 떠난 후부터였다. 조인성을 떠나보낸 SK에서 또 다른 FA를 영입했다는 점이 공교롭다. 2012년부터 올 시즌까지 LG는 매 시즌 주전포수가 바뀌고 있다. 벌써 5년 째다.
◆ 김동수와 조인성이 책임진 20년
"LG 역사에서 포수가 약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는데"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김정민 배터리 코치가 한 말이다. 김 코치의 말대로 LG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2000년대까지 다른 포지션은 몰라도 포수 걱정은 없었던 팀이다. 김동수(48, LG 2군 감독)와 조인성 2명이 오랜 시간 굳건히 안방을 지켰기 때문이다.
김동수는 신인이던 1990년부터 주전 포수로 뛰며 LG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그해 신인왕과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모두 김동수의 차지였다. 1999년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기 전까지 김동수는 LG와 함께 선수 생활의 황금기를 보냈다.
김동수의 이적 후 LG 안방마님의 역할은 조인성의 몫이었다. 국가대표 출신 조인성은 1998년 LG에 입단해 김동수가 이적한 빈자리를 훌륭히 메웠다. LG가 아직 쓸만했던 FA 김동수를 잡지 않은 이유도 조인성이라는 걸출한 후임 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인성은 10년 이상 LG의 안방을 책임졌다.
김동수에서 조인성으로 이어지는 이상적이고도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낸 LG. 문제는 그 이후였다. 차세대 안방마님의 부재는 결국 FA 정상호를 데려오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볼 땐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외부 영입이었다.
◆ '조인성 이후'를 대비한 LG의 포수 육성 의지
LG가 '조인성 이후'를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2008년 입단한 김태군(27)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김태군은 2012년 NC 다이노스의 신생팀 특별지명을 받고 줄무늬 유니폼을 벗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지만, 당시로는 이해못할 선택도 아니었다.
신인 지명에도 LG의 포수 육성 의지는 잘 드러난다. 전면 드래프트로 펼쳐진 2012년 신인 지명회의에서 대졸 포수 조윤준(27)을 1라운드 지명했고, 2015년에는 부활한 1차지명 카드를 고졸 김재성(20)에게 행사했다. 조윤준과 김재성 모두 공격형 포수로 큰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윤준은 대학 시절 받은 무릎 수술로 군면제를 받았다는 점이 매력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1군에서 뛸 기회도 비교적 많이 주어졌다. 김태군은 조인성의 백업 포수로도 활약했고, 조인성 이적 후에는 주전 경쟁도 펼쳤다. 그러나 기대보다 성장세가 더뎠다. NC로 넘어간 뒤 기량이 일취월장했지만, LG에 있는 동안은 유망주의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조윤준도 신인이던 2012년 후반기부터 1군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해 2013년에는 개막 엔트리에 포함돼 시즌 초반 1군 백업 포수로 뛰었다. 하지만 조윤준 역시 주전 자리를 꿰찰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트레이트를 통해 영입한 현재윤(37, 은퇴)과 최경철(36), 그리고 포수 경험이 거의 없던 윤요섭(34, kt)이 돌아가며 주전 마스크를 썼다. 차세대 포수의 등장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던 흐름. 지난해 유강남(24)이 최경철의 부상을 틈타 주전으로 올라선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 유강남은 최경철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 LG 포수 십년대계, 양상문 감독의 구상
올 시즌 개막전 선발 포수는 유강남이었다. 정상호는 개막 후 9번째 경기에 처음으로 선발 마스크를 썼다. 비싸게 영입한 FA 선수를 벤치에 앉혀두는 것은 부담스러운 선택. 정상호의 몸상태가 선발로 뛰기에는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다.
처음부터 LG는 정상호에게 많은 경기 출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정상호가 유강남의 짐을 덜어 안방을 안정을 도모하고 그 안에서 유강남이 경험을 쌓아 성장하는 것이 양상문 감독, 그리고 정상호의 영입을 주도한 백순길 단장으로 대표되는 LG 구단이 그린 그림이었다.
양상문 감독은 개막 전, 올 시즌 포수진의 운영 방향을 설명하며 '향후 10년'을 언급했다. 정상호의 그늘 아래에서 커나갈 유강남, 2017년 9월 경찰청 복무를 마치고 복귀할 김재성이 기대치를 충족시킨다는 전제 아래 "앞으로 10년 간 포수 쪽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LG 포수진의 군입대 관리가 양상문 감독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강남이 상무에서 제대해 1군 선수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잠재력이 풍부한 김재성이 2년 차 시즌을 앞두고 경찰청에 입대했다. 2차 드래프트로 지명한 윤여운(26)도 경찰청 출신의 군필자다. 조윤준은 면제. 공백 없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자원들이 꽤 여럿이다.
주목할 점은 차세대 포수의 선두주자 유강남의 현재 위치다. 유강남은 지난달 2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 근 한 달이 지나도록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 사이 LG의 1군 안방에는 최경철과 정상호 등 베테랑들이 자리를 잡았다. 리빌딩 중인 팀의 상황과 배치되는 모양새다.
◆ 유강남의 2군행, LG 안방은 '반복과 진화'의 기로
양상문 감독은 유강남을 2군으로 내려보내며 그의 타격 부진을 이유로 꼽았다. 포수로서의 안정감도 아직은 정상호, 최경철에 비해 부족하다고 보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유강남 2군행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FA로 영입한 정상호의 존재다. 정상호가 없었다면 유강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군 엔트리를 지켰을 것이다.
'베테랑' 정상호와 최경철도 LG에 꼭 필요한 존재다.
그렇다고 유강남의 2군행이 잘못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현재 유강남은 2군의 주전 포수로 뛰고 있다. (윤여운과 박재욱이 백업. 조윤준은 옆구리 부상으로 재활군에 머무는 중) 퓨처스리그에서도 경기를 통해 배우는 점은 많다. 공수에 걸친 교정도 진행 중이다. 조만간 유강남을 1군으로 불러올릴 가능성도 높다.
김동수 2군 감독은 "아무래도 아직 (유)강남이는 프로에서 10년 이상을 뛰어온 (정)상호나 (최)경철이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린 뒤 "계속 주전으로 경기에 내보내면서 타격 쪽에서는 스윙을 좀 작게 했고, 수비에서도 2루 송구 동작을 손보고 있다"고 최근 근황을 전했다. '명포수 출신' 김동수 감독의 지도는 유강남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LG의 안방은 기로에 서 있다. 젊은 포수들에게 기회를 줬지만 베테랑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을 반복하느냐, 확실한 차세대 안방마님을 탄생시키며 진화하느냐의 갈림길이다. 현재 1군 엔트리를 기준으로 LG 포수진의 연령대는 조인성과 차일목(35)이 버티고 있는 한화 이글스에 이어 가장 높다.
십년대계는 세워졌다. 다음은 세부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갈 차례다. 김동수-조인성 시대를 모두 경험한 김정민 코치는 "정상호의 가세로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 여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끊어져 있는 LG의 명포수 계보를 다시 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