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그 때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 그 때가
있기에 또한 그것들이 쉬 지어지지않고 기억되며
그 시간과 이름을 달고 어디서든 자신의 이름을 달고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그제가
춘분(春分)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이 땅도 이제 사계(四季)가 자주
그 뚜렷했던 계절의 모습을 자주 놓아버리곤 한다
거기다 오늘의 봄은 사람도 자연도 넉넉했던 여유와
순수의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한해의 시작인 봄의 매무새를 보면 그 해의 운세와
몸무게를 대략은 짐작해볼 수 있다. 사람도 재원의
저장고가 제각각의 개인에 있듯이 자연 또한 그의
자본을 그곳 생태계와 자연이 모두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 봄이 가고나면 무더운 여름이 찾아
올 것이다. 산속에 사는 제가 알던 그분도 계절의
변화에만은 당시에도 이미 누구보다 예민해져 있다고
하신 바 있다
그만큼 그 모든 것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동안 베던 죽침이 선득거리게 될 때까지
그들도 힘겹게 앓는 여름과 서로 위치바꿈 해가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 해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 판에
그러잖으면 어쩌랴!
저 자연의 생리조차 우리 인간이 그리 만들어 온것을
누구에게 원망하며 탓할것이냐는 것이다. 모두
지당하신 말씀이시다. 어쩔 수없이 팔과 다리를 걷어
온몸으로 씨름하다 보면 여름 그들도 때 되면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한다는 것. 산자락에 마타리가 피고
싸리꽃이 피어나면 마침내 구시렁구시렁 대면서도
마른바람이 지나간다고.
언제부턴가
이제는 해마다 겪는 여름철 더위인데
방송과 신문마다 몇년만의 찜통더위라고 줄광고까지 해
호들갑이니 사람들은 기가 질려 더위를 더 탄다는
것이다. 그분은 (여름이 더운것은 당연한 계절의 순환)이
라고 한다 그리고 (식물은 이 무더운 여름에 산소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도 하신다. 그러니 사람도 자연도
아직껏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여름철의 더위를 자신의 생애에서 몇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환경과 현실을 잘 지켜가며 보존해
한층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과 다음 다음의 대(代)를
위한 무형과 유형으로의 저축이랄 수도 있을것이기에,
그분은
우리가 당장 매일 두려워해야 할일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라고 한다. 지나온 시간만 보더라도
이 기상이변은 갈수록 아주 심각해져 가고있는데
전 지구적인 이같은 현상은(석유와 석탄이며 가스)등의
석화에너지인(화석연료)의 사용증가로 그런 기반을 둔
현대문명의 한계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연 스스로 조절하며 균형을 유지해오던 그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 생태계에
대한 너무 지나친 과소비이자 무자비한 폭력이며
수탈이라고 하신다. 또 이 (화석연료)는 사람이 만들지
못할뿐 아니라 한번 쓰면 그것으로 끝인 (재생불가)의
지구 자원이라고 못 박으신다. 따라서
언제 갑자기 고갈될지도 모르는 화석연료에 기대고
무장의 과소비만을 하고 있기에 어느 날 이
(석유와 석탄이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폐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며 이와같이
지속이 보장되지 않는 것들이란 아주 허약하고 위태로운 문명이라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오늘날 선진국에서도 그런 것들의 자원인
광물질이며 무엇들에 서로 혈안이 되어 혹 난장을 치고 있는것은 아닐까?
에너지의 문제는 몇백년, 혹은 몇천년만
살아낼 수 있으면 되는 문제도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의 미사구어나 팔씨름으로서만이 아니라
차라리 조용히 함묵하며 더 지혜로워져야할
보다 구체적이고도 영구적인 안전의 참 실천자들이
제대로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다행이 잘 준비되어온 우리의 것들을 더
제대로로 세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