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운동화 ♡
“엄마와 아버지의 나이 차이는 15살”
늘 자식을 못 낳아 구박받던
엄마 나이 38에 저를 낳았고
그때 아버지 나이는 53살이었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친할머니 집 근처는 가질 못했고
엄마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아픔의 그림자를 끌고
강이 보이는 비탈진 밭떼기를 갈며
저를 키워오셨습니다.
입술을 꼭다문 하늘만 올려다보며
들판을 뛰놀던 내가 13살이 되든
해에 한 세월을 보내고 계셨던
아버지 나이는 육십하고도 여덟이
되셨습니다.
할아버지뻘 되는 아버지는 늦둥이인 제게 입 벌린 가을하늘처럼 웃고
계셨지만 종아리에 화상 흉터가 있어 치마대신
긴바지를 여름에도 입고 다녀야 했던 난, 친구들이 자기와 다른 모습을
보며 수군수군 거리는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 상처가 아버지가 보름날에
짓불을 태우다 그만 내 다리에
옮겨붙은 흔적이었기에...
아버지의 손이 오그라진 것도
그 때라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집으로 들어간 나를 보며 백발 속에 돋아난 검은 머리카락
한 올을 치켜세우시며
반겨주시는 아버지 앞에다 가방을
내동댕이 쳐서 던져놓는 것으로
바람을 돌고 온 아픔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공주님이 왜 화가 났을까?“
“몰라... 말시키지마...”
또 다른 아침이 찾아온 다음날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싫어서 새벽 일찍 학교로 가려다
추수가 끝난 들녘을 따라 아버지가
장에 나가 사온 빨간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보면
다리의 흉터를 보상받는 것
같았기에,
아침을 걸어나가는 내 마음은 언제나 맑음이었습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만 세다가
수업이 끝나갈 무렵
구멍뚫린 하늘엔 억수 같은 비가
운동장을 적시는 걸 바라보고 있는
내게
“정희야, 너거 할아버지 오셨네.“
친구의 빈정거림을 모른 척하고는
슬픔이 강물이 된 거리를
비를 맞고 걸어가던 나에게
“정희야! 비 맞으면 감기든데이
퍼떡 들어온나“
오그라든 손으로,
우산을 손목에 묶어 놓는 아버지가
창피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채
내리는 비와 함께 젖어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난 다시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갈 거니까 그냥 가“
하지도 않을 공부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뒷문으로 빠져나와서 집으로
온 나는 비개인 하늘을 외발로 받치고 서 있는 바지랑대 끝에 앉은 고추잠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에게
“아버지 학교에 오지 말라 캐라
챙피하다꼬“
“니 아버지 못 만난기가?“
밥상에 앉아서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가슴에 묻어둔 채
땅거미 내려앉은 논두렁을
빗줄기 따라 걸어나간 엄마는
마을 표지석 앞에 쪼그리고 앉아
멈추어 서는 버스만 바라보는
아버지를 보며
“정희… 아버지요,
거기서 뭐하십미꺼?“
“우리 정희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아직 안온다 아니가”
“정희는 벌써 왔심더.
그라다가 지병까지 있는데
감기들면 우짤라꼬 이카심미꺼“
거리에 나뒹구는 찬바람과 오랫동안 마주한 아버지는 기침을 계속 해대고 있었다.
“그럼 됐다.
우리 정희가 집에 왔으면 된기제“
그날 아버지는 밤새 기침하는 소리가 건넌방까지 울려대고 있었지만
그 흔한 눈물조차도 내앞에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더 미워,
불을 끄고 잠든 척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는 방문을 열어서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그만 호롱불
아래 앉아서,
당신 딸과의 하루를 새하얀 종이에
적어놓고 계셨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희망띤 얼굴로
환하게 웃고 계신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정희 아버지요,
그만하고 들어와 주무시소“
“내일 아침에 우리 정희 학교 갈때 신고 갈라카먼 좀더 말려야 한데이“
그렇게 아버진 백발 속에 돋아난
검은 머리카락을 아궁이 불 연기에
휘날리며 구겨진 손으로 신발을
말리고 계셨지만,
한편 가슴으론 사랑을 구워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게 뭐꼬?”
새벽녘 별빛이 준 실졸음에
그만 부뚜막에 놓아둔 빨간 운동화
한짝이 떨어져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학교에 가질 않고
울고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괴로움을 혼자 이기는
연습이라도 하는 듯이
장마비에 검정고무신으로 배를 띄워 읍내에 나가서 똑 같은 빨간 운동화를 사 와서는
“정희야! 똑같은 걸로 사왔으니까
퍼떡 신고 학교 댕겨온나“
그런 아버지는 며칠을 앓아누워야
했지만 햇살을 안고 학교로 가는
나의 등뒤로 너의 더 좋은 날은
지금부터라고 기도해 주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뒤에 숨겨진 것들을
알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러 저도
어엿한 엄마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라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신 걸로 준비해 제사상을
차려놓고 늘 앉아계셨던 쪽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아버지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앉은뱅이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하얀 노트를
읽어가던 내눈에 멈춰지지 않는
눈물이 강둑을 허물듯 내려 꽂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손이?.....”
달집태우기를 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세워놓은 장작불 옆에서
놀고 있던 내 다리로 옮겨 붙은 것을 아버지가 맨손으로 움켜쥔
때문이란 것을......
묵묵히 산처럼 품어주신 당신을
원망하고 원망만 하다가 보내드린
못난 딸을 용서해 달라면서
저는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었다는 걸
알아가면서...
* 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