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25. 1. 28. 화요일, 음섣달 그믐, 까치설날이다
오늘은 1월 29일 수요일. 음력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었다.
지금 1월 29일부터는 음력 새해 첫날이다.
나는 어제까지는 집나이 일흔일곱살이며, 오늘 지금부터는 집나이 일흔여덟살이 된다.
나는 1949년 1월 말경에 태어났기에 실제 나이는 만76살이다.
아쉽게도 호적신고는 몇 개월 늦어진 6월 중순기에 2025년 6월 중순에서야 법정나이 만76살이 된다.
나는 나이가 셋이다.
1)음력생일 나이 2)실제 태어난 양력생일 나이 3)호적/주민등록은 몇 개월 뒤인 6월 중순 법정나이이다.
* 나는 음력으로는 쥐띠 무자년 섣달 스물사흘 생.
지금부터 2025. 1. 29. 즉 음력 정월초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집에서 음력설을 쇤다.
설날 아침에 큰 차례상을 꺼내서 그 위에 간단하게 과일 등을 올리고, 떡국을 올려서 조상님께 절을 올린다.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님이다.
* 고조부모, 증조부모는 친척들과 상의해서 고향에서 10월 시향으로 모셨으나 내 집에서는 그냥 차례도 올린다.
제삿상에 떡국 한 사발씩 더 올리고 수저를 더 진설하면 되기에.
그 윗대는 10월에 고향에서 시향으로 모신다.
인터넷으로 설 개념을 검색한다.
음력으로 정월 첫날.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설'이라고 한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한다"는 뜻이다.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정월 초하루를 나타내는 '설’은 정초(正初), 정초(正初),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신일(愼日), 연두(年頭), 연시(年始), 연수(年首)등으로도 표현된다. '
신라 때 이미 ‘설’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로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 지금까지 전해내려 온다.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 귀 쫓기, 청 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이 있다.
'설'은 추석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명절이다.
가족들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이날 조상의 무덤을 찾아서 성묘를 한다.
이날을 전후하여 윷놀이·종정도놀이·널뛰기·연날리기 같은 세시 민속놀이를 행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당일과 그 전일, 다음날 3일간을 법정 공휴일로 정해 지키고 있다. 2023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섣달그믐을 세밑, 눈썹 세는 날, 제석(除夕), 제야(除夜), 제일(除日), 세제(歲除), 세진(歲盡) 등이라고도 한다.
설을 나타내는 한자말 :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수(年首, 연두(年頭), 연시(年始),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정초(正初),
오래 전 내 어린시절의 설 이야기이다.
나는 1949년 1월 말경에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곶바래, 고뿌래) 시골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의 설은 엄청나게 대단했다.
설 준비, 설 차례 등이 거창했다. 쌀 몇말을 물에 불린 뒤에 지게로 짊어지고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서 다시 지게로 짊어지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가래떡이 솔기를 기다린 뒤에 제법 굳어지면 날카롭게 간 칼로 잘게 토막토막 썰어야 했다. 몇말의 떡을 썰려면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렸다.
종가집에 인근에서 사는 친척들이 모여서 설 차례를 함께 지냈다.
떡국을 먹은 뒤에는 웃어른께 세배를 올렸으며, 웃어른 세배가 끝나면 어른들을 따라서 선산에 올라가서 묘소마다 절을 올려야 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로는 마을의 친척네로 찾아가서 세배 올리고, 또 동네 어르신네를 찾아가서 세배를 올렸다.
세배는 정월 보름날까지 다녔다. 타지역 먼 거리에 있는 친인척을 찾아뵈려면 정월 보름까지 설 행사를 지속해야 했다.
새천년(2000년)이 지나간 지도 오래인 2025년 1월 28일은 섣달그믐(까치설날)이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사람들은 모두 TV 앞에서 앉아서 아나운서가 카운트 하는 숫자를 따라서 외쳤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드디여 만세!를 부르며 2000년 1월 1일이 된 기쁨을 크게 외쳤다.
새천년이 시작된 지도 오래된 지금은 2025년 1월 29일.
즉 음력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음력설과 추석은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는 서울에서만 지낸다.
어머니가 2015. 2. 25. 돌아가신 뒤로터는 시골집은 텅 빈 집이나 되었다.
내가 서울에서 설과 추석을 쇠는 이유이다.
차를 끌고 시골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시골에 내려가려면 시간과 경비가 무척이나 많이 든다.
서울에서는 만사가 다 편안하고, 재래시장, 마트 등이 가까워서 제수물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내 자식들도 모두 서울, 수도권에서 살기에 명절 때에는 서울에서 아버지인 나와 함께 행동한다.
때로는 자식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다른 곳으로 가서 행동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 아버지인 내 아파트로 자식들이 반드시 모인다는 개념은 없다. 상황에 따라서....
2025. 1. 29. 수요일. 음정월 초하루
자자.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