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칠백세 번째
‘잘살았다’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오복 중 하나로 장수를 꼽습니다. 정말 장수가 복일까요?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느 소년의 기사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 국내 첫 소아조로증 환자 17세의 홍원기 군이 가족과 ‘뜨거운 안녕’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400명 이내에 불과한 ‘소아조로증(Progeria)’은 일반인보다 노화 속도가 7배가 빠르며 혈관 노화가 진행돼 일찍 세상을 떠나는 병이랍니다. 소아조로증 발병 원인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기 전에 새로운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답니다. 이 병을 앓게 되면 평균 만 13세에 사망한다는데 원기 군은 그래도 잘 버틴 셈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랬습니다. ‘오늘 재밌게, 오늘을 살았으면 됐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원기의 이별은 신났으면 좋겠다. 우는 슬픈 장례식장이 아니라 ‘잘살았다’ 위로해 주고 같이 즐거워하는 장례식장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뜨거운 안녕’을 준비하는 부모다운 말이었습니다. 소년의 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최고의 하루는 그냥 같이 가족끼리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거다. 친구들과 놀거나 그런 거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소년은 최고의 하루라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7배나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이 한 말입니다. 소년의 말을 들으며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부모의 말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쌓아가는 것, 내 일상에 충실하는 것, 남의 소를 세는 게 아니라 내 떡이 소중한 줄 아는 것, 그런 생각들이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잘살았다’ 그렇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