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약물 저항성이 높은 난치성 뇌전증(간질)이 발병하는 과정을 규명했다. 이 병의 원인인 국소 피질 이형성증은 태아 상태에서 두뇌가 성장하는 도중 신경세포(뉴런)가 두뇌 피질의 각 영역으로 옮겨가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이정호 의과학대학원 교수, 백세범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손종우(69회) 생명과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이 세포 내 유전학 관점에서부터 단일 신경세포의 전기생리학, 뇌 전체 신경망 수준의 시뮬레이션 연구를 해 복잡한 발병 과정을 규명했다.
난치성 뇌전증은 세포 내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엠토르’ 경로상 체성 유전 변이(일반적인 생식 유전 변이와 달리 수정 후 발생하는 체세포 유전 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항뇌전증제 약물에 반응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공동 연구팀은 동물 모델을 활용해 개별 신경세포의 체성 유전 변이가 신경망 수준의 발작으로 이어지는 원리를 발견했다. 체성 유전 변이는 뇌 조직의 5% 이하인 매우 적은 수의 신경세포에서 발생한다.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 시뮬레이션 결과 이런 돌연변이는 극히 적은 신경세포에만 국한돼 있어 세포 자체의 전기적 성질 변화만으로는 전체 신경망의 비정상적인 활동을 설명할 수 없다.
연구팀은 뇌전증 발작을 유도할 수 있는 활성도가 엠토르 체성 유전 변이 신경세포가 아닌 그 주변의 변이가 없는 신경세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동물 실험과 수술 후 환자 뇌 조직 연구를 통해 엠토르 체성 유전 변이를 가진 세포에서 아데노신키나아제가 과발현돼 주변 비변이 신경세포의 과활성으로 이어져 전체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를 일으키는 것을 규명했다. 이정호·백세범·손종우 교수는 “뇌전증 발병 원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