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과 사제
부족이 신에게 제의를 올릴 때 제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있다. 고대 사회에는 제의를 전담하는 전문인이 있었다. 이들이 부족의 지배자였고, 신과 다름없는 권력을 가졌다. 우리나라도 고인돌 시대의 부족장이 그 기능을 가지고 역할을 했다. 오늘의 무당으로 이어진다. 무속신앙인 동시에 우리의 뿌리이다.
유학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제의의 방법이 유교식으로 바뀌었다. 지배자가 아니고, 년세가 많은 분이 주재하였다. 제의 방식도 무당이 시끌시끌하게 춤과 노래로 굿을 하는 방식이 아니고, 예법에 따라 조용히 의례를 집행하는 방식이 되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유목사회가 농경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신화-전설이라고 한다.
북미 인디언의 신화에는 두 가지의 대조적인 제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사냥군 신화와 농경민 신화이다. 두 사회의 세계관의 차이는, 사회 조직의 차이를 사제와 샤먼을 비교함으로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제는 공인된 종교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회 차원의 입문 형식을 통과한 자들이다. 일정한 직위를 가지고 있으며, 전임자가 맡았던 일을 이어서 계속한다.
샤먼은 심리적 위기를 통해서 (우리나라는 이 과정을 신내림 이라고 한다. 신이 내리면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 자기만의 고유한 힘을 얻은 자이다.
아파치 족의 신화를 보기로 하자.
“태초에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땅도 없었다. 다만 암흑, 물, 거대한 폭품만이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으며, 다만 힉틴(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로운 장소였다. 그드은 제일 먼저 세계를 만들었다. 땅과 지하를, 그 다음에 하늘을 만들었다. 땅이 살아있는 여성의 모습을 만들고 어머니라고 하였다. 하늘은 남성의 모습으로 만들고 아버지라고 하였다.
구석기 시대에 주술을 행하는 샤먼은 개인적인 능력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복잡한 조직체인 농경 공동체의 지도자는 구성원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기능을 하였다.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 샤먼을 불신 하였다. (농경사회의 집단을 지향하는 사제는 개인주의 성향인 유목 사회의 샤먼을 불신했다.)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변화로, 삶의 방법, 삶의 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농경사회는 공동체 사회임으로 개인주의 경향을 억제한다.
사냥군 사회에서 사냥을 할려면 개인의 용기, 개인의 용감한 행위가 팔요함으로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기 보다는 북돋우어 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차이가 사냥군 신화와 눙경민의 신화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되었다. 농경의례는 집단에 초점을 맞춘 반면, 사냥군 사회에서는 초점이 개인게게로 향한다. 농업은 공동체 사회에서 집단으로 작업하면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냥군 사회에서 농경민 사회로의 변화에서 국가 탄생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