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동안
- 이성미
여름이 지나가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읽는 동안 귀 옆
으로 바람이 지나갔다
책 아래 무릎과 의자가 있었다 의자 아래 딱딱한 공기
가 있었다 공기 아래 물이 고여 있었다
사람들이 뱉은 말이 쏟아진 검은 잉크처럼 물에 검정을
더했다
읽는 동안 매일 오이가 열렸다 입안에 오늘의 오이를 넣
고 아삭아삭 씹었다
책 아래 무지개빛 강물이 흘렀다 너 왜 어린애가 한숨을
쉬니?
아이는 자라서 한숨 쉬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 한숨 쉬는
노인이 되기로 하자 쉬운 일이 아니라 한숨이 나왔다
하늘의 파란색이 짙어졌다 잘못 날아온 새가 유리창에 부딪
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진 창밖에 반딧불이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원을
해체해서 곡선을 만들듯이 움직였다 읽는 동안 잘못 들어온
반딧불이가 손 옆에 앉았다 빛을 내지 않는 반딧불이는 처음이
야 예쁘구나 안녕?
그러자 빛을 내면서 창으로 날아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창
문 아래서 희미해진 전구처럼 엎드려 있다가 죽었다
꿈속으로 가져갈 책을 골랐다 희미해진 전구를 들고 가야지
수용소에 들어간 사람들과 국경을 넘어간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무
덤 앞에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읽는 동안 물가에 소년이 엎드려 있었다 읽는 동안 배가 침몰했다
읽는 동안 친구의 딸이 죽었고 친구의 아버지가 죽었다
물에 가라앉지 않는 문장을 건져서 귀 옆에 걸었다 창문 옆에 걸었
는지도 모르겠다 귀 옆으로 바람이 불었다 질문으로 된 문장이 바람에
흔들렸다
책 아래로 강물이 흘렀다 의자와 책이 가만히 떠 있었다 읽는동안 여
름이 갔고 기온이 내려갔다 나뭇잎이 물기없이 파삭거리는 소리를 냈
다
여름이 끝나자 읽는 책을 찢어서 강물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가을이
었다
—계간『문학과 사회』(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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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가 읽는 동안에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우리들 문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책이 다 고전이 아닌 것처럼, 고쳐쓰지 못할 사초도 아닌 것처럼
힌 시절이 지나면 버려지기도 하는 겁니다
어제 문우 몇이 저녁을 먹으면서 '하 수상한 시절' 이야기로 한참 복잡했지요
헤어지면서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기초기본교육의 결과라고 정리는 했는데...
오늘도 깊어가는 가을 하룻길에 다시 또 변하는 것을 읽어야 하겠지요
내가 그걸 읽는 동안에 어느 곳에서는 변화가 꿈틀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