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인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
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
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야고보 사도는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
교하였다.
제1독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
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
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
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
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
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
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
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
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
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
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
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
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
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
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
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
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
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많은 경우 십자
가 죽음의 의미는 구약 성경의 예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속’
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나타내려고 복음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느님 종의
노래를 인용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죽음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며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길을 올곧게 걷는 이들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이런 의인들을 시
기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의인을 박해하고 죽입니다.
대속과 비슷한 의미의 ‘속량’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나타냅니다.
속량은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려고 ‘몸
값’을 지불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당신 자신을 몸값으로 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하여 달라는 청은 예수님을 세상의 권력
자와 같은 메시아로 이해하는 시각입니다. 같은 메시아이지만 일부 사람
들이 생각하였던 것과 예수님의 업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메시아는 임
금의 표상을 사용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탄생 때부터 동방 박사의 경배를 받는 임금의 모습이시
지만, 그 임금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으십니다. 그러기에 섬기러 오
셨다는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기에 앞서 예수님 삶에 대한 요약이기
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부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그리스도이십니까?’
(허규 베네딕토 신부)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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