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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님과 함께 식당을 운영 중이다. 작은 식당이지만 주방과 홀의 경계가 뚜렷하다. 식당이 다 그렇겠지만 홀은 홀의 일이 분명하고, 주방은 주방만의 역할이 있다. 그래서 서로 불가침인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탁 트인 시야 때문인지, 아니면 가족 장사인 탓인지 걸핏하면 서로를 침범한다. 주로 홀서빙을 하는 내 입장을 말하자면, 왜 주문 순서와 음식이 나오는 순서가 다른지를 주방에 따져 묻기도 하고, 그릇이 깨끗하지 않은 채로 나오면 주방을 탓하기도 한다.
주방보다는 손님 편에서 생각해야 식당에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들은 정말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참 답답하군’,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을 참 자주 했다. 주방과 홀을 분리하는 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 거리는 아주 가까웠고, 그래서 다 알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깝던 거리를 넘어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방 보조 일을 도맡아 하던 아버지가 식당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홀과 주방을 분리하던 경계선을 넘어 주방으로 들어갔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홀에서 바라보던 주방과 직접 경험한 주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주방 일은 생각보다 많은 디테일을 요구했고, 뚝배기 하나를 깨끗하게 닦는 일조차 마음 같지 않았다.
가까워만 보이던 거리를 뛰어넘어 주방 일에 뛰어들고 나서야, 왜 주문 순서대로만 나갈 수 없었는지 이해했고, 내가 닦은 각종 그릇도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뿐이겠는가. 내가 꼬치꼬치 지적했던 문제들이 나를 걸고넘어졌다. 그 모든 걸 문제없이 다 해내려면 2~3배 이상의 노동량이 요구된달 걸 나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에 선 이의 시선으로 본 것이다. 아니, 내가 있던 홀은 처음부터 부모님의 주방과 아주 멀었지만, 가깝다고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방 일은 어렵다’는 식당의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지닌 거리 감각이 얼마나 엉망이고 제멋대로인지를 새삼스레 생각해 본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온통 잘못된 거리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해를 말하기 이전에, 거리감을 확인하는 게 우선인지도 모른다. 당신과 나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성별, 나이, 지위 등의 차별 없음을 말할 때, 우리는 그 사이에 놓인 간격을 얼렁뚱땅 삭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쉬이 그 간격을 건너뛰려고 해서도 안 된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눅 16:26)라는 비관이, 무한한 간격에 대한 그 감각을 배우는 일이 우선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만희 함께걷는교회 목사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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