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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부터 ‘서머타임’이 해제 되었습니다. 시간이 1시간 앞당겨졌습니다. 미국에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모두가 같이 약속을 하니 시간이 당겨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년 3월 14일이면 서머타임이 시작되고 시간은 한 시간 뒤로 돌아갑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지만 의미의 시간은 앞당길 수도 있고, 뒤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제게도 의미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8월 23일은 제가 사제서품을 받은 날입니다. 내년은 서품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든 사제들에게 서품기념일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9월 29일은 저의 축일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한 가브리엘 천사처럼 저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합니다. 5월 5일은 아버님의 기일이고, 9월 10일은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역사와 신화를 만들어가는 인간은 누구나 의미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의 시간을 가지고 계신지요?
미국에 서머타임이 있다면 교회에는 ‘구원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인 시간과 의미의 시간과는 다른 가치의 시간입니다. 구원의 시간을 충실하게 따라가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고,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구원의 시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충실해야 합니다. 구원의 시간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하나는 오늘부터 지내는 대림시기와 성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순시기와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와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교회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주어지는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갈 것을 다짐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을 생각하며 우리들 또한 주님의 사랑을 배반하였음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신앙의 신비로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시간’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에서 깨어 있음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의미의 시간에서 깨어 있음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명예, 재물, 권력은 이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시련과 고통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사람은 시간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사람과 같습니다.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는 사람은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습니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람은 북극에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도 겨울옷을 팔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는 사람은 존경을 받습니다. 먼저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물리적인 시간에도 충실했습니다. 의미의 시간에도 충실했습니다. 신앙인들도 이런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게으르게 보인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의 시간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시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시간에 충실하기 위해서 4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구원의 시간에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지상 최대의 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셋째는 시대의 징표입니다. 허리가 아픈데 다리를 주무르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교황님의 문헌을 자주 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신문과 방송을 가까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넷째는 실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실천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우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도 많고, 세상도 많이 변하였는데 왜 우리는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려고 할까요? 왜 아직 오지 않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려고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영원한 세상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깨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과 의식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원망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고, 탐욕을 부리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비록 눈은 뜨고 있지만 영혼은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름을 준비하고 등불을 켜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름은 친절, 인내, 나눔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랑, 희망, 믿음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깨어있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생각과 의식이 깨어있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재형신부)
2020년 나해 대림 제1주일
<영혼의 배고픔을 느끼면 깨어있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13,33-37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대림절은 오시는 예수님을 잘 알아보고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기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깨어있는 시간인데, 마르코 복음 사가는 이 깨어있음을 ‘일’과 연결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있어라.”
기도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이 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들에게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신다고 하십니다. 이 각자에게 할 일은 각자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하되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하면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됩니다.
어떤 동물 농장 주인이 있었습니다. 캥거루를 잡아 와 1m 높이로 울타리를 치고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캥거루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번엔 2m로 울타리 높이를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날 캥거루는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주인은 3m로 높였습니다. 그래도 캥거루가 나와 있었습니다. 농장 주인은 캥거루를 자신이 키울 수 없음을 알고 놓아주었습니다. 캥거루는 유유히 숲속 친구들에게 갔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캥거루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너 높이 뛰기를 정말 잘하는구나!”
“아냐, 그 농장 주인이 울타리를 치고는 문을 계속 잠그지 않았어!”
우리는 일의 목적을 명확히 알고 내가 하는 일이 헛수고나 낭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확한 목적을 모르면 이 어리석은 농장 주인처럼 고생만 하고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일의 명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자아실현 등의 고상한 목적을 댈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의 원초적인 목적은 ‘생존’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존하기 위해 일을 합니다. 일하지 않고 생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가끔은 일도 안 하고 생존하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의 생존을 위해서 일하느냐입니다. 그저 육체를 생존시키는 것이 일의 목적이라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생존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이 납니다. 노인은 커다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그 물고기와 사투를 벌입니다. 결국은 그 물고기를 잡았지만, 너무 커서 배에 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 옆에 매어두고 돌아오는데 결국 상어 떼에게 다 뜯어먹히고 맙니다.
이는 사람이 육체적인 생존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고 헤밍웨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엽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명성, 가족, 자녀들, 재산 등은 자신의 배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육체의 배는 채워주었지만, 영혼의 배는 채울 수 없었습니다. 영혼은 마치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와 같았습니다.
육체의 생존을 위해서 일해야 하지만, 영혼의 생존도 신경 써야 합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영혼도 양식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떠한 것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이니까, 사람이 미워지고 우울해지고 걱정과 근심이 많아지고 초조해지고 두려움이 많아진다면 이것이 배가 고프다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 일하지 않으면 육체의 배를 불리는 것은 아무 소용없게 됩니다. 어차피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묶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육체보다도 영혼의 생존입니다. 영혼이 살아있으면 육체는 부활할 수 있지만, 영혼이 죽으면 다 죽는 것입니다.
복역 기간이 6개월 남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창틀 사이로 사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사마귀는 죄수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춤을 추라고 했더니 춤까지 잘 추는 것이었습니다. 죄수는 사마귀를 잘 훈련하면 밖에 나가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잘 시켰고 드디어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가자마자 배가 고파서 맛있는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음식을 먹고 주인에게 사마귀 춤을 보여주면 음식값을 받지 않으리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맛있게 음식을 잘 먹고 가방에서 사마귀를 꺼내 탁자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사장을 불러 사마귀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깜짝 놀란 사장은 손바닥으로 사마귀를 내리친 다음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배만 불리다가는 상황파악이 안 되고 더 중요한 영혼을 잃게 됩니다. 육체를 지나치게 신경 쓰면 영혼은 배를 곯게 됩니다. 더 중요한 영혼의 생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영과 육은 반대입니다. 사람은 육체만 배부르면 영혼도 배부른 줄 압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는 것을 잊습니다.
그래서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 안에서 판단이나 미운 마음, 불안과 초조, 걱정과 두려움의 마음이 일 때는 분명 영혼이 배고픈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영혼의 양식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려면 영과 육은 반대이고 영혼의 양식을 채우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상태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의 양식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을 이번 성탄 때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youtu.be/EKOv-kQvuzQ
유튜브 묵상 동영상(전삼용신부)
2020년 11월 29일 일요일
[자] 대림 제1주일
신경교중
오늘 전례
▦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한결같이 기억하시고 아버지의 풍요로운 은총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며,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아드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립시다.
입당송
시편 25(24),1-3 참조
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저를 맡기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원수들이 저를 보고 좋아라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이는 아무도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며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하시고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 그리스도 곁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 당신 종들,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시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풍요로워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조심하고 깨어 지키고,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 주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3,16ㄹ-17.19ㄷㄹ; 64,2ㄴ-7
16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당신 종들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소서.
19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64,2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3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6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15-16.18-19(◎ 4)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당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제2독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시편 85(84),8
◎ 알렐루야.
○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도움이신 주님, 언제나 주님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로우신 주님, 공직자들에게 주님의 지혜와 사랑을 심어 주시어, 맡은 일을 진실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며, 공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굶주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가난하여 굶주리는 이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주시어, 그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게 하소서.
4. 본당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본당 단체들을 주님의 자애로 보듬어 주시어, 어려운 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시고, 그 안에서 모두 희망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저희에게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가운데에서 저희가 모아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85(84),13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빚으신 주님 손의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사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깨어 기다립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대림 시기는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때입니다. 대림 시기의 정점은 예수님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분기점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대림 시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그분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따라서 대림 시기는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에 오신 것을 통하여 다시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영광 속에 다시 오시는 날은 종말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에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한 해의 시작에 듣게 되는 말씀도 이와 비슷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정해지지 않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해마다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두려움을 없애는 기쁨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의 의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