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19호 본 메일은 님께서 카페가입시 동의 하였기에 발송되었으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카페 내정보에서 수정해 주세요 | |||||||
2012년 2월 23일 목요일 오후 2시에 우리 부부는 김 집사님과 함께 수암 마을에 전도하러 갔다. 2월 초부터 월, 화, 목, 금요일 오후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까지 마을마다 돌면서 순회 전도를 하기로 하였다. 김 집사님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하여서 셋이서 하게 되니 더욱 좋다.
김 집사님은 60대 후반인데 도시에 살다가 지난해에 창골산 봉서방에 실린 나의 칼럼, <우리 교회 풍경>을 읽고 여생을 아름다운 시골 교회에서 전도하며 봉사하고 살겠노라고 이사를 오신 분이다. 그 분은 혼자 사시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전화만 하면 달려오신다.
집집마다 돌면서 우리 교회 자체적으로 만든 전도지와 전도용 소책자, <인생의 비밀>을 배부하면서 방에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가운데 수암 마을의 집집마다 들러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집에 가보니 마침 부부가 집에 있었다. 그 남편은 만날 때마다 전도를 하건만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며 자조적으로 웃을 뿐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가 총각 때 서울에 가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처녀가 어찌나 말을 잘 하고 똑똑한 지 시골 총각이 깜빡 속아 넘어가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였다. ‘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자기 자신을 실제와는 달리 굉장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똑똑한 체를 한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편은 그녀의 뻥에 질려서 고개를 저을 뿐이다. 너무 착한 남자라 결혼 초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차마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딸이 태어나니 더더욱 아내를 버릴 수 없었다. 딸이 3살 때쯤 아내와 딸을 시골로 데리고 내려와서 온갖 뒷바라지를 하며 살고 있다. 시골에 와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 넷이서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알콩달콩 눈물겹게 살았다.
아내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울 수 없으므로 직장을 가질 수도 없다. 그녀가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그 가족은 국가 보조금으로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3년 전에 둘째 딸이 친구들과 강에 놀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어 가족들의 상처는 더욱 더 깊어졌다. 그들 부부는 자기네들의 희망이 없는 삶에 대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찾아가니 부인이 “내일이 죽은 우리 딸 생일인데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더니 목사님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딸 위해 기도나 해주고 가세요” 라고 했다. 그들의 핍절한 삶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지고 먹먹해진다. 저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이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이 세상의 삶은 각박하고 메마를지라도 천국에 가면 우리 주님이 그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지와 책자를 주고 꼭 읽어보라고 하고 나왔다.
집집마다 사람이 없어서 그 마을의 회관에 가보았다. 마침 한 중년 여인네가 있었다. 그녀에게 들어보니 오늘이 불교에서 고기를 방생하는 날이어서 다들 절에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목사님이 그녀에게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얘기해주었다.
“참된 종교란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하는데, 첫째, 믿는 대상이 살아있어야 하고, 둘째,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셋째,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것이 바로 기독교라고 하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듣기는 잘 들었다. 그러나 빙긋 웃기만 할뿐 교회 나오라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 윗 동서네가 여호와 증인들로서 재산을 교회에 다 바치고 어렵게 살므로 교회 가면 다 그런 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일찍 죽고 네 자녀들을 홀로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사는 억척 일꾼이었다. 이제는 고생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하였다. 막내가 올해 장학생으로 대학을 들어갔다고 자랑하였다. 신앙이란 영적인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적인 삶에 열중하다보면 영적으로는 무지하게 되어 신앙을 경홀히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고 하였듯이 육신의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지지 않는데 그걸 모르고 죽어라고 육신의 일만 하며 살아가니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우리 교회는 10년 동안 같은 표어를 내걸고 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상반절의 말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이다. 그리하여 연초에 성도들에게 주는 일 년의 목표는 ‘한 사람이 한 명씩 전도하기’이다. 목사님은 매 주일마다 그 목표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목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영혼 구원’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승천하기 전 마지막 부탁하신 것도 “내 양을 먹이라(요21:17)”는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고 하셨듯이 영원한 생명만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나님 되신 그분이 친히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 함을 깨닫는다.
전도는 힘들다. 그러나 재미있기도 하다. 전도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연약한 나는 전도하러 갈 때마다 사실 두렵다. 사람의 강퍅한 마음을 만날 일이 두려운 것이다. 오늘도 오전 10시 경에 목사님이 “오후 2시에 전도하러 갑니다”하고 말했을 때 밖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바람이 급하게 일어나면서 금방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험상궂은 날씨였다.
책을 읽다가 “날씨가 갑자기 왜 그럴까? 비가 오면 전도 안 가는 거죠?” 하니 목사님이 찬양사역자 김석균 전도사가 지은 복음 성가인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를 불렀다. 그래서 속으로 ‘그렇다면 날씨가 활짝 개었으면 좋겠네’ 하고 기도를 하였더니 당연하게도 2시 경이 되니 날씨가 풀어졌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후5:13)”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라는 말씀을 상기하면서 전도하러 나왔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위 수암 마을에 갔다. 수암 마을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동네이지만 아래 수암, 가운데 수암, 위 수암으로 나뉘어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다. 위 수암 마을 맨 마지막 집이 우리 교회 성도이신 장로님 댁이다. 그 마을에 가서 김기영(가명) 씨를 찾아 갔다. 그는 50대 후반인데 50대 초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어 일도 못하고 아내가 일을 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이 많은 듯했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마음이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병이 들게 되면 처음에는 그렇게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자포자기한다고 한다. 이 분도 그런 부류였다. 우리가 찾아가니 마지못해 굴 속 같은 방의 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긴 하였다. 표정이 어둡고 떨떠름하며 눈도 맞추지 않고 외로 꼬고 앉아 “나는 예수 안 믿을 것이니 나에게 전도할 생각 말아요”라고 한마디로 뚝 잘라 말했다. 그 완고하고 어두운 마음이 안타까워 목사님이 듣거나 말거나 복음을 제시했다. 한참 듣고 있더니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난 그런 것 안 믿어요”라고 하였다.
좀 씁쓰름한 마음으로 다음 집에 갔더니 80대 할아버지이신데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방안에 들어 앉아 살고 있다고 하였다. 전도지와 책자를 주고 잘 읽어 보시라고 했더니 자기네 친족들은 장조카가 스님이라 교회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닌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할아버지,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장조카가 지옥 가면 모든 친척들이 다 지옥가야 합니까? 신앙이란 각자 개인적으로 가져야 하는 거지요”하면서 지옥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목사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의리랄까 체면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라고 하셨다. 사실, 시골 사람들은 아직도 친족들 간에 끈끈한 유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나이든 부인네들은 대부분 제사 문제 때문에 마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교회를 나오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김해룡(가명) 할아버지는 큰 아들이 교회를 잘 다니고 있어 부모님에게 전도를 하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터라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찾아 갔다. 그러나 그 집 안방의 벽에는 거대한 부적이 두 개나 표구되어 걸려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얘긴데 연초에 집집마다 붙여 놓는 부적이 작은 것 하나에 몇 백만 원 한다고 하던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하여튼 그 집의 부적의 가격은 천만 원이 훨씬 넘을 성 싶었다. 그 분은 올해 83세이시다. 흔쾌하게 들어오라고 하셔서 복음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겠다 하고 들어갔다.
할머니께서는 과자며 박카스를 내놓으며 환대하였으나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내 나이 이제 90이 다 되는데 죽으면 끝이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겨? 나 그런 것 안 믿으니까 헛수고 그만 하고 더 이상 나한테는 권하지 말어”라고 엄하게 말했다. 우리는 좀 뜨악해서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어 하였다.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괜스레 미안해하시면서 먹을 걸 권하시는 것이었다. “큰 아드님이 교회 잘 다닌다면서요?” 했더니 “저는 저고 나는 나야. 큰 아들이 교회 다닌다고 해서 내가 교회 다녀야 된다는 법은 없는 거야. 내 생각이 그러니 앞으로는 우리 집에는 오지 마시오”라고 하셨다. 이 집에도 영적 전투가 만만치 않겠구나 하면서 그 집을 나왔다.
오늘 하루의 전도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가는 집마다 된통 혼만 난 터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장로님의 집에 들러 과일을 대접받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는 걸 병문안 갈 일이 있어 거절하고 바삐 서둘러 나왔다. 나무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가려고 교회에 들렀다. 5분 정도의 시간도 안 걸렸다. 정읍의 어느 병원에 병문안을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 찰나, 승용차가 한 대 교회 마당에 와서 멈췄다. 젊은이가 내렸다.
얘기를 나눠보니 자기는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칠 마을에 홀어머니가 사시는데 오래 전부터 전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께서 작년 겨울에 교회에 다니겠다고 자기와 약속을 했는데 오늘 갑자기 조문할 일이 있어 이 근방에 왔다가 어머니 집에 가 보았더니 아직도 교회를 안 다니고 계셔서 목사님을 찾아뵙고 부탁을 드리러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화번호를 서로 주고받으며 앞으로 서로 합력하여 어머니를 전도하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병문안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려고 가는 도중에 그의 전화가 왔다. 자기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다. 목사님은 식사 대접 받는 걸 지양하는 편이라 거절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보니 그가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는 데에는 목적이 있어 보였다. 자기 어머니와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려는 목적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 가보니 그의 어머니와 온 식구가 와 있었다. 우리가 합석하니 미리 말을 안 하고 온 터라 그의 어머니와 아내는 깜짝 놀랐다. 식사를 하면서 자연히 목사님과 그 아들은 신앙적인 얘기를 하면서 금방 의기투합하였다. 그 자리에서 목사님은 그의 어머니를 강권하여 이번 주일부터 교회 나오기로 단단히 약속하였다.
토요일에는 다시 그 분의 집을 심방하였다. 처음이라 교회 나오는 걸 어색해하며 주춤거리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천국과 지옥 얘기, 예수님 얘기, 십자가 얘기 등을 해주면서 권하고 또 권하였다. 결국에는 영접 기도까지 하였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다음 날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여 잘 다니고 계신다. 그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달았다.
전도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아 애를 태우며 노심초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일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김석균 전도사가 지은 복음성가인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를 부르면서 목요일 하루 종일 아무 열매가 없어 낙심되고 울적했던 마음이 그 분의 교인 등록 카드를 작성하며 스르르 녹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공짜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한 영혼을 예비해 놓으셨다가 때가 되매 부르셔서 구원해 주시므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열심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려진 인간의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꾸준히 이루어 가신다.
“여호와의 열심(熱心)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하)”는 말씀처럼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날 죄와 허물로 죽은 한 영혼을 품고 애통하여 속울음을 울며 복음의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에 감격하고 또 감격하였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