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불편해도 네가 좋아《》
세계적인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맨해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내고,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 몰스킨 노트 필기에 빠지고, 세계적인 팝가수 레이디 가가가 Lp 레코드로 돌아가고, 문화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10대들이 턴테이블과 필름 카메라에 열광한다···.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삭스는 이런 기이한 현상들을 소개하면서, 범람하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아날로그 문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현대의 사람들이 일은 디지털로 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아날로그적 라이프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대표 선수는 바로 책이다. 분명 전자책이 늘어나고 있지만, 종이책은 여전하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속에서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을 얻지 않는다.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좋고, 종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잉크 냄새가 좋다. 그리고 책의 여백애 이것저것 메모하는 즐거움! 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지닌 시감(視感)과 촉감과 온도가 무게감 또한 좋아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시계와 디지털시계를 보자, 아날로그시계는 시겟바늘이 눈금 사이로 회전하여 공간성을 보여줌으로써 여유를 준다. 디지털시계는 공간성을 없애버리고 1초 단위의 시간 흐름만을 수치로 알려줄 뿐이다. 아날로그시계는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을 보여주지만, 디지털시계는 분절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딱딱 끊어지는 정확한 수치만 보여줄 뿐이다. 정이 없다.
디지털은 편리함, 자동화, 정밀함, 그리고 빠른 속도가 있어서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아날로그는 단순하고, 느리고, 몸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리움, 기다림, 사람 냄새 나는 정이 있다.
보라.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하드 드라이브에서 음악 파일을 꺼내 듣는 것보다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그런데 매력이 있다.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고르고, 턴테이블 플레터에 레코드판을 올리고, 판 위에 카트리지(바늘)를 조심스레 내려놓는 행위, 그리고 음악이 흐르기 전, '지지직!' 하면서 잡음 소리만 나는 1초 동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손과 발의 눈과 귀, 심지어는 레코드판에 쌓여 있는 먼지를 불어내기 위해 입김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많은 감각을 동원하는 레코드판이 주는 경험에는 계량화할 수 없는 풍성함이 있다.
분명하다. 디지털만으로는 우리 삶을 온전히 꽃피울 수 없다.
"아날로그는 구식, 디지털은 신식!"이라고만 이분법으로 잘라 말하면 천하에 무식한 사람일 것이다.
아날로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디지털이 실현하는 경우가 많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된 '디지털화'의 가속이고 모든 사물을 디지털로 초연결하는 혁명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하면 모든 것이 절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디지털만으로는 할 수 없는, 그래서 아날로그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기에 이어령 교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말하며 '디지로그'(digilog,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적 정서를 융합시키는 것)라고 했다.
만남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를 이루는 디지로그가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클릭 하나로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세상에서 산다. 그러나 디지털 '접속'(클릭)은 많지만, 아날로그 '접촉'(터치)이 적어진다면 반쪽짜리 소통일 것이다. 인터넷으로 멀리 있는 알래스카 사람과 소통한다면서 바로 옆에 있는 어머니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면 모순된 소통이다. '클릭 만남'과 '터치 만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날로그 예찬을 하나 더 하자.
삶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것이 많다. 아날로그적 생각은 애매모호함을 포용하는 사고방식이다. 모든 것이 확실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좀처럼 상상의 나래가 펴지지 않는다. 아날로그적인 사람이 창의력이 풍성함이 가득하다.
아무리 빠르고 수려한 디지털 세상이라도, 달빛 아래 흥얼거리는 귀뚜라미의 노래는 아날로그다. 달팽이가 풀잎을 기어가는 속도도 아날로그고, 사람의 눈빛,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영원한 아날로그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흐르고 있는 디지털 문화를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동시에 디지털 세계가 품지 못하는 사람 향기 가득한 아날로그적 감수성 및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아날로그적 신앙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클릭 한 번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실까? 우리는 아날로그의 하나님, 성전 바닥에 엎드려, 때로는 산기도를 가서 몇 날 며칠 울고불고 통곡해야 만나주셨던 그 옛날이 불편해(?) 보이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하셨다. 또한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깊이 찬송하며 기도하였고, 많은 성도가 문제를 만났을 때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해도, 주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 원초적인 아날로그 신앙이 가장 힘이 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36
출판사 : 규장
지은이 : 안재욱
첫댓글 믿음은 아날로그 입니다.
주님께 영광.!!
우리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하셨다.
아멘 주님께영광
시대는 변해도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