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여행
이봉기
10월의 마지막 주말, 푸른 호수를 감고 휘도는 산허리의 오색 찬란했던 가 을 산의 단풍을 보며 탄성을 지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의 중순을 넘기고 있다. 그 곱던 단풍들이 황갈색이 되어 하나 둘 떨어지든 날 내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언니와 나는 고향을 찾았다.
나와 언니가 태어나고 어머니 아버지가 반평생을 머무르시던 이곳에는 어머 니가 오랫동안 다니시던 고심사라는 절이 있었다. 예전엔 절로 이어지던 오솔 길이 차 한대 다닐 수 있게 포장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깊은 감회에 젖어 말이 없으시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 까? 머언 기억 속에서 어머니가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은 어떤 때였 을까?
연초록 새순 같은 어린 시절일까? 유월의 신록처럼 싱그럽던 처녀 시 절일까? 촉촉이 젖어드는 어머니의 눈빛을 따라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봤으 면. 아마도 그 옛날 한 손엔 쌀과 양초가 든 보따리를 들고 어린 딸과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이곳 고심사로 오던 젊은 시절의 그날을 회상하고 있는 듯 했다.
산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며 온화한 미소로 반기고 있다. 내 유년시절 이곳에 왔을 때는 푸른 숲에 둘러싸여 있던 절이 증축이 되고 제법 규모가 큰 절로 바뀌었다. 주지 스님께선 오랜만에 찾아온 어머니를 무척 반 갑게 맞이하신다.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두 딸과 함께 참배하는 어머니의 행 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고장으로 시집을 오신 후 온갖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오신 어머니, 간간이 구름사이로 내비치는 한줄기 햇살 마냥 우리 육 남매에게 망을 걸고 살아오신 어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기셨다. 카랑카랑 했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 게 안타깝다. 고움던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고 키도 많이 작아 지셨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파하시니 내 가슴이 저 며 온다.
대웅전 마당 탑 앞에서 오늘의 모습이 사진으로는 마지막이 될지 모 른다는 생각에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두둥실 떠 있는 뭉게 구름과 파아란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호수가 그림같이 아 름다웠고 구불구불하던 신작로가 고속도로로 변하고 휴게소도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담배를 사 가지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뵙곤 했다. 자식들을 도시의 고등학교로 보내 놓 고 졸업반이 되면 담임 선생님과 진학 상담도 하셨던 열성파 이셨다. 지금도 나의 장롱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생활 통지표 졸업장 등을 보며 어머니의 대단한 교육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고심사를 뒤로하고 도솔산의 도피안사로 향하는데 넓은 호수를 지나게 된 다. 용설 저수지다. 계곡을 따라 비포장 도로로 이어지는 도피안사는 이름 그 대로 산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던 어머니는 몇 발자 국 걷다 다리가 아프신 지 돌에 걸터앉으신다.
앙상한 가지에 잎을 떨군 채 시들은 나뭇잎 몇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이 인생의 노년기를 맞은 어머니 모습 과 흡사했다. 대웅전은 개축 중이었으며 그 아래로 실버타운을 짓고 있었다.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시대에 나도 내 어머니 나이가 되면 저런 곳에서 생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배를 끝내고 칠장사로 향했 다. 칠현산의 칠장사는 예나 지금이나 감나무가 많았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들 이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늦은 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고찰과 불타는 듯한 열정적인 단풍을 즐기러 온 인파에 묻혀 지천으로 깔려있는 은행잎을 밝 으며 절 안으로 들어갔다.
온 경내에 황혼이 가득 깔리고, 저녁 예불을 알리 는 쇠북 소리가 온통 가슴을 흔들었다. 칠장사에는 보물 제 488호로 지정되 어 있는 혜소국사 비가 있다. 혜소국사는 고려시대 삼대왕조의 왕사를 지냈고 불도를 통달하여 국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비석의 글은 김현이 짓고 민상제 가 썼다고 전해진다.
대웅전에서 참배를 올린 후 어머니를 부축하여 경내를 빠져 나왔다. “앞으로 남은 날에 오늘같이 즐거운 날이 또 있을까?" 하고 한숨을 쉬신다. 그리고는 평소에 하시던 말씀처럼 “아프지 말고 있다가 잠자듯 조용히 가야 할텐데" 하신다.
내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항상 부모 곁에서 기대 고 받아 왔던 사랑을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베풀고 있으면 서도 부모님에게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
잎을 다 떨군 가지에 잔설을 얹으며 겨울의 긴 침묵 속에서도 다시 싹을 틔 우고 꽃을 피운다는 희망으로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건만 인생은 한번 가면 왜 못 오는 것인가. 남은 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셔야 할 텐데………….
가끔 뵙 지만 급격히 쇠잔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두 분의 모 습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으리.
아니, 내 죽은 영혼의 가슴속에도
2000/ 8집
첫댓글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항상 부모 곁에서 기대 고 받아 왔던 사랑을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베풀고 있으면 서도 부모님에게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
잎을 다 떨군 가지에 잔설을 얹으며 겨울의 긴 침묵 속에서도 다시 싹을 틔 우고 꽃을 피운다는 희망으로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건만 인생은 한번 가면 왜 못 오는 것인가. 남은 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셔야 할 텐데………….
내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항상 부모 곁에서 기대 고 받아 왔던 사랑을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베풀고 있으면 서도 부모님에게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
잎을 다 떨군 가지에 잔설을 얹으며 겨울의 긴 침묵 속에서도 다시 싹을 틔 우고 꽃을 피운다는 희망으로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건만 인생은 한번 가면 왜 못 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