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5. 1. 30. 목요일(음정월 초이틀)
어제는 음력 설날이었다.
서울에서 큰아과 작은아들, 아내와 나. 넷이서 차례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한국국보문학카페> '등단 시인방'에 김병환 시인의 시가 올랐다.
망부석(望夫石)
망부석(望夫石) :
절개 굳은 아내가 집을 떠난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 죽어서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특히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의 아내가 치술령(鵄述嶺)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굳어져 된 바위가 유명하다.
치술령(鵄述嶺)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고개이다. 망부석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신라의 눌지 마립간(눌지왕)은 고구려와 일본에 보낸 자신의 동생들을 그리워 하였다. 그래서 충신 박제상에게 자신들의 동생을 데려오라고 시켰다. 그래서 박제상은 맨 처음으로 고구려에 가서 둘째 동생을 데려오고, 곧바로 일본에 가서 셋째 동생을 구하러 갔다. 이때 아내는 남편을 붙잡기 위해 남편을 쫓아갔지만 남편을 태운 배는 이미 떠나고 말았고, 박제상은 셋째 동생만을 돌려 보낸 채 자신은 그 곳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죽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이 떠난 바위가 보이는 치술령으로 올라갔다가 몸이 굳어 그 자리에서 굳어 바위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남편이 그리워 하는 바위라고 하여 망부석(望夫石)이라고 한다.
2.
'망부석'이란 단어를 검색하면서 엉뚱한 착상을 떠올린다.
나한테는 글감이다.
인터넷 어학사전에 오른 한자 '망'은 36개, '부'는 136개.
한자 '망' 36개와 '부' 136개를 결합해서 '망부'를 조어하면 엄청나게 많은 한자 단어를 만들 수 있다
아래처럼 몇 개를 예로 든다.
望夫石
望婦石
望父石
望富石
.....
나는 자식과 자손들이 적당한 부자로 살았으면 싶다.
내 소원을 들어줄 망부석(望富石)를 누대로 살아온 내 시골집 바깥마당에 세웠으면 싶다.
나는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고뿌래(화망 花望)마을에서 1949. 1. 말에 쌍둥이로 태어났다.
* 熊川邑 九龍里 花望(웅천면에서 웅천읍으로 승격되었음)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화망(花望) 마을은 '꽂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곶바래,고뿌래'라고 발음하여 불렀다.
정말로 가난하고, 무지하고, 어려웠던 옛시절이었다.
밥 얻어먹으려고 타동네 거지들은 이웃 동네로 와서 남의 집 싸립문 앞에서 기웃거렸다.
내 어머니는 밥을 덜어서 소반에 밥사발과 국사발을 올려서 거지들한테 내주었다.
내 아버지는 고뿌래 출신이고, 어머니눈 남포 용머리 바닷가 출신이다. 내 부모는 일제시대에 태어났고, 하도 가난해서 소학교조차도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돈 벌러 객지로 일찍 나갔고, 일제시대에는 대전 은행동에서 자리잡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산골 고뿌래(화망) 촌구석에 남아서 누대를 살아온 시댁을 지켰다.
이처럼 내 부모는 종가종손네라서 숱한 제사와 산소를 지켜야 했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1960년 봄)에 대전으로 전학 갔다.그 당시에는 대전에서 알아주던 돌집손자, 돌집아들이었다(석재산업).
나는 어린시절부터 충남 보령에 있는 내 고향 선산 여러 곳에서 무덤 근처에 세운 비석, 상석, 망두석 등을 보면서 자랐다.
내 고향 보령(예전에는 남포현 藍浦縣)은 예전부터 석재산업이 발달한 고장이었다.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면 성주면 성주산은 오석(烏石 검은 빗돌) 생산지이며, 바닷가로 나가면 남포 애석(艾石 바닷물 속에서 캠) 생산지였다.
* 성주산에서는 석탄/무연탄을 캐냈다. 청석도 많이 캐내고.....
지금도 보령지방에서는 검은 빗돌 오석(烏石)과 애석(艾石)을 가공하는 석재공장이 무척이나 많다.
아쉽게도 보령군 남포면 용머리 바닷물 속에서 캐내던 '남포애석'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남포방파제로 둑을 쌓아서 바닷물을 차단한 뒤로는 남포 애석는 끝났다. 어선을 타고 바다에 가서 바닷물이 빠질 때를 노려서 애석을 캐던 채굴자리를 없애버렸다.
이처럼 보령에는 예로부터 산과 바닷가에서 석재산업이 발달한 고장이었기에 내가 기억하는 1950 ~ 70년대의 내 친척, 인척, 외척, 동네사람들은 대부분 석재산업에 종사했다.
나는 비석, 상석, 망두석(望頭石), 갓석, 둘레석, 문인석, 무인석 등을 숱하게 보면서 자랐다.
* 남포현(藍浦縣) :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면·주산면·미산면·성주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
* 망두석(望頭石)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
사진과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3.
나는 1960년대 말 대학시절에 아버지를 따라서 경주 최부자댁을 방문했으며,
마지막 12대 부자인 최준(崔浚)선생을 서울 종친회에서 먼 빛으로 뵌 적이 있다.
경주 최부자댁(건물 등 재산)은 지금은 박정희네 소유이다.
경주 최부자댁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로만 남았다.
* 나는 최준선생을 존경한다. 경주 최부자 마지막 12대였으며, 독립자금을 댄 애국자였다.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민립 (구) 대구대학의 설립자이다.
지금 나한테는 친손자는 한 명뿐이다.
친손자 이름은 최준(崔浚). 한자도 위 최준선생과 같다.
자손이 더 많이 늘었으면 싶다. 내 자손들은 위 경주최씨 최부작댁처럼 넉넉하게 잘 살았으면 싶다.
부와 재산을 국가와 사회에 되돌려주는 그런 부자였으면 싶다.
2025. 1. 30. 목요일.
큰딸이 중국 상하이 여행을 마치고, 오늘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왔다고 핸드폰으로 나한테 알렸다.
나중에 보탠다.
잠시라도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