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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 29, 30. 2박3일의 여름 휴가
27일 일과후 밤 강릉으로 넘어가서
다음날 28일 아침일찍 강릉항에서 울릉도에 가려했었다.
처음 지리산종주행처럼 하늘을 지붕삼고 땅을 아랫목 삼아 울릉도 곳곳에 발자국을 내어보려했었다.
그런데, 중부지방 여기저기 들려오는 물난리와 주말까지 계속 퍼부울거라는 일기예보는
기어이 내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긴급히 조금 먼 데 있는 해인사 통도사 종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다. 음~
다시 수덕사 종무소에 전화를 한다.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의 제2차 禪수련회 라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는데
28일 점심공양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다.
다행히 남부터미널에서 직통으로 수덕사에 가는 버스편이 있었다.
수요일밤
강남이 물난리통이고 이 비가 쉽게 그치지않는데 과연 3호선 전철은 잘 운행되는지... 남부터미널은 이상 없는지...
간밤을 뒤척이다가 새벽녘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남부터미널 07:00발 수덕사행 버스를 타고 간다.
운전기사와 오로지 나 홀로 그 큰 버스를 전세낸듯이
천상병 시인은 生을 소풍이라 했지만 나는 여행이라 해볼까
내 마음과 몸이 因이 되고 天時와 地氣가 緣이 되어 行하는
生이란? 여행! 天地人 시절인연의 흐름따라 이루어지는 行圖
나의 여행은 대체로 즉흥적인 직관과 인연의 조우에 맡겨 간다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고 방향만 잡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러고보면 이번 수덕사행이 급하게 낸 마음이지만 인연의 아구가 자연스럽게 맞아 흘러간다
남부터미널 출발까지 내내 오던 비가 서울을 좀 벗어나니 구름은 많아도 그쳐있다.
그러다간 세차실에 들어간 양 차창에 물을 들이붓는 듯이 비가 몰아치는 구간을 지나고
밤새 뒤척여 눈도 몸도 혼곤히 피곤하건만 잠들지않아 이리 차창밖 하늘풍경을 완상하며
09시 40분경 수덕사 주차장에 다다라 비가 올듯말듯 하늘에 구름이 꿈틀거리는 덕숭산 길을 걷는다.
저기 수덕사 일주문이 보인다
단청을 채색하지않고 나뭇결 그 숨쉬는 배흘림 그대로 우람한 일주문이 참 인상적이다
점심공양 11:20시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이 참에 수덕사를 둘러보아야겠다.
일찌기 사춘기 때부터 구도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단전호흡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이 仙가 도가를 돌아 노자와 장자를 지나 조사와 禪어록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금강을 지나 결국은 아함 석가모니부처에 이르러 머무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삼보사찰과는 지금껏 인연이 없었다.
내 아상이 아직껏 강하여선지 규모가 크고 종찰이다 하면 괜히 반발심이 일고진다
내 짧은 알음으로는 진정한 선지식 큰스님은 없고 전통과 권위에 기대어 불사라는 사업경영만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음한편 늘 가고싶어했던 곳, 법보해인사 불보통도사 승보수덕사
승보사찰이 송광사라 하지만
비록 경허스님의 자유와 일타가 전혀 내 안을 비워주지도 채워주지도 않았으나
우리나라 근세에 다시 선풍을 일으킨 경허스님이 있었던 수덕사가 나에겐 승보사찰이었다.
그 애증의 한 곳 지금에야 닿았다
충청도에 나서 자랐기에 오히려 충청의 산세를 그리 찾게 되지않았다.
그럴 시간이라면 강원도나 지리산자락을 한번이라도 더 밟고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덕숭산과 수덕사......!!!
생각보다 본전의 규모가 컸기에 다른 절과 그리 다른 점이 없는듯도 했지만,
며칠 지내며 덕숭산 골골 수덕사의 기풍을 들여다보노라니 다른 절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보통의 절들은 어느 산자락의 일부에 들어앉아있었지만
수덕사는 덕숭산 그 자체였음이 처음 느껴보게 하는 산과 절의 새로운 이미지였다.
참선도량 선원 위주의 절이라 덕숭산 골골마다 그 산세에 따른 선원이 들어서 있었고
이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연예그룹처럼 "따로 또 같이"
각각의 도량이 저마다의 풍경을 드러내면서도 禪이란 기품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으니
덕숭산 그 자체가 하나의 수덕한 큰 도량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리 크고 넓고 깊은 도량처라
비구도 비구니도 너나없이 요람처럼 그 어느 절보다도 더 평화롭고 고르게 깃들어 禪林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할지라 수덕사하면 자못 비구니절이 아닌가 하는 오해아닌 이해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남녀의 차별없는 도량처로 만공스님의 일타가 곳곳에 지펴져 있었다.
솔직히 경허스님의 禪風이 의의는 크다 했지만 마음에는 닿지않아
만해스님의 님의침묵에 감동하며 따라 읊어볼지언정 만공스님은 그냥 지나쳤었는데...
이 덕숭산이야말로 바로 만공스님 당신의 덕과 품 그대로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뜨락에 깃들다 쉬어간 인연들도 들여다 본다
수덕여관 고암 이응로 일엽스님 나혜석
성속을 따로 두지않고 하나로 호흡하며 禪과 農을 함께 지행합일을 실천해가는 풍경들...
이렇게 2박3일의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통해 나는 만공스님을 만났다.
어렸을 적에 보고 민속촌에서 보고는 오랜만에 보는 초가지붕
그것이 절 안에 있으니
새삼 더욱 멋스럽고 그윽하다
청소하며 관리하는 데에는 더욱 손길이 미칠 것이라
기와지붕에 커다란 대들보 광휘로운 불상의 사찰보다 이 수덕여관에서 더욱
은은하고 고절한 기상과 기품이 느껴지는 것은 내 시선의 성격일까?
문득 사회가 하드웨어라면 종교는 소프트웨어가 아닌가?
동도서기 서도동기 그 동양과 서양의 교착점에서
자기만의 색깔과 기호 독창적 한줄기로 꿰뚫고가는
고암의 그림과 문자를 보다 떠올려본다
수덕여관 본채와 마당 담장 대신 둘레를 휘돌아 쳐놓은 송림
수덕여관의 초가지붕과 황토벽 토방과 마당 그리고
세월과 바람의 결이 느껴지는 소나무가
추사 김정희가 그렸다는 한폭의 세한도를 보는듯 참 좋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보고 읽고 계단과 길을 따라 올라가려니
벌써 점심공양시간이 가까와진다.
이젠 속도를 내서 그냥 찰칵 사진에 남기고 감상은 선수련회 중
자유시간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아야겠다.
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뜨락에 올라 본존불에 인사드린다.
충청의 산세와 시야가 이리 멋지게 절경을 그리는 곳이 다 있었구나
연암산 천장사의 조망에 이어
덕숭산의 풍광에 흠뻑 빠져든다.
더군다나 범종각과 법고각에 사물이 다 있으니
그 소리를 직접 들으며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의 절풍경을 이제야 진정 맛볼수 있으리란
가슴자락 기대가 살랑거리고도 있다
이미 수요일27일 입회식을 하여 선수련회에 참여하고 있는
하늘색 면티에 검청색 도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그들도 저마다 묵언이라 서로 알새 없었으련만
하루 늦게 들어와 합류하는 제 스스로의 기분엔 나만 홀로 섬인듯...
존재는 섬
파도는 관계
처음 나 낯설음으로
익명의 섬이었다가
시간은
외연과 내포의 시선
끊임없는 파도
익명의 섬은
모래사장의 글씨처럼 파도에 닳아
지워지고 날라가고
우리는 모두
시간이란 파도에 춤추는
시선이었고 섬이었다
수평선 바다
나
살아오고 살아가는 삶이란
파도
존재는 구름
관계는 바람
그 바람 따라 떠도는 구름의 무상함이여!
萬法歸一만법귀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나의 깃발을 구름바람에 펄럭이며
이 뭣고?
새벽 1시간 아침 2시간 오후 2시간 저녁 1시간
나
황하정루에
몸 부쳐
스님 말씀과 자세를 따라가며
맘을 캐어보다
맘은 커녕
허리 등 다리 결리고 뻣뻣해지니
몸만 경주하다
내리덮히는 눈꺼풀을 말리다
애라,
눈꺼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고개가 숙여지면 숙여지는 대로
스님 죽비와 내 어깨
그 입맞춤 소리를 울리면 되는 것...
몸은 잠 따라
맘은 꿈 따라
그냥 그대로
크게 쉬어나 가자
처음 핸드폰을 반납했다가 그 밤 다시 살짝 핑계를 읊어 돌려받아서는
그래 못다비우는 것을 억지로 비운다 비운다 비우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새롭게 숨쉬며 가슴 한아름 채우기로
몸에 저항하며 수련해야지 맘 강제하기보다는
몸에 순응하며 맘 한자락 아름다운 한순간 추억을 아로새기기로
이렇게 수련회 풍경을 담아본다
여타 절에 머물며 공양을 많이 해보았지만
정식적인 발우공양은 처음 해보았다
세척에 대한 연대책임으로 그 물을 함께 마셔야한다는 것에
살짝 긴장이 되며 옆사람의 뽀오얀 발우물을 꼬나보게 되기도 하였다
원래 不二門 심연당이 수련회 참선 수련관이었는데 선남회원들의 宿쉼처가 되었고
다실로 꾸며져있었던 황하정루가 수련관이 되어 茶器선반에 저렇게 가지런히 발우가 놓여졌었던 것이다.
수련회가 폐하고 배낭정리를 다하고 홍성역에 갈 셔틀버스를 기다릴 새
다시 올라온 황하정루 도량에 다탁이 정렬하고 있었고
다구 다기들이 올려지고 있어 다실이었음을 알수있었다
차 한 잔 들면서 경내와 산천 하늘을 완상하기 딱 좋은
수덕사의 가장 가운데 전망대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수덕사 중심 황하정루 도량에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반개 반가부좌하며 몸과맘을 다독이고 있는 삼일 내내
구름 사이로 바람과 비가 오락가락 습하게 응원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공양은 짜장면이었다.
수타면에 돼지고기 대신 두부로 맛을 낸 짜장이 참으로 별미 도다
그리고 그저녁 기어이 법고와 목어 운판 종 소리를 듣다.
해가 나지않는 습한 날씨엔 법고가죽이 찢어질수도 있어 치지않았는데
수련회 마지막 저녁이라 이 시간이 가면 또 기회가 없다하여
바루공양 지도스님의 청으로 이 저녁 덕숭산 온 자락에 사물소리를 울려퍼트려주시었다.
스님들마다 당신 고유의 운율과 리듬으로 법고를 두드리시는데
북채와 스님가사와 소매장삼자락 그 두드리는 솜씨와 맵씨란...
수덕사의 대웅전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시면 더 설명이 필요치않다
역시나 단청하지않은 나무 숨결 그대로
기록으로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려대의 건축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에서인지
나에게는
저 본존불 불상보다도
이 배흘림 나무기둥이 더 살아숨쉬는 부처의 기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명부전 하얀등에는 극락왕생을 축원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등은 魂의 둥지만 같다
원과 업장을 소멸시키기 보다 招魂하여 기복의 원과 업장을 세우고 늘이는
모순의 인상을 느끼게도 된다
마지막날인 토요일 아침 덕숭산에 오르며 만공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올라가본다
만공스님이 말년에 머무셨다는 소림초당과 직접 만드셨다는 관음보살입상
절벽에 기묘하게 무게중심을 잡고 세워졌다는 향운각 근처에 오니
어디서 딱따구리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대웅전 마당 법고각 쪽 벤취에 앉아있으면 법고각 옆 그 큰나무에서
딱따구리 소린가가 들려왔었는데...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만공스님이 한 말씀했다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만고불력의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라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가지고 있으나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는 멍텅구리오.
뚫린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온데
삼독과 환상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 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인 것이오."
광복 다음해 만공스님은 저녁 공양을 맛있게 드시고 거울을 앞에 두고 독백하시길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년동안 동고동락 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
28. 29. 30.
그렇게 덕숭산 수덕사에 앉아
구름과 비와 물안개 속을 헤매다
맘도 몸도 절로 젖어 쉬다
30일 토요일 정오에 내려와
이토록
몸 멀리 움직이지 않았으나
맘 멀리 헤매며 날으며
휴가의 끝 정점을 서천 부모님 전에서 찍고 마치었습니다.
한 여름날의 멋진 휴가여행의 인연을 감사하며
- 산울림 dream -
그대 그리운 저녁 / 정은주 소금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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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쉬면서 ~~멋진 휴가를 보냈네요..전 지리산 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감사하며 휴가를 보냈습니다..^^
저도 07 08년은 지리산에서 보냈었는데... ^_____^
가까운날 곡차나 한잔 할까?
좋지요.^^
저기 사진에 산울림님 계시나요? 어느분이신지요??
위 사진 속에는 제 시선만 있고 모습은 없네요.^^
좋습니다~^^
풍경 하나 하나
글귀 하나 하나에
님의 청정심이 엿보입니다
차려진 법당보다
자연이 펼쳐놓은 열린법당에
고개숙여 합장합니다
산울림님 당신의 불심에
감복합니다
그리고 내내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