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당시 형님과 나는 대통령 선거에 깊게 개입되어 있었다 주요핵심라인을 통해서 분위기가 모두 우리쪽 후보가 당선될 거라는 허나 북풍으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면서 회사에는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전 개발한 차량에 부착하는 장비는 새정권이 들어설때 경찰청에 납품하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예전기계 보다 훨씬 많은 장비가 납품되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후보가 아닌 다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새로 개발한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고 또한 같은정당이 아니라서 각종세무조사에 여러가지 불이익이 닥치면서 결국 회사는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 모두 일단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 예전에 납품한 장비에 대한 A/S와 부품교환이 다였던 것이다 결국 나또한 회사에서 일단 퇴사를 하고서 간간히 형님과 술한잔 하는거 외에는 대부분 동네에서 주차장관련 일에 매달리며 그렇게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 아우야 ! 나좀보자" 회사에 들어서니 회사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던 것이다 " 네 형님! " 아우야 ! 다시 일어날거 같다" " 네에? " 얼마전 남아공 요하네스 시장 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회사 하고 교통관련 해서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단다 " 잘됐네요 형님! " 그래 잘된거지 얼마전 기술진이 들어가고 요번에 내가 들어갔다 올테니 기죽지 말고 " " 네 형님" 그렇게 한달이 넘게 연락이 없다가 어느날 형님에게 연락이 온것이다 그내용은 요하네스버그에 인구가 천만으로 서울과 비숫한데 교통사고가 엄청많이 발생하는 도시로서 형님네 장비가 그도시 경찰청에 납품되는데 그수량이 600대 였다는 것과 한국처럼 기계를 팔고 에이에스 하는방식이 아닌 그장비로 교통위반 차량 사진을 찍어 받아내는 벌칙금의 절반이 형님네 회사로 들어온다는 엄청난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가 됬다는 것이였다 예를들어 한국에서 속도위반하면 보통 몇만원 벌칙금을 내는데 그처럼 위반하게 되면 벌치끔이 부과되어 시로 들어오면 절반을 형님회사가 ... 기계는 그러니까 파는것이 아닌 경찰청에 랜탈하는것과 마찬가지 방법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달에 들어오는 수입이 약 30억 정도 남아공 에서는 엄청난 돈이였던 것이다 그사이 난 한국에 사무실에 근무 하면서 남아공에 필요한 기계나 부품을 수급해서 조달하는 업무를 보았고 예전에 퇴사했던 직원들 대부분이 남아공 요하네스 버그에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직급도 높아져 관리이사로서 내방도 별도로 만들어 졌고 급여도 700만원까지 올라서 한국지사장 같은 역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형님은 두어달에 한번씩 입국하면 내가 차를 몰아서 공항으로 픽업을 나가고는 하였고 형님네 가족 모두가 남아공으로 이사를 하게 된것이다
이곳 서울지사에는 기껏해야 대여섯명쯤 근무를 하고 그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가 첫 스타트로 해서 케이프 타운 더반등 그나라 큰도시 들마다 계약이 성사되어 한국에서 인력을 뽑아 교육시켜서 남아공으로 보내는 일까지 맏아서 하던때 였다 그렇게 파견나간 직원들은 가족모두를 데리고 남아공으로 이사를 해서 그곳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 어느새 내직책도 본부장이 되었고 급여도 1천만원 까지 오르게 되였고 회사는 날로 번창해 지면서 타업종을 개발해 한국의 한국 타이어를 아프리카 총판으로 해서 회사에서 운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형님에게 전화가 온다 " 아우야 빨리 남아공으로 들어와라 니가 할일이 생겨서" " 네 형님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서둘러 짐을챙겨 사무실에 들어가니 " 본부장님! 이거 식자재 입니다 25키로" 한국에서 남아공 들어갈땐 모든 직원들이 한국에서 부식을 챙겨서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한국에선 직항이 없다 왜냐면 교포가 만명이 되지 않아 어느항공사 에서도 노선을 개척하기에 여러가지로 그래서 홍콩가면 그곳에서 남아공 항공기나 중국 항공을 타고 가는데 보통 14시간 정도 소요되는 ...
그사이 형님은 남아공경제인 30명 안에 들어가고 그로인해 난아공 10대 도시에 교통장비를 깔아서 엄청난 부를 쌓았고
또 아프리카 연맹 37개국의 세계태권도 연맹 총회장을 그리고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 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유치를 위해 힘썼고 난 그사이 일년에 서너번씩 왕래를 하다가 남아공 더반 원더러스 프로팀을 인수해 축구단장으로 근무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해서 남아공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2003년부터 2009년 까지 한국을 들락 거리면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 한국에 사무실에 화재가 일어나 그걸 수습하기 위하여 다시 한국에 들어와 사무실 250여평을 완전 새롭게 인테리어 공사를 했고 또 화정에 형님의 65평 짜리 아파트도 전체를 털어내고 새롭게 인테리어를 했던 것이다
2011년 형수가 애들 대학때문에 한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사무실과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여기에 개입해 나에게 별도로 돈을 만들라고 한걸 무시하고 거절을 했던것이 결국 싸움으로 번져서 형님회사를 나오는 ...
그렇게 해서 형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던 것이다 사실 형수의 부정행각을 보고 했다면 아마 지금도 남아공을 들락 거리고 있었을 거라는... 그러나 그냥 내가 묻어 버리고 그렇게 떠나게 된것이다
그렇게 한참 세월이 흘러 독립군 삶을 살고 있을쯤 형님께서 연락이와서 만나자고 했던걸 이미 덮어버린 일들을 다시 파헤치고 싶지않아서 그냥 거절하면서 더이상 ....
첫댓글
기억과 추억이 독특하군요.
이를 더 보완하고, 사진을 덧붙여서 한 권의 책으로 내면 기억과 추억들이 오래 보존되겠지요.
자기가 경험했고, 이룩했고, 느껐던 기억과 추억, 결과 등을 꺼내서 남한테도(독자) 널리 알려주기 바랍니다.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나의 전설적인 역사를 오래 보존해야겠지요.
더 많이 꺼내셔유.
잘 하실 수 있어유!
읽어주심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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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누구나 봄날은 다있었지요
잊을수 없는 인연이셨네요
글치요
대단 하시다는 말 밖에요~~~~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낼 일들을 하셨네요~~~
그렇게 살았어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내셨네요. 의리의 싸나이 지존님.
이제 남은 인생 좀 편안하셨음 ~~
그럼요 리진님이나 저나 삶이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한걸오
시리즈 끝났나요?
끝났다면 아쉽네요~
ㅎㅎ끝이있어야 수다방에 다른장르 글이 올라왔어요
꼭 드라마 한편을 보는것 같네요 그리고 지존님 대단 하십니다요
늦게 어셨어요 ㅎㅎ
그당시 과연..
독립군이 좋았을까?
주제완 어긋난 의구심이 드는 까닭은~??
분명 좋았을거야~~ㅋ
그땐 독립군 아니였으니
인생을 파도처럼................
굵직하게 사셧네요....ㅎ
그란가요 ㅎ
대단해요, 멋져요
한편의 드라마, 잘 보앗어요~~
고맙구요
벌써 끝이여? 뭐 더 없어 재밌어 질라 카는데
ㅎㅎ옆집 수다방에 다른거올렸지
왕년에 내가....ㅎ 누구라도 나이 들어서는 더러 이런 이야기도 하곤 하지요 ㅎㅎ ^^
그래요
삶의 이야기는 이런 것,
그 후의 삶도 흥미진진 할 것 같으니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글 고마워요.
읽어주심에 감사함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