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모님이 향년 99세 일기로 이승을 마감하셨다는 부고를 받고 숙모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창원 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다녀 왔다. 옛날 같으면 직 방계10촌 이내에는 상가집에 모두 모여 3일~5일장이 끝날때 까지 시끌벅적 해야 제대로 집안을 이루고 산다고 했는데... 반세기가 지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아침에 영덕에서 동생이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9시경 갑자기 일이 생겨 오후 늦게 출발한다기에 혼자서 경주에서 창원까지 1시간 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숙모님 생애에 고생을 하신 모습만 드라마 처럼 내내 눈에 스친다. 자그마한 체구보다 더 큰 삶의 보따리는 가장 역할을 하시며 그 어려운 환경속에 도수.관수.완수 삼남매 당시로서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키워내시어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훌륭히 하고. 집안에 불협화음 한번 내지 않고 다독이시던 우리 작은 어머님!! 우리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가족도 없는 나에게 끼니 챙겨주시고 빨래까지 해 주시며 삶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던 작은어머님!! 내려갈때는 영정사진앞에서 통곡이라도 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예를 갖추고 보니 내 나이 내일이면 산수[傘壽]이니 눈물이 다아 말라버렸는지 눈가에만 촉촉할 뿐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와야 하는데 요즈음은 직계손이 아니면 장례식이 끝나도록 하루밤도 묵으면 누가 되기에 숙모님 미소 영정사진앞에서 먼저 천국가신 가까운 인연과는 만나서 만담설화하시고 다음 생에는 부디 금수저로 태어나시어 이승에서 못다누리신 행복을 누리시며 영면하시라고 마음 속으로 간구를 하며 물러나 이슬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오며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욱하여 진다.
댓글 감사합니다. 요즈음은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사촌들은 겨우 전화 정도로 목소리만 들을 뿐이지요. 길 흉사에 만나서 같이 먹고 잠자면서 사는얘기나누며 친척이라는 친밀감도 있었는데 먼 길에 서로가 불편해서 예만 갖추면 돌아오는게 편합니다. 눈물은 74년전 스물아홉에 혼자되신 우리어머니가 고생만 하시다가 쉰하나에 돌아가실때 너무 울어서 메말랐는가 싶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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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요즈음은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사촌들은 겨우 전화 정도로 목소리만 들을 뿐이지요.
길 흉사에 만나서 같이 먹고 잠자면서
사는얘기나누며
친척이라는 친밀감도 있었는데
먼 길에 서로가 불편해서 예만 갖추면 돌아오는게
편합니다.
눈물은 74년전 스물아홉에 혼자되신 우리어머니가 고생만 하시다가 쉰하나에 돌아가실때 너무 울어서 메말랐는가 싶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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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해도 이만큼 변했을까요?
뉘집이 어떻니 흉을 볼 처지도 아니고
세월에 따라 인간사도 변해가는거 겠지요.
해피선님 댓글 감사합니다.
@멍게2 핵 가족 시대에 살면서도 이쯤 변해가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더 변해갈지?
차라리 남이라면 편하겠지요~
멍게2님!! 된장레시피 오래되어서 그런지 기억에 없는데요.
어디 사시는 분이세요?
알구로 갈채주이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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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심더 멍게2님
소금을 뿌리라고~?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너무짜 버렸습니까?ㅎ
@멍게2
닮았던가요 ㅎ
이제 쭈구렁 할베입니다.
그 동상은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 문화답사때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