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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여시
오디세이아(호메로스)와 오디세이(크리스토퍼 놀란)는 무엇이 다를까? 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본 사람의 후기..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승리의 여신인 아테나의 총애를 받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로 그려져. 그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어 메티스 Metis(지략,꾀, 지혜)는 흥미롭게도 아테나의 어머니 이름임 ㅎㅎ
메티스는 제우스의 첫 번째 부인으로, 제우스에게 크로노스(제우스 애비)가 잡아먹은 자매형제들을 토하게 만드는 약초를 구해다주고 티탄들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조력한 인물이야
하지만 제우스는 지혜롭고 꾀가 많은 메티스가 낳은 자식이, 그러니까 지 친자식이 자기가 그랬던것처럼 자신의 자리를 넘볼까 두려워서 메티스를 삼켜버리고, 메티스는 제우스의 몸속에서 딸을 출산해. 그때 제우스의 두개골을 빠개고 나온 딸이 바로 아테나임 👍
암튼, 오디세우스의 Metis적인 면모와 신들의 사랑/증오를 받는 모습은 아래 이야기들에서 나타나
1) 10년이나 이어져오고 있던 트로이 전쟁을 '탁월한 계책'으로 승리로 이끔.
✒선물의 개념을 그렇게 사용하다니 이야.. 역시 지혜로운 오디세우스야. (내가 이해한 화자의 뉘앙스)
2)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기지를 발휘해 거인을 무력화시키고 무사히 탈출함.
✒ 침착한데다 음기응변도 지렸다... 역시 오디세우스야.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가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폴리페모스에게 포도주를 덜덜 떨며 따르면서도 침착하게 자신을 소개해. 여기서 유명한 대사가 "제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자/있지도 않은자(Nobody, Outis)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박아 넣은 불쏘시개로 인해 눈이 먼 폴리페모스가 다른 퀴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있지도 않은 자'가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읍소하니, 퀴클롭스들은 '머라노... 아무도 없는데 어케 괴롭힘? 혼자 쇼하나봐~'라고 생각하고 안도와줌.
그 지혜로운 오디세우스도 여기서는 기고만장해져서 "하하, 나는 사실 어디의 누구지롱~" 라며 자기 신분을 밝히는 우를 저지름.
빡친 폴리페모스는 애비인 포세이돈에게, "저 놈이 제 눈을 이렇게 만들고 저 농락했어요ㅜㅜ" 울부짖어
"그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돌아가더라도 많은 고난을 겪고 동료들을 모두 잃은 채 귀향하게 해주세요! 그의 앞길에 갖은 재앙이 있기를!" 라는 저주는 실로 오디세우스가 겪는 모든 시련들의 서막이 됨.
✒ 그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때로는 경솔함이.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선과 악이 있는지.
하지만 다른 신들은 그를 예뻐해서, 제우스의 심부름꾼인 전령 헤르메스는 오디세우스가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마다 나타나 해결책이나 예방책을 귀띔해줘
3)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구하려고 마녀 키르케의 집에 가는 오디세우스에게 헤르메스는 마법에 걸리지 않는 약초를 건네줌.
4)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고향까지 쉽게 항해할 수 있도록 바람 주머니를 선물해줌. 하지만 부하들이 이타카(고향 땅)를 목전에 두고 그게 보물 주머니인 줄 알고 여는 바람에 다시 태초의 마을로 밀려남. 이때 아이올로스: 야 니들 꼬라지 보니 저주 걸렸네. 나도 손절한다 ㅂㅂ
5) 저승(하데스)에서 원작 속 오디세우스는 여러 영혼들과 조우하면서 생의 무게를 느끼고 성찰의 계기가 되는 대화들을 주고 받음. 반면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원망받이임. 그를 원망하고, 전쟁의 무상함을 토로하는 내용을 벌 서는듯한 모양새로 들음.
6) 마지막 구혼자들 처단 장면은 원작에서는 드라마틱하고 신화적인 모습으로 그려짐. 그의 곁에 웅장한 아테나 신이 떡 하니 함께하고 충신들이 그를 따르면서.... 마치
이런 느낌. 난 이런 느낌으로 읽음ㅎㅎ..
7) 키르케가 카륍디스 소용돌이에 모두가 전멸하느니 스퀼라의 봉우리 쪽으로 가라고 조언했을 때,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이미 결과를 들어 알면서도 동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창을 들어 스퀼라와 맞서 싸움.(자신의 운명에 저항) 영화에서는 그저 원망핑
8) 헬리오스의 신성한 소를 잡아먹어버린 죄로 부하들이 제우스로부터 응징당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디세우스.(남들과 다른 그의 절제력)
9) 다시 카륍디스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기에서는 무화과 나무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건지고(남들과 다른 그의 운), 이후로 여신 칼립소(영화: 샤를리즈 테론)에게 7년간 구금됨. 그곳에 안주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오디세우스는 유혹을 뿌리치고 빠져나옴.
이처럼 원작에서 오디세우스의 운명은 철저히 신들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그려져. 신들은 그를 돕기도 하고, 시험하고, 때로는 방해하면서 그가 마주하는 풍경을 시시각각 바꿔놔. 그의 여정 자체가 신들의 계획에 의해 이미 이루어져있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들의 기분을 좌우하고, 결국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신들의 뜻처럼 보여. 심지어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직접 행하고 보고 느낀 것 조차도 신의 뜻으로 여김
"저희는 안전하게 닻을 내릴 만한 포구 안으로 말 없이 배를 끌고 들어갔습니다. 어떤 신께서 이끌어주신 것이지요."
"제가 혼자 있는 걸 어떤 신께서 슬퍼하셨는지, 바로 그 길 위로 뿔이 높이 솟은 커다란 사슴 한 마리를 제게 보내주시더군요."
이런 대목에서는 특히 인간의 미약함과 겸허함을 엿볼 수 있어. 이렇게 신들의 영향 아래 수많은 명령과 조언을 받는 오디세우스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항상 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임. 갖은 재앙 앞에서 그가 하는 선택은 언제나 같음. 다시 노를 저어 나아가는 것..
"방울 굵은 눈물을 쏟아가며, 애달파하며 배에 올랐답니다.", "노를 들어 잿빛 소금 물결을 때리기 시작했지요."
나는 이걸 원작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읽었어. 지금도 이 구절을 보면 가슴이 찡..한 울림이 있음. 이 시구는 각 에피소드마다 계속 반복되는데,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묘사해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지닌 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비록 미약할지라도, 운이 7할이라도 해도, 나의 선택과 의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되새기면서.. 나도 나만의 노젓기를 계속 해야겠다 어쩌고 하면서 과제를 마무리 했던 것이 기억남
반면, 영화는 다분히 시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 (이제 시작이야ㅎ 여기까지 읽을 여시들이 있을까ㅜㅜㅋㅋㅋ 걍 내 머릿속을 정리할게요)
내가 느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크세니아(Ξενια, Xenia)임. 고대 그리스에서 크세니아는 낯선 이방인, 즉 손님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었음. 이건 상호 생존 보험처럼 작용해서 내가 다른 도시로 나가 이방인이 되었을 때 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돼
크세니아가 인상깊은 건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을 받아들여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개념이 내면에 선행되어야 가능함.. 그런 점에서
- 연회장에 들어 온 거지를 하대하고 능멸하는 안티노오스. 여기서 물리적인 자리와 성원권이 구분됨. 단순히 물리적 공간 안에 함께하는 것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같지 않다는 거야.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이민자, 외국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 굶주린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음식을 나누거나 (말을 할 수 있음에도)대화를 건네지 않고(부하가 엥/! 말을 할 수 있네요?! 깜짝놀람) 그들을 먹잇감으로 취급하는 폴리페모스. 오디세우스 일행을 애초에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음. 위에서도 말했듯이 원작에서는 둘이 대화함. 나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이걸 없애버렸다고 생각해
- 마찬가지로 거인들에게 아묻따 개쳐맞는 오디세우스 일행들
- 아카이아 연합군이 트로이 성문을 따고 무차별 살육을 자행한 것도. 전쟁에서 적을 죽이려면 먼저 상대방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밀어내야함. 한 인간을 구체적인 삶과 이름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비인간화, 적군, 소모품으로 규정함으로써 폭력이 정당화되는거야
나는 감독이 원작이 지닌 신화적이고 판타지적인 내용을 부각시키지 않고,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로 재해석 한 걸 보면서 전세계적으로 불거진 이민자 문제와 최근 있었던 전쟁 이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라. 요약하면, 영화 오디세이는 공존의 가치를 크세니아의 개념을 빌려서 말하고 있었음.
근데 이게 겉으로 드러나는 장면만 보면 영화가 노잼에 평면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나만해도 신들의 총애와 증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기대하고 갖고 봤는데 웬걸,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돼서 중후반까지 내 만 팔천원... 하면서 봤거든
그러다 후반부로 가면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이 책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봐서 좋았다 생각이 들더라고. 성원권, 환대의 개념을 매우 깊은 호흡으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그럴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번영할 수 있는지 챕터마다 머리 깡!깡! 때리는 책임. 전국민 필독서가 되었으면 하는 책...
그럼 이만 줄일게ㅎㅎ.. 아! 나는 그래서 오디세이 꼭 아이맥스에서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해. 애초에 감독이 비쥬얼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오감의 재미를 더해주는 4dx 추천
첫댓글 와 딱 방금 영화보고 집왔는데!! 글 넘 재밌게 읽었어ㅋㅋ글재주는 없지만 언어(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대화로 해결하고? 서로 문명?문화? 존중하자는 메세지를 강하게 느꼈어
와 좋다 글 잘봤어~~ 나도 영화보면서 이거는 신의웅앵이 아니고 그냥 인간으로써의 여정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칼립소의 대화후에 바다에 내던져졌을때(?) 눈물이 나오더라고....
그리고 트로이성 처들어가서의 그 장면이 계속 복기되듯이 나오는것도 제우스의법과 그런식으로까지 전쟁을 했어야했나의 본인 성찰이 나온거같아서(이 해석은 나도 여시에서 봄)
뭔가 신은 차치하고 인간 고민, 성찰이 많이느껴졌어. 나의 결론은 놀란은 인간을 참 사랑하는거같아 놀란 영화는 곱씹어보면 전부 사랑이거든.
와 어떤 공부와 책을 읽어야 이여시처럼 사고할수있을깡 멋있당
와 나는 영화 보는 내내 신에게 저항하지만 결국 순응함에 뜻을 이룰수 있었던 인간의 무력함을 느꼈는데, 원작은 완전 다르구나. 글 잘 봤어!
영화속에서 관통하는 주제가 제우스의 법(크세니아)였다고 나도 똑같이 생각했어. 그 부분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호프>와 <스파이더맨>도 동일한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게 보여서 영화 보는데 자꾸 생각나더라. 제우스의 법(크세니아)의 핵심은 결국 '낯선 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잖아. 내가 본 낯선 이방인이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사실 변장한 신일 수 있음. 그러니 무례하게 굴지 말고 먼저 대접하고, 반대로 손님도 주인을 해치거나 환대를 악용해선 안됨. <호프> <스파이더맨> <오디세이> 다 다른 방식이지만 영화속에서 비슷한 상황이(=이방인의 방문) 일어남. 그리고 전개되는 과정이 모두 다름. 호프는 절망편 vs 스파이더맨은 희망편. 오디세이는 그 중간이라 해야하나.. '낯선 장소에 낯선 이가 도착했을때 그곳에 사는 존재들은 낯선 이를 어떻게 대하는가?' 이것을 통해 그 사회가 문명적인지 vs 야만적인지 알 수 있음. 근데 난 글쓴 여시와 다르게 폴리페모스 장면은 인간들이 먼저 무례를 범했다고 생각했어. 내가 책을 안읽어서인지 영화만 봐서는 감독도 그렇게 연출한 거 같고.
남의 집(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먼저 쳐들어가서 치즈 훔쳐먹는 모습이 페넬로페 집에 처들어가서 음식 축내는 구혼자랑 똑같아 보였음. (=키르케 장면도)
영화 보고나서 지피티랑 대화 많이 했는데 지피티는 이런 식으로 해석하더라고. -폴리페모스는 괴물이라서 야만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라서 야만적인 거라고.- 그리스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거라 함.
페넬로페 집에 처들어가서 제우스의 법(크세니아)을 악용하는 구혼자(=손님) vs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가서 치즈 훔쳐먹은 오디세우스 일당(=손님) vs 결국 손님을 잡아먹는 폴리페모스(주인)까지. '낯선 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 것' ‘주인의 환대를 착취하지 말 것’ 제우스의 법은 그 시점에 이미 와장창 붕괴됐다고 봄.
"인간에게 일어나는 불행은 신 때문인가, 인간 자신 때문인가?" 폴리페모스 눈 찌르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노해서 그 뒤부터 오디세우스 뺑이치잖아. 근데 그게 결국 신 때문일까? 인간 자신 때문일까? 영화 속 유일하게 등장한 신은 오디세우스의 수호신 '아테나'뿐이잖아. 아테나와 오디세우스의 공통점이 있지. '머리=지능'이야
아테나 = 신들의 세계에서 지략을 대표하는 존재
오디세우스 = 인간의 세계에서 지략을 대표하는 존재
그리고 영화 속 아테나는 전쟁터에서 죽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오디세우스의 마음속에 남은 죄책감이기도 함. = 오디세우스의 지능으로 죽은 소녀
포세이돈 = 바다 / 자연 / 폭풍 /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
아테나 = 지성 / 전략 / 문명 / 인간이 세계에 대응하는 능력
아테나(지성) vs 포세이돈(자연)은 완전 대립하는 축임. 오디세우스는 인간이야. 자연보다 강하지 않고 신보다도 강하지 않아.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지성)이 있어. 통제할 수 없는 힘(자연)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지성과 판단력으로 끝끝내 살아돌아가잖아. 이런 부분도 함께 생각하면서 보면 더 생각할 게 많은 영화같음. 전쟁 뒤에 결국 뭐가 남는 지도.
@영블러드 여시 영화평론가야? 글 너무 잘쓴다 ㅜㅜ 여시 평읽고 더 생각할거리가많은 영화구나 알게됨 생각지도못한 측면이야 평 댓글 잘읽었어 !
@영블러드 오 맞아 크세니아에는 손님도 지켜야할 룰이 있어. 호의를 당연시 여기고 주인의 재산을 축내면 안 됨. 폴리페모스 동굴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을 완벽한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분명 있고, 구혼자들은 명백했지. 나는 감독이 크세니아를 말하면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다뤘다고 생각해. 양쪽의 모습을 동등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한테 생각할 거리를 던진걸수도. 나는 원작과 비교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오디세우스와 환대와 성원권을 연결짓다보니 그 장면도 무엇이 폴리페모스를 야만적으로 보이게 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봤네. 결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원작과 달리 오디세우스와 대화 한 마디 하지않고 잡아먹기만 하는 모습(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대화가 무가치함)에서 감독의 의도가 드러났다 생각했어.
별개로 호프는 하도 평이 안 좋아서 안 봤는데 여시댓 보니까 역시 영화는 자기가 보고 느끼는 게 맞다ㅎㅎ 호프 보고싶어짐
아! 영화에서 폴리페모스랑 소통하는 장면 기다렸는데 안나와서 진짜 아쉽더라.. 노바디가 진짜 그 에피소드의 백미인데. 원작 읽어보고싶다. 지금 읽고있는 책 다 읽으면 사야지
영화 보고 다시 또 읽어봐야겠다
와 글 너무 좋다 생각 공유해줘서 고마워
나도 포디엑스로 봣어 굳이 아이맥스로 안봐도 여시가말한거처럼 전달하고픈 내용은 다 잘 전달된거같아
나도 여시처럼 원작이랑 많이 달라서 좀 놀랐어! 왜 이런식으로 각색했을까 싶었는데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다니 고마워
하너무 좋다 확실히 원작이 철학적이네 영화의 메세지도 난 좋았름
여시의 관점을 공유해줘서 고마워..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보고나서 생각 많아진 유일한 영화인데 여시 덕에 생각도 많이 정리되고 좋았어! 좋은 밤 즐거운 주말 보내❤️❤️
방금 영화 보고왔는데 글 재밌다! 잘읽었어!!
기대 많이 하고 가서 그런지 좀 아쉬웠는데 이 글 보니까 엄청 흥미롭다 고마워
나도 이거 영화 보면서 너무…. 현대적인걸 섞어서 아쉬웠음 ㅠㅠ 거인 갑옷이 무슨..
오 재밌게잘읽었어
잘 읽고가! 👏👏
와 굿 책을 읽어야겠다
재밌다 책 읽고싶어졌어
와... 방금 영화 보고 왔는데 진짜 너무 평면적으로만 생각했다 ㅠㅠ 공존의 가치..와 머리 한대 맞은 느낌이야
사람장소환대도 읽다 말았는데 ㅠ다시 읽어봐야겠어
통찰력 대단하다 해석 너무 좋아
선댓~~ 쫌따 찬찬히 읽어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