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그 동네..그리고 나
오래전 삼양동 사거리에서 종점까지 가는 길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었다.
두 개의 시장이 있었고.
은행도 있었고,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드나들던 약국….
어린 나이에 그 거리를 걸어갈 때면
몹시도 지치고 힘들어 몇 정거장 안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르기도 했지만 걸어가는 시간이나
종점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매번 비슷하여
시간을 도독 맞은 기분이 들었었다.
언니는 6학년이라 전학을 하지 않았고,
나는 4학년이라 전학한 학교를 처음 등교했을 때 그 삭막함이란,
이사하기 전 다녔던 학교는 44년에 설립된 학교라
육이오 때도 있어서 어딜 가면 아직 해골들이 있느니 하며 소문이 돌 정도였는데….
전학을 한 학교는 이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일 회 졸업생이 되는 상황이었다.
학교가 자리 잡히지 않아
우린 방과 후에 운동장에 자갈을 고르고
아직 여린 나무를 심고….
그렇게 학교생활을 했다.
종점 주변 동네 아이들은 호칭에 가게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작은 건물에 일 층은 가게 위에는 주택이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방앗간 집 딸….
양장점 집 딸…. (바로 나….)
국숫집 딸….
과일가게 딸….
슈퍼집 아들…. 그렇게
이름을 불리기보다
그렇게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동네
가끔 엄마를 만나면 함께 놀던 그들의 소식들
어떤 친구는 칠레로 결혼해서 이민을 가고
어떤 친구는 사업을 하고…. 이런저런 소식….
우리 집 위로 정릉 가는 길로 올라가다 보면
말 그대로 산동네가 펼쳐진다.….
무허가집들이 늘어서 있고.
바둑판 모양 칸막이로 여러 개의 방만 만들어 놓아 세놓았던 집들
그 여러 개 집중에 내 친구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도 그 동네에 들어가서 살게 된 경위가
우리 집으로선 일종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일이 있었기에
엄마…. 우리 세 자매….
비장한 결심을 하고 삶에 임했었고
어린 나이지만….
어떤 큰 나무가 주는 그늘에서 벗어나….
여자 넷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난 그 동네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 온다.….
가장역할을 하게된 엄마….
약한 딸로 인해 늘 가슴 졸이던 엄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는 버거움 때문이었을까….
하루 삼 분의 이 들렸던 재봉틀 소리….
그 기억들이 아직도 체증 느끼듯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성장기가 그곳에서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이리라
나는
엄마의 삶을 우리가 저당 잡고 있다는 그 불편함이 싫었던 탓일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장학금을 주는 학교로 하향 지원을 하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버렸다.
그렇게
고등학교에서 만난 내 친구들
모두 온전한 가정 하나 없이 일찍 부 터 삶의 고뇌를 알아버린 아이들
가진 거라곤 삼 년 동안 보장받은 장학증서….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져 있던 지친 삶….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배웠던 또 하나의 삶….
나의 고단함은 엄살에 불과한.
나보다 못한 사람들 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거….
얼마 전 기억에도 아물거리는 초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게 되며
나도 모르게 필름 돌아가듯 옛 기억이 떠오른 것은
참 우연이 아닌 듯싶다.
한 사람을 만나면서…. 우연히 살던 동네 이야기가 나오고
누에 꼬치가 실을 풀어내듯….
내 삶의 반 이상을 살았던 그 동네 이야기가 나온 거 보면….
잘 사는 사람보다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동네….
난 그곳에서 삶을 배웠고.
성장해서 지금은 엄마가 되어 있다.
내 아이들이 엄마의 힘겨웠던 유년 시절 이야길 하면 이해나 할까.
모든 풍요 속에서 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옛날 읽었던 동화책 읽듯 남의 이야기로 듣겠지….
그런데 나는 왜 그 동네를 생각하면
아직도 덜 여문 상처로 벌써 수십 년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거 같은 느낌.
그렇다….
그 동네를
몇 년 만에 가본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사이 그 동네는 없던 길이 생기고
산동네에 무허가 집들이 늘어서 있던 풍경은 사라지고
지금은 아파트들이 병풍같이 늘어서 있다
초등학교 다녔던 학교 만이 아파트가 들어서고 다시 개교해서
이쯤이 내가 살았던 곳이란 걸 알게 해주는 유일한 표시가 되어 있다.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
길도 변하고
동네도 변하고
나도 변했는데….
내 머릿속에 내가 자랐던 촌스러운 동네의 모습과
그때 만났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련 했던 하루….
그 길….
그 동네….
그리고…. 나
우연히 그 동네을 아는 사람을 만났던 날
첫댓글 삼양동 장미원...
아해는 갈 곳이 없고 반겨줄 곳 없으니
삼양동.길음동.미아리를 돌아 다시 정능
배밭골로 하염없이 걷기도 했었죠.
삼양동 고개 위에 가면 빈부의 차이가 보여지는
주택단지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도
틀렸는데....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가끔씩 꿈에 그 동네가 나오는걸
보니 삶의 향내가 익을때가 된건지...
삼양동 장미원..
저도 그 동네 많이 걸어다녔었어요..
세월이 흐르니 그 동네에서 삶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오늘도 행복하세요~~
@하경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난 세월의 아린 추억들이
이제는 시와 노래로 곰삭혀 나오는 것 같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됩시다. 화이팅~!!
언니가 삼양동 언덕배기
작은 노란대문집에 살아서
미아리고개 올라가다보며
동굴 속에 파전에 동동주 파는
술집이 생각납니다ㆍ
제봉틀 소리 듣고 성숙했을
양장점 집 딸 하경씨!
글 속에서
잘 살아오셨고
잘 살고 계심이 훤히 보입니다
잔잔하면서 울림을 주는
수채화 같은 수필 한 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슬하여님 댓글 읽으니
누군가 저를 토닥토닥 잘살아줘서 대견해 하는 그런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앗 미아리 돌산동네 울할아버지 사셨던 바로 그동네 무허가로 도배를 했던
맞아요
무허가로 도배를 했던 동네..ㅎㅎ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동네 삶은 흑백사진 맞아요..
비 오는 금요일날 언젠가 끄적였던 글 하나 그냥 올려봤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그땐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이었거든요..
네 저도 사촌이 살았던 동네 입니다.
그 동네 살았던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자연이다2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하경님의 추억의 공간 속에
우리들의 추억도 함께 따라 있는 듯 합니다.
어느 누군가,
우리들 시절엔 모두가 공감되는 그런 이야기의 그림....
한참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삶의이야기 게시판 글 읽으면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모두 공감 가는 이야기들
글마다 댓글 달 여유가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아폴로 극장 오픈 할적에
명가수들이 출연 한다는 현수막 이 신기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아폴로극장
대지극장
이덕화. 임예진 주연 했던
하이틴 영화 보러 다녔던 기억이
그 시절 영화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너무도 그리운 옛 길 옛 동네의 추억을 찾았군요 우리들 모두 마음 속에 옛동네 옛길 옛 동무들
어울려 뛰어 다녔던 마을 고샅길의 장면들이 이 글 읽으며 또아리 풀리 듯 한 느낌을 받았을겁니다.
실타래 풀리듯
추억의 그 시절과 그 동네 풍경속으로
맞아요 어떤 계기가 있어 그런 경험들
감사합니다 ~~
비만 오면 질척거렸던 전농동 답십리에서 살았던 나는 이런 이야기 들으면 뚝방길에서 학교 마치고 오는 나를 기다리시던 엄마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 왠 비는 그리 며칠씩 내렸는지 아궁이에 물이 고여서 밥을 화덕에서 해먹었지요 노벨극장 쇼만 오면 동네가 시끄러웠던 동네 오빠들 눈을 실룩 거리며 극장언저리를 배회했던 그 칙칙한 동네가 한번씩 왜그리 생각이 나는건지 다들 지금 할배들이 되어 있겠지요
칙칙한 동네에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지금은 할배나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요
그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