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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바다가 있는 풍경 - 증도(曾島)
아무튼 뭍에서는 섬이라고 하면 흔히 볼 수 없는 좀은 특이한 환경이다 보니 다소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오늘은 산행이기보다는 섬으로 테마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거의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신안군 증도(曾島)라는 남쪽의 아주 작은 섬마을이다. 신안군은 섬만으로 이뤄진 군으로 유인도가 73개에 무인도가 754개나 있어 섬이 무려 827개나 된다. 오늘의 목적지인 증도가 속한 증도면에도 8개의 유인도와 91개의 무인도가 있을 만큼 다도해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웃에 간첩단사건으로 낯익은 임자도가 있다. 전남 무안에서 지도읍 송도(솔섬)까지는 육로이고 지도대교를 넘어 다시 사옥도를 거쳐 증도(曾島)다. 목포에서 50킬로미터이고 지도읍에서는 해상으로 3킬로미터 지점이다. 섬으로 가는 길 무안은 온통 황토밭에 양파의 시퍼런 이파리가 밭고랑을 채우고 흙속에서는 한창 알이 굵어가고 있을 것이다. 간혹 마늘밭도 보인다. 양파나 마늘은 세찬 해풍을 맞아야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되고 품질의 우수성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지역적 특산품이다. 이제 섬과 섬이 다리로 이어져 차를 타고 넘나들기에 섬이란 실감이 덜하다.
간간이 김양식장인 듯싶은 물속에 늘어선 지주들도 보인다. 이번 여행은 점점점......, 아니 섬섬섬......., 수많은 섬을 펼쳐놓은 다도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을 만큼 걸맞은 곳을 간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송.원대유물발굴해역’이다. 목포에서 43킬로미터 이곳 방축리에서는 2킬로미터 여 떨어진 도덕도 앞바다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상선이 침몰되어 개펄에 쑤셔 박힌 곳이다. 30여 년 전에 한 어부의 그물에 우연히 덜미가 잡히면서 수심 20~24미터의 조류가 세찬 곳에서 700년의 긴 잠을 깨고 그 면면을 드러냈다. 주로 도자기류가 주류를 이루지만 무려 2만3천여 점이 인양되어 세인을 놀라게 하였던 곳으로 ‘송.원대유물매장해역’ 이라 하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74호로 지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바다는 다시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입을 꾹 다물거나 시침을 뗀다. 혹은 그 아팠던 상처를 가리기라도 하는 양 바닷물만 더 열심히 출렁거릴 뿐이다. 나그네는 그냥 멀건이 저기쯤이겠지 마음속에 그려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젖다가 돌아서 반 토막 배 모양을 한 전시관으로 향하였다. 도자기류 모조품(재현품) 일부만 전시되었다.
엊그제 천안함 침몰과 인양의 분노가 아른거린다. 물론 이곳은 풍랑을 만나 침몰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당시 사람의 흔적은 간 곳이 없고 오직 유물만이 남아서 더 빛을 발하고 있지 싶어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 일로 증도가 보물섬이란 별칭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그리 맑거나 푸르질 못하고 뿌연 것이 좀은 탁해보였다. 갯바위에 굴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작은 돌로 톡톡 두드려 알갱이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짭짜름한 것이 금세 혓속을 헤집고 들어와 바다가 출렁거렸다. 장소를 옮겨 짱뚱어다리를 건넌다. 개펄을 가로 질러 나무로 다리를 놓아 산책길을 만들었다. 그 아래 드러난 개펄에 많은 짱뚱어(통틀어 그냥 망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서식을 하기 때문일 텐데, 지금은 철이 아닌 모양인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작은 게들만이 엉금엉금 거리고 수없는 구멍들 속에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곧 밀려올 바닷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개펄생태계 현장학습을 하는지 개펄 진흙 속으로 빠져들며 넘어지고 일어서고 시시덕거리며 머드팩을 겸하기도 한다.
저 넓은 개펄을 보는 순간 순천만이 떠올랐다. 그곳엔 넓은 갈대밭이 있었다. 또한 넉넉히 흘러드는 민물과 함께 풍부한 먹이가 있어 철새들의 낙원이 되었으나 이곳에는 아쉽게도 갈매기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다. 좀은 단순하니 삭막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 산자락으로 오른다. 해안선을 끼고 도는 해송솔밭 산책길이다. 나무 사이로 양쪽에 밧줄을 연결하여 푹신한 산책로를 확보하고 구간에 따라 해당화를 많이 심어 놓았다. 바다와 함께 저 꽃이 필 때쯤 이 길을 걷노라면 새로운 감정이 움틀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야트막한 산일망정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지천으로 널린 게 고사리다. 고사리 또한 섬에서 자라기를 아주 좋아하는 식물인 게다. 그 누구의 간섭도 싫어하며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자생을 꿈꾸는 것이리라. 해안의 모래사장을 걷는다. 마침 밀물 시간이다. 밀려오는 물길이 마치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폭군과도 같다. 달려오다 허무하게 무너지며 내지르는 고함소리던가. 요란한 여울물 소리를 뛰어넘는 해조음이 금세라도 주변을 삼킬 듯이 위세를 떨치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좀처럼 지치거나 멈추지 않는 일상이다.
앞섰던 용사들이 쓰러지면 그 뒤를 이어 다시 달려드는 용맹으로 한 걸음씩 전진은 계속되고 끝내 목표지점에 다다른다. 그러다가 또 한 걸음씩 뒷걸음으로 저만큼 물러날 것이다. 바다는 때로는 어미가 새끼를 떨어뜨려 놓고 안달하는 모습과도 같이 오버랩 된다. 물길의 힘에 편승하여 아기 섬은 앙앙거리며 엄마품안으로 달려올 성싶고 엄마는 발을 동동거리며 팔을 벌려 금세라도 아기를 끌어안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서로 애타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그렇게 부르다가 잠잠해지고 미친 듯 발작을 한다. 저 많은 섬을 바라보노라면 태고에는 바다도 평범한 육지의 한 산자락이었던 것이 지각변동으로 물이 차오르며 얕은 곳은 잠기고 다소 높았던 봉우리는 지금껏 목을 내놓고 섬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이 얽혀서인가 바다는 뭍으로 달려오며 그리워하고 뭍은 바다를 애써 밀쳐내며 아쉬워하고 그렇게 아옹다옹하는 듯싶지만 서로 상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으르렁 대도 서로 감싸고 외로움을 달래며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너른 품으로 세상을 안고 수많은 생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
우전해수욕장도 지나고 리조트가 있는 갯벌생태공원에 생태관도 슬쩍 엿본다. 이곳 또한 만만치 않은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염전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단일염전으로는 최대의 소금산지답게 간척지의 들판이 온통 염전(태평염전)으로 자그마치 60만평이나 되는 광활한 소금밭이다. 한 해 생산량이 1만5천 톤으로 우리나라 천일염 생산량의 5%를 차지한다. 소금 긁어모으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염전바닥서 왕소금 하나를 집어 입에 대니 금세 짜다기보다 쓴맛이 더 나지 싶다. 이는 염도가 너무 높아서란다. 뜬금없이 방송국 다큐멘터리에서 본 차마고도가 스쳐간다. 중국의 해발고도 4천 미터가 넘는 험준하고도 가파른 길을 마방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윈난성 쓰촨성 지역의 차(보이차)와 티베트의 말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목숨을 걸고 넘나들었던 길이다. 그 중에 소금은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다. 음식은 간이 맞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 없을뿐더러 몸에 염분은 많아도 탈이 나지만 적어도 문제가 되어 적당량을 흡수해야 하는데 그 기본이 소금으로 한 때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전매품이기도 했다.
그냥 단순히 바닷물을 증류만 시키면 소금이 되는 줄 알지만 소금밭은 무려 스물 댓 단계나 거쳐야 비로소 양질의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바닷물을 끌어다가 끌판으로 미는 대패질을 하는데 하루 한 단계에서 두 단계씩 옮겨간다. 20여 일이 되면 수분은 점점 증발하고 염도는 높아진다. 염도가 25도 정도 되면 소금결정이 맺힌다. 창고에 쌓아두면 간수는 쪽 빠져나가고 소금만 남는다. 이렇게 완성된 소금은 염도 85도 정도이고 나머지는 미네랄이다. 염도 95도가 넘는 소금은 천일염보다는 암염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제 소금밭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물을 끌어오는 수차도 없어지고 70년대만 하더라도 개펄을 다져서 소금판을 만들었고 80년대엔 깨진 옹기조각이나 사금파리로 바닥판을 댔다. 여유 있는 사람은 타일을 깔았는데 지금은 모두 고무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무로 지어놓은 소금창고나 염수저장고는 예전과 똑같다. 이처럼 많이 변한 듯싶어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껏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탓인지 큰 변화가 없지 싶다. 그래서인가 변화가 없는 곳으로 ‘슬로우시티’란 이름까지 얻어 자랑스러운 브랜드로 내걸고 있다.
내 것을 내 전통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상품화하고 있지 싶다. 이곳에서는 이처럼 바다에서 노다지 금을 캐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곳의 슬로건처럼 ‘바닷물 백 바가지가 한 줌 소금’이 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날씨를 탓하지 않으며 기다림과 참아내는 인내 속에 햇볕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천일염을 만들어낸다. 전통방식의 고기잡이를 하던 『독살』도 보인다. 주위를 돌로 쌓아 들어왔던 바닷물이 빠지면서 물이 빠질 때 미처 함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일종의 돌그물인 셈이었다. 돌아가는 길목에 어시장이다. 세숫대야만 한 광어가 바다에서 갓 잡혀왔나 보다. 아직도 너른 바다에서 마음대로 활개를 치던 제 세상 기운이 넘쳐 성깔을 부리는지 펄떡거리지만 물을 떠나 뭍에 올라왔으니 넌들 무슨 힘이 있겠는가. 머지않아 기력이 쇠진하여 좌절하며 힘없는 눈동자만 굴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지 그 공포의 시간을 앞당겨 식탁에 올랐다. 밑반찬도 없이 뭉툭뭉툭 썰어진 살점을 달랑 초장 하나에 꾹꾹 찍어 밥을 씹듯 넘겨도 성질만큼이나 쫀득쫀득한 것이 단내까지 풍긴다. 살짝 알코올로 초를 친다.
제비 한 마리가 빠른 날갯짓에 휘둘러 간다. 제비란 말 한마디에도 정감이 묻어난다. 어릴 적 농촌 처마에 귀찮도록 집을 짓고 똥을 퍼질러대던 제비다. 입을 딱딱거리는 새끼들을 위해 열심히 곤충을 수없이 잡아 날랐다. 그간 농촌 인심이 각박해졌는지 집짓기도 만만치 않은데다 새끼를 먹여 살릴 먹잇감을 구하기도 온통 농약이 살포되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마저 힘들게 되었다. 그런 환경 변화의 바람을 타고 제비는 끝내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 멀리서 그 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 2010. 05. 04. 신안군 증도 테마여행 (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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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보다 선명한 산행기 항상 잘 보고 갑니다~항상 감사합니다~오래 오랫동안 좋은글 많이 올려 주세요 문방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