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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교육청은 지난 2021년부터 일상 속 외국어,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우리말 다시 쓰기` 사업을 추진해 아름다운 우리말의 가치를 되살리고 있다. 지난 10월7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하반기 우리말 다시 쓰기`에는 지역 중ㆍ고등학생 1천876명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또 울산교육청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국어책임관 업무 우수사례에서 2년 연속 교육청 부분 최우수 기관에, 지난해에는 우수기관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한글 사랑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이러한 한글 사랑의 밑바탕에는 울산이 배출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역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12길 15에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과 생가터가 있다. 서울 장충동 2가 산 7-24에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가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있기까지는 멀리는 대스승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계셨고, 가까이에는 주시경 선생이 계셨다. 알다시피 주시경 선생은 조선말 개화기에 한국어와 한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국문학자이자 언어학자이다. 독립협회 활동 중 한글 표기법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어 문법을 정리하셨다. 독립신문 발행과 각종 토론회, 만민공동회의 자료를 백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글로 썼다. 또한, 훈민정음을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란 뜻을 지닌 `한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시기도 하였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 중 걸출한 인물이 남한의 최현배 선생과 북한의 김두봉 선생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 고유의 문자를 지키고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해방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의 언어 정책을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남과 북의 언어 정책에는 분명 차이가 있으나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규칙은 남북한 모두 같다. 해방 후 남북 모두 정치적 주권에는 제약이 있었지만, 우리의 주권을 확실하게 지킨 것은 한글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 아래에서 주시경의 제자들만큼 외세에 저항하고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 한민족의 우수성을 밝혀 드러낸 것도 없다.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었다. 특히 최현배 선생은 주시경 선생이 마무리하지 못한 문법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맞춤법 통일안, 사전 편찬, 조선말 소리와 로마자의 대조안 작성 및 외국어 고유 명사 사전 편찬을 하였다.
그러나 요즘 교육 현장을 둘러보면 바르게 된 스승 찾기와 제자 찾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스승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스승이 나설 수 없는 시류가 21세기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아직 미흡한 과도기 연령층에 있다. 학생들에게는 자유와 자율을 넓게 허용한다 해도 여전히 돌봐주고 지도해주어야 할 스승이 필요하다.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말하며 멋대로 행동하는 학생들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뭘 이루고 싶은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분명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는 곳이 학교 교육 현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시제도에 순응하여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득점 올리기에 온 힘을 다하느라 주체적인 판단이나 생각을 할 여지가 없이 소외가 일상화되는 곳도 학교 현장이다.
학생들의 장래와 전반적인 교육 발전을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실생활의 차원에서 교훈을 주는 스승의 역할이다. 학생들의 가슴에 새겨질 감동 대사를 만들고 교훈성 대사로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현행 교육제도 아래에서 이러한 요구는 무리가 많음을 잘 알고 있지만, 스승이라면 남에게 미루지 말고 반드시 해야 할 임무이다. 학생들에게 힘을 보여주는 모험극을 연출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상황을 극복하는 의지를 길러주라는 것이다. 사라진 스승이 아니라 부활하는 스승의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 역사에 분명히 있었고, 그 영향력이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오늘, `우리말 다시 쓰기`와 같은 행사를 통해 울산교육청이 스승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울산 지역 학생들은 제자의 역할을 확실히 하는 `사제동행`의 참모습을 계속 그려보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사오입(四捨五入)`을 `반올림`으로, 마름모꼴, 꽃잎, 짝수, 홀수와 같은 낱말들이 최현배 선생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울산 학생들은 `셀럽`을 `인기쟁이`로, `어그로`를 `관심끌기`로, `마블링`을 `고기 무늬`로, `뇌피셜`을 `설된 의견`으로 바꿔쓰기를 제안한 것은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