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55:1 - 55:15 배신당한 감정을 정직하게 토로하는 기도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삼하15~17 장 먼저 읽으시고 나서 큐티하면 됩니다.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55:1~8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차라리 그가 원수였다면 55:9~15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
[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는 악인의 압제 때문에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사망의 위험 앞에서 두려워 떨던 그는 멀리 피난처로 날아가 편히 쉬기를 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를 책망하고 오만하게 구는 자가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함께 다니던 친구라는 사실에 탄식하며, 그들을 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55:1~8
55편은 근심 속에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입니다. 원수들이 무고한 자에게 죄를 덮어씌우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에게서 숨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도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하나님의 외면입니다. 두려움과 떨림, 공포가 시편 기자의 마음을 덮었습니다(5절). 그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면 많은 감정이 차오릅니다. 그때 성도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쏟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독수리처럼 싸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비둘기처럼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두려움과 떨림과 공포 속에서 시편 기자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내가 아무도 없는 광야로 피하고 싶은 때는 언제인가요?
-----------
차라리 그가 원수였다면 55:9~15
시편 기자는 불의한 폭력과 싸움이 가득한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활보하니 죄악과 재난과 속임수가 성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쏟아 놓습니다. 그는 악인을 멸하시고 더는 악한 말을 내뱉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간구합니다(9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 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쏟아 내야 원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그 친구는 세속적 우정만을 나누던 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함께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입니다. 충격적인 일을 당할 때 성도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나아가 상한 감정을 쏟아 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를 괴롭힌 사람은 누구였나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 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죄로 물든 세상에서 경험하는 원수들의 압제에 무릎 꿇지 않기를 원합니다. 절망의 무게를 소망으로 견디고 슬픔의 터널을 인내로 통과하며 의심의 길을 믿음으로 걷게 하소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어디서든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본문의 정리: 친구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한 시인은 하나님께 근심과 걱정을 맡기고, 곤경에서 구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의지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려고 노력한다.
* 본문의 명제: 너희는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 명제: 걱정과 근심, 배신과 낙담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시며,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극복할 유일한 도움이 되어 주시며, 피할 길을 내시고,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걱정과 근심 앞에서 주눅 들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하고, 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길을 열어 주시고,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주시기를 간구하자
걱정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큰 영향을 받게 되고,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주님께 다 맡겨 드리고, 주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 상황, 내 마음을 온전히 토로하고, 주님께 그 모든 짐을 맡겨 드리도록 노력하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그분께서 우리보다 앞서서 일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그분께서 열어 주실 문,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주님께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올려 드리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6-18절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시 94:14).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원수들과의 싸움터에서 하나님은 평화로 이끌어주실 것이므로, 시인은 절망 속에 헤매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주께 있으니 우리는 다만 기도로써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길 뿐입니다(롬 12:19).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21절 사람들의 모진 말들은 우리를 마음의 고통을 넘어 죽음의 공포로까지 몰고 가기도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친했던 사람들의 배신은 두려움으로 온몸을 뒤틀리게 할 만큼 큰 아픔입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날개 있는 비둘기처럼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싶고, 멀리 달아나 광야에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원수였더라면 견디기 쉬웠을 텐데, 믿었던 친구였기에 끙끙 앓느라 공황장애, 대인기피,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시인은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혀를 잘라달라’고까지 솔직하게 기도하는 시인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기도의 힘을 배웁니다.
9-11절 시인이 살고 있는 성은 일곱 가지 죄악(‘강포’, ‘분쟁’, ‘죄악’, ‘재난’, ‘악독’, ‘압박’, ‘속임수’)이 거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넘치는 죄로 악취가 가득한 도시입니다. 지금 우리의 도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성(시 48:1,2)으로 구속할 수 있는 힘은, 매일 말씀의 통치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새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기도
공동체-미움과 증오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애끓는 이 마음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표제어에 있는 것과 같이 다윗의 마스길로, 시편 기자의 전형적인 탄원 시를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의 위기의 상황을 표현합니다. 그 후 여호와를 향한 그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본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탄식하는 시인, 토로하는 시인, 상처와 분노, 배신과 갈망 등입니다.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 ‘내가 탄식하는 원인은 내 적의 목소리 때문이며 악인들의 압제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게 죄를 저지르고 분노하며 미워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원수’는 아버지를 배반한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을, 그리고 ‘악인’은 다윗의 편이었지만 반역한 천재적인 모사꾼인 아히도벨과 그의 부하들을 말합니다. ‘소리’는 반역자들이 군대를 모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핍박하나이다'는 무력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 ‘내가 성안에서 폭력과 분쟁을 보았으니 오 여호와여! 그들의 혀를 가르시고 파멸시키시옵소서.’ 라는 말입니다. 성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분쟁은 무력에 의한 반역 거사를 가리킵니다. ‘혀를 잘라 버리소서.’라는 주문은 문자 그대로 원수들의 혀를 잘라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거사를 잘라 달라는 즉, 이루지 못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이 때 쓰인 히브리 동사 ‘자르다’는 ‘나누다’. ‘그치다’의 뜻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에 쓰였던 동사와 동의어입니다. 이 간구는 압살롬 거사의 실패로 응답됩니다.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내 대적이었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아들인 압살롬과 옛 전우 아히도벨) 다윗의 원수도 대적도 아니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참으로 낭패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해치려는 자가 차라리 원한을 품은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고통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으로, 결국 다윗은 예루살렘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해설과 묵상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 ‘그게 바로 너라니! 동거 동락했던 내 전우, 내 절친 이라니!’ 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대적하는 적의 모사꾼이 다름 아닌 자신의 오른 팔이었던 (마치 삼국지의 제강공명 같은) 탁월한 작전참모 아히도벨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여 절규하는 다윗의 비명입니다. 이는 마치 칼에 맞아 죽어가면서 하는 카이사르의 말, ‘브루투스, 너마저!’ 와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탁월한 군사작전 전문가로 다윗 왕국 건립의 일등공신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그를 거의 같은 위치에 둡니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가 그 말입니다. 또한 그는 다윗과 함께 나라의 일을 걱정하던 사이입니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가 그 말로서, 원어에 그 말은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한 비밀스런 회합을 자주 갖는’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는 각종 절기와 제사 때에 늘 다윗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가 그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합류합니다.
배신 중에 배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배반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총애했기에, 다윗은 아히도벨의 배신을 더욱더 참기 어렸을 것입니다. 그는 절대군주였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반역자를 처단하는 방안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분노한 만큼 보복은 정비례하는 법이지만,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복수하지 않습니다. 자객을 구하지도, 다른 왕처럼 강대국의 지원군을 청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한 분, 여호와께만 탄원합니다. 그 간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었을까요? 그렇다고 봅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즉각 응답됩니다. 그 후 능력 있는 한 사람이 압살롬의 편에 위장 가담한 것입니다.
곧 후새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비록 일선에는 물러났지만 아히도벨 버금가는 전략가입니다. 다윗은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기용한 것은 다윗의 왕국에 그분의 애정이 그리고 기름부은 다윗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 하나님의 증표입니다. 그 때 다윗의 마음에는 억울함, 분노, 그리고 좌절감 같은 감정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발산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호소하니, 보이지 않는 그분에게 입니다. 때로는 침묵하시기도 하고, ‘No’라고 답하시는 하나님에게 입니다. 잘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선한일이요, 위대한 일입니다. 가장 악한 일을 가장 선한 일로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약 1,000년 후 한 사람이 그 일을 정의합니다. 바로 사도 바울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용하고 선포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바로 그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가장 선한 일입니다. 곧 선한 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입니다. 어제의 아군이 내일 적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본받아 악을 선으로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55편은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한 아히도벨의 계략에 대해 다윗이 하나님께 의뢰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히도벨과 다윗의 관계는 사무엘하, 역대상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히도벨은 다윗의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사무엘하 15:12, 역대상 27:33-34).
하지만 그의 손녀 ‘밧세바’와 죽은 ‘우리아’ 사건 때문인지 말년에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하고 아버지에게 반역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아히도벨의 조언을 높이 평가하고 소중히 여긴 만큼 다윗에게 이 배신은 다 큰 슬픔이었습니다(2,13~14절).
또한 그의 지략을 잘 알았으므로 그를 향한 칼날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직감했습니다(4,5절).
믿었던 동료의 배신과 강력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계획 보다 크시고 그 지혜보다 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관자 되심을 인정했고(9,15절) 또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1,2절).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모든 슬픔과 아픔을 돌아보시고 섭리하시는 주님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겸손과 순종으로 의뢰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악한 혀는 삶을 불사르는 지옥불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사람의 혀는 설망어검(舌芒於劍), 곧 칼보다 더 날카롭게 사람을 베고 찌르고 죽이는 것입니다 다윗도 악한 혀의 지옥불로 인해 마음에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시55:4~5)
바로 원수의 악한 말소리들 때문입니다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시55:3)
원수의 혀의 지옥불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차라리 광야로 가서 홀로 있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시55:6~8)
그래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다윗은 이렇게 주께 간구했습니다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시55:9)
그러나 그들은 쉬지도 않고 성벽 위로 두루 다니며 악한 독사의 혀를 마구 놀렸습니다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시55:10~11)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친구라고 여겼던 자의 악한 책망의 혀입니다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55:12~13)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오직 한 분 뿐이신 우리가 의지할 이, 주께 간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시55:1~2)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원수의 음모와 소동에서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시64:1~2)
(시 55:1~23절)
❝상한 심령을 치유받는 삶❞
❚ 억울한 일로 인한 상함 심령을 그럼에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짐을 맡김으로 치유 받아야 합니다.
✔ 상한 심령을 치유 받는 길을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1~8절).
55편은 다윗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 압살롬과 자신이 믿고 신뢰했던 신하 아히도벨의 반역으로 쫓김을 당하던 다급한 상황에서 부르짖는 시입니다. 다윗은 현재 바람결에 어지럽게 흔들리는 수풀과 같은 암울한 상태(2절)에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내 간절한 소원을 모른 체’(1절)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쫓기는 다윗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두려움과 떨림,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4~5절)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중얼 거립니다.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쉴 수 있으련만,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물 수만 있다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달아날 수만 있다면...’(6~8절).. 이는 곧 자신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심적인 괴로움과 고통과 비현실적인 갈망 등을 주저 없이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피난처시라고 늘 고백하며, 가르쳤던 내 자신이 정작 힘겨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하나님을 피난처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고백하며 결단합니다. 내 인생에 몰아치는 인생의 폭풍과 광풍을 피해 참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거나 어떠한 고난과 환난 심지어는 죽음의 위협이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큰 통의 작을 물 한 방울과 같은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간절히 부르짖음의 자리로 나아갈 때, 상한 심령이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 솔직하게 마음을 담아 기도해야 합니다(9~15절).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이 행한 악행을 솔직하게 고발합니다.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일삼고,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며 성중에서 죄악과 재난과 악독 그리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9~11절). 그래서 다윗은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9절)라고 원수들의 파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무엇보다 더욱 힘들게 하였던 것은 자신을 쫓는 자가 적이었다면 참았을 것이고, 자신을 미워했던 사람이었다면 그냥 숨고 말았을 텐데(12절), 다름 아닌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던’(13~14절)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다윗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15절)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훌륭한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다윗은 자신의 속마음에 있는 것들을 적나라하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필요를 아무 꾸밈없이 요청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 또한 그렇게 하나님께 솔직하게 마음속에 담아 놓고 있는 것들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인한 배신은 그 고통이 배가 됩니다. 인간이 인간만을 믿고 의지할 때, 이와 같이 뜻하지 아니하는 낭패를 경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어찌됐든 절박하고 애매한 고난과 기가 막힌 삶에 직면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애써 기억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혹 내 자신이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마음 아파해 주고, 함께 고민해 주고, 함께 답답한 문제를 안고 기도해 주는 든든한 영적 동역자들이 곁에 있음에 무한 감사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하게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기도의 그릇에 담아 간절히 부르짖음의 자리로 나아갈 때, 상한 심령이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세상의 풍파는 우리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고,
우리 안의 죄악은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계속 악취를 뿜어냅니다.
하지만,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음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결코 물러섬이 없다는 사실을
다윗을 통해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놀라운 초대에 날마다 겸손으로
구하고 담대함으로 평강에 이르는
주님의 거룩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오늘도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가운데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주님을 깊이 만나도록 축복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히 인정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일으켜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