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횃불이 밝혀지는 날
인류의 평화는 이루어지리라!”
“동방의 횃불이 밝혀지는 날 인류의 평화는 이루어지리라!!!”
이 말은 인도의 詩聖시성 ‘타고르’의 말이다.
앞글에서 밝혔듯이 미래의 인류사회는 현재의 二元論이원론, 兩分法양분법의 價値觀가치관으로는 현재의 混亂相혼란상을 해결 할 수 없다.
우리의 현재의 모든 지식인들은 民主主義민주주의를 至高至善지고지선의 가치로 알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지식인” 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제는 중국과 북한만이 아직 붙들고 발버둥치고 있는 공산주의 와 二元論이원론, 兩分法양분법의 價値觀가치관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서구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현 서구민주주의는 그 기본이 양당제 내지는 다당제이다.
여와 야로 나뉘어서 지금까지는 상호 경쟁하고, 견제하고 발전 해 왔지만 이제는 그 한계에 다다른 것이고, 그 이상의 발전은 없다.
중동지방의 이슬람 세력권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국가들을 제외 하고라도 잘 발달한 민주국가들의 인류의 難題난제들을 해결 할 대안이 있는가? 그 대안을 명쾌하게 제시하려는 것이다.
먼저 인류사회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져간 공산주의를 보자.
공산주의 학문은 1846년 독일인 엥겔스와 칼 마르크스에 의하여
<공산주의통신위원회>가 조직되고 1847에 <정의자동맹>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개편하여 1848년 쾰른에서 <신라인신문>을 발간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확산시켰다.
※엥겔스는 프로테스탄트의 목사였고 마르크스는 가톨릭 신자였다.
밭에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나오고, 수박씨를 심으면 수박이 나온다. 그와 같이 목사의 머릿속에는 기독교 사상밖에는 없다.
즉, 排他배타와 獨善독선의 바탕위에 二元論이원론, 兩分法양분법의 정신에서 공산주의 이론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편을 갈라서 자본가를 ‘브르조아’ 라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브르조아를 타도하고, “노동자가 주인이다.” 고 인민을 선동하니까, 그야말로 노동자들은 ‘뿅’ 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국토의 땅 한 평, 제반 산업의 기계하나 자신의 소유가 없다.
모두가 국가의 것이다. 이렇게 되니 노동자는 그 국가를 운영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면 국토와 모든 기간산업, 모든 재산은 누구의 것인가?
그를 지배하는 통치자, 곧 공산당원들의 것이다. 그것도 하부 당원들은 여차하면 숙청이니까! 언제나 坐不安席좌불안석이다.
오로지 최고통치자와 상위 몇 명이 모든 生死與奪權생사여탕권을 쥐고 있다.
그러니 인민은 인간만사에 주인의식이 없다. 북한의 인민은 生생과 死사도 자신에게는 자유가 없다.
이러니 모든 공산국가는 처음에는 국가의 통제와 기획 하에 생산성이 자본주의 사회보다 앞서가는 것 같았으나, 자율권을 상실한 인민은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저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만 하고 배급은 주는 대로 타 먹음으로 노동자들에게서 創意力창의력이 나올 수 없었다.
창의력을 상실한 인간은 식물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러니 자본주의 사회의 활력 있는 생산력을 따라 올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공산주의를 레닌은 1917년 2월에 굶주림과 추위와 전쟁에 지친 군인들이 황제를 몰아내자, 1917년 11월 7일 볼세비키 적위대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새 정부를 탄생시켰으며, 인민위원회 소비에트 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6년 후 1924년 1월 21일에 뇌경색으로 사망하였다.
레닌은 공산주의 학문에서 공산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최초의 사람이다.
이러한 공산주의 종주국이 74년 만에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엘친에 의하여 1991년 12월에 망치와 낫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크렘린 궁에서 내려짐으로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중국은 등소평의 黑猫白猫흑묘백묘론으로 자본가를 인정하고 육성하며,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으나, 아직 정치만은 사회주의 정치를 고수하고 있다.
만약에 중국이 정치제도도 서구민주주의를 도입 한다면 즉, 인민에게 투표권을 부여 한다면 56개 소수민족이 저마다 독립하겠다고 나설 것이기 때문에 정치만은 사회주의를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 언제까지나 지금의 정치형태를 유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북한은 3대 세습으로서 인민에게 억압통치만을 하고 있음으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고, 오로지 무기만을 가지고 국가를 지탱하려 하나, “무기가 밥 먹여주나?” 북한의 운명의 날은 초읽기이다.
서구민주주의 Democracy 이것을 우리가 民主主義민주주의
즉, 民主(민주; 국민이 주인이다.) 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는데, 民主가 아니라 ‘다수가결제’ 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왕권세습에 반하여 공화정치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정당정치로서 派黨파당을 만들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모든 파당은 二元論이원론에서 온 것이다.
서구에서 Democracy가 태어날 때 그들은 二元論이원론, 兩分法양분법의 價値가치 외에는 一元論일원론의 思考사고를 할 줄 몰랐다.
파당을 나누어 쟁탈전을 하는 것은 ‘스포츠’게임 에만 한정하는 것이 좋다. 스포츠는 이게 아니면 성립이 안 되니까...
인류의 삶을 운영하는 정치는 이렇게 하면 고달픔의 연속이지 平和평화는 없다.
우리정치판의 파당은 망국적 派黨파당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논쟁을 하는 게 아니고 자당의 이익만을 위하여 매사에 반대를 위한 투쟁을 한다.
國益국익에 앞서 黨益당익이 우선이고, 당익 앞에 국익은 없다. 우리의 정당은 나라의 발전에 패악질만 한다.
이러니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세상은 광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제자리걸음은 곧 퇴보이다.
人類인류나 모든 생명을 가진 생명체는 平和평화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평화는 생명의 보전이고, 투쟁은 생명의 말살이다.
짐승의 세계에서는 평화라는 가치를 인지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는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에 따라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톨릭은 모든 접사 앞에 ‘평화’라는 단어를 붙인다.
①평화방송, ②평화신문, ③평화여행사, ④평화상조회 등 평화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다.
기독교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외친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에 평화의 시대는 없었다. 오로지 투쟁의 역사일 뿐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평화의 소중함은 알지만 그들의 기본 論理논리, 哲學철학, 思想사상의 틀이 排他배타, 獨善독선, 으로서 利己이기와 鬪爭투쟁의 토양을 갖추어놓고, 말로만 평화를 짝사랑 해보아야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역사는 지구촌 인류를 피로 물들였고,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다. 말로만 외치는 평화는 그야말로 口頭禪구두선일 뿐이다.
자- 지금부터 평화는 이런 것이다. 를 제시한다.
☢ 群行而 無怨逆之患 親疎無別 上下無等 男女平權
군행이 무원역지환 친소무별 상하무등 남녀평권
老少分役 自成和樂 在無分助 一無憾且怫異者
노소분역 자성화락 재무분조 일무감차불이자
남에게 원수를 사는 일을 하지 않아 보복을 당하는 우환이 없고,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고, 위와 아래로 나누는 등급-계급도 없었다.
남녀는 권리를 고르게 하고, 능력에 따라 일을 나누고, 스스로 성취하니 즐거움이 있고, 있고 없음에 서로 나누어 도우니,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여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 發政莫善於和白(발정막선어화백)
정치는 화백보다 앞서는 것 없고
治德莫善於責禍(치덕막선어책화)
덕으로 다스린다함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官無兼權(관무겸권)
행정은 권력을 겸하여서는 안 되고
政無越則(정무월칙)
정치는 법을 여겨서는 안 된다.
一無憾且怫異者(일무감차불이자)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다.
衆議一歸 爲和白(중의일귀 위화백)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로 모은다.
☢ 孝于家(효우가), 忠于國(충우국)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어느 대학 교수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옛 왕조시대에 忠충과 孝효를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주입시킨 것은 백성들에게 복종심을 심어 다스리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설명하던데, 근세조선 시대에 儒學유학을 국교로 하여 통치하던 시대에는 이 현상이 사실이었고,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
우리의 효우가, 충우국은...
“효” 자식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라고만 가르치는 게 아니고, 가족구성원 모두가 가정에 효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즉, 부모와 자식 모두가 가정을 중심으로 협력하라는 가르침이다.
“충” 백성이 임금님에게 충성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고 임금과 백성이 모두가 나라에 충성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나라는 곧 백성의 삶의 터전이니까 모두가 하나 같이 愛國心애국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다.
가정은 국가의 根本근본이기 때문에 우리조상은 孝于家가 먼저이고, 忠于國이 다음이다.
홍익인간은 “나, 가정, 국가”의 순번이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다.” 라고 말한다.
자- 이에 반하여 신약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마태복음 10장 32~40절} 32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
(是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是認) 할 것이요> 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 하리라> 34절 <내가 세상에 화평(和平)을 주려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하평이 아니오, 검(劍)을 주려(던지려) 왔노라> 35절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不和)하게 하려 함이니> 36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食口)리라> 37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독자여러분 필자는 예수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을 작성한 놈들이 예수를 이렇게 왜곡하고, 능멸한 것이지, 예수는 마태복음의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이러한 二元論이원론의 정신문명에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나온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제 북한만 무너트리면 지구상에서 청산이 되고, 아직까지 민주주의는 세계의 대세가 되고 있으나, 이것은 일반인들의 識見식견과 眼目안목이고, 先知者선지자의 눈으로 보면 이제 서구민주주의는 석양의 노을이며, 마라톤 코스의 반환점을 지났으며, 달의 만월을 지난 것이다. 즉, 기울어지는 시점에 왔다.
자- 그러면 홍익화백주의를 당장 시행하면 홍익사회가 되겠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 아직 홍익인간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회에서 마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달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필자가 대학에서 교재용으로 가르칠 수 있게 간략하게 정립한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홍익인간사상》 4권을 가지고 교육을 하고,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의 교재는 교육학자들이 이 책을 중심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이렇게 1세대 30년만 가르치면 우리사회를 홍익사회로 바꿔서, 그 토양이 조성되면, 현 서구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미련 없이 버리고 弘益和白主義홍익화백주의로 개혁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현 IS집단처럼 죄 없는 사람을 붙들어 놓고 코란을 들이대고 외우라고 하여, 외우면 살려주고 못 외우면 죽이는 저속하고 악랄한 짓을 하지 않아도 세계의 인류가 스스로 우리를 찾아와 스승으로 모시고 배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支配지배가 아닌 指導지도 이다.
지배는 萬人類만인류의 불행이고, 지도는 萬人類만인류의 행복이다.
이것이 바로 동방의 횃불이다. 우리 「한」민족이 아니고는 지구상에 指導지도의 가르침이 없다.
2023년 5월 27일 35차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