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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꼼수다 (한명숙 남편 박성준이 누구인가?)
한명숙남편 박성준은 통혁당 간첩사건으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 받고,
형 만기를 체운 전향하지 않는 간첩이었다.
한명숙 이런 인물 였으니까?
태극기 짓밟고 연설한 것 아닌가?
인공기 였다면 짓밟었겠냐?
*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식에서 짓밟고 있는 태극기 ‘국가 모독의 극치’*
박성준, 한명숙 부부는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사건에 관련,
실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당시, 통혁당 간첩사건으로 주범 김종태를 비롯해 4명이 처형당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김종태 만한 통일일꾼이 흔치않다.
그 같은 통일일꾼이 많이 나와 하루빨리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통일영웅’ 칭호를 하사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선지 김일성은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대학’으로 개명하라고 지시했고,
평양전기기관차 공장은 ‘김종태공장’으로 바꿨고 평양시내에는 ‘김종태거리’까지 생겨났으니
통혁당 사건은 김일성의 ‘지하조직’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로서 통혁당은 북한노동당의 남한 지하당이었다는게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샘이다.
(Wiki 님이 쓴 글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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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성공회대 겸임교수)를
위키 백과사전에 '민주화운동가'로 포장되어 있다.
~~ 통일혁명당 활동은 남한의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지령에 의한 간찹들의 공산화운동이란 것이 명백한 것이다.
그런데,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이 역사적 사실을
한명숙과 그 남편 박성준 '공산화운동가'를 '민주화운동가' 라고 왜곡 미화표기하고 있다.
통혁당 사건 당시,
한명숙 남편 박성준 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刑이 확정됐다.
검찰은 박성준씨에게 국가보안법위반죄, 내란음모죄, 반공법위반죄를 적용했다.
한명숙 씨게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 김종태(金鍾泰)을 필두로,
김질락(金瓆洛), 신영복(申榮福) 주도의 ‘민족해방애국전선’과
이문규(李文奎), 이재학(李在學) 주도의 ‘조국해방전선’에 하부조직을 두었다.
이들은 조직을 운영하면서 공산혁명을 획책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박성준-한명숙 부부는 공산정권수립을 획책한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ㆍ非합법, 폭력ㆍ非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했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수사발표문에서 “박성준(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4년)은
1967년 6월 申榮福(신영복)에게 포섭된 ‘黨(당) 小組責(소조책)’으로서
妻 한명숙 및 朴경호, 金국주 등을 小組(소조)로 포섭했다”고 밝혔다.
서울大 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명숙 부부 관련 통혁당 사건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북괴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反국가단체로서,
북괴가 간행하는 표현물 이나 기타 사회주의 서적을 반포하는 행위는
북괴가 시도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피고인 한명숙 등은 박성준으로부터 북괴 간행 ‘청춘의 노래’를 빌려 받고,
박성준의 부탁으로 엥겔스가 쓴 ‘사회사상총설’ 1권을 받아
그 책에 있는 ‘공산당 선언’을 노트에 필기하고,
박성준의 지시로 이○○, 최○○와 같이 읽고
反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한편
찬양-고무하는 표현물을 취득 복사, 보관, 반포하여 북괴를 이롭게 했다》
또한,
한명숙은,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에도 연루
한명숙은 1979년 이른바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또 다시 처벌받았다.
그는 당시 이우재(前 마사회 회장)·신인령(前 이대총장)·김세균(現 서울대 교수)과 만나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 목소리 방송 등을 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은 이들이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돼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 돼 있는 곳은 以北(이북)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이어 “한명숙은 다른 피고인들에게 ‘여성문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니 읽어 보라’면서
‘조선여성독본’ 복사판을 제공하였다”고 덧붙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명숙 남편이 민주화 운동가란다!|작성자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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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남편 박성준은 간첩이었다.
“나는 감옥에서 몇 해 사는 동안, 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아주 멋지고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 산악인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 나 자신을 닦습니다.
이 경험 속에서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마터면 가장 가까운 생의 동반자를 아주 조금 밖에 이해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겉으로는 여성운동 및 민주화(?)운동을 전개한다헀지만,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됐던 한명숙(현,민주통합당 대표)은,
자신보다 11년 먼저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있던
남편 박성준(현,성공회대 겸임교수)에게 보낸 옥중서신의 일부다.
부부가 모두 옥살이를 하던 시절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자빨의 지독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문구다.
사실 한명숙은 신혼 6개월만에 부부 모두가 통혁당사건으로 남편 박성준과 해어져야만 했다.
13년간 매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옥바라지를 해 온 한명숙의 사연은 당시 유명했었다.
이 후 한명숙은 좌익이 판치는 새상이 되자
국회의원으로서,
장관으로서,
또 총리로서,
국가권력의 핵심에서 일하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사람이 바로 남편 박성준 씨라고 했다.
민주쓰레기당 대표인사로 선출된 한명숙은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만 참배하고
다른 호국영령들에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요렇게 뱅댕이속 조부랭이 같은 政恥人이 이 나라에서 장애가 아닐될 수 있겠는가?
국립묘지에는
8.15 광복 애국투사,
6.25 및 월남전 참전 용사 등,
애국애족 선열들의 영령이 계시는
곳인데....그런 어른들을 무시한 한명숙은 빨갱이가 아니면 그렇게 못할것 아닌가 합니다.
어잰가 노무현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밟고
그 위에서 연설한 그 무도한 국가모독을 자행한 인사가 당대표라니?
민주통합당은 쓰래기통합당 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닙니까?
피흘려 목숨바친 8.15광복 애국투사들,
폭탄안고 적진에 뛰어들어 산화한 6.25참전용사들,
그 화려한 젊음을 바친 월남참전 용사들이
피흘려 흔들며 지켜온 그 태극기를 짓발고 선
좌빨, 자빨, 좌익들은 지금 무었을 하고 있는가?
애국 애족 용사들이 계셨기에 지켜온 이 나라는
지금 편안히 밥 잘 먹고, 등 따시게 세계10위권에 경제대국이 되어,
한명숙이도 박성준이도 당대표로 겸임교수로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 아니 한가?
역시 평양 출신에 한명숙의 남편인 성공회대 선생 남편과 너무도 같네.
빨갱이는 뭐가 달라도 다르거든.
한명숙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실은 남거든.
무현과 대중이, 박외눈? 모두를 싫어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거든.
오로지 홍어를 진상하면 공천을 받았으니까.
따라서 그 수족들(한화갑, 박지원, 권노갑등등)
박성준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간첩으로서,
자신의 妻 한명숙, 박경호, 김국주 등을 포섭한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 후 박성준은 1981년 출소할 때 까지.
당시 해방 후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한명숙 남편 박성준은 끝까지 김일성에게 충성한 간첩이었다.
간첩에서 전향하지 않은 최장기수로도 화제(?)를 모은 바도 있다.
출소 후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神學)을 공부했다는 박성준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맑스주의자” “평화주의자” “퀘이커”등으로 소개해 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존 언론에 보도된 관련내용을 가감 없이 게재해 본다.
週刊기독교 2003년 11월 1509호 인터뷰기사 中에서..
“...朴 선생(박성준氏) 순서가 돌아오자
자신은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맑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그 살아온 내력으로 사람들과 소곤소곤한 만남을 갖고 싶어
마이크를 쓰는 모임, 인터뷰, 텔레비전 출연은 가급적 사양한다.”
朴씨는 季刊 ‘새길이야기’2001년 겨울(3호) 인터뷰에서도
‘출소 후 신학(神學)수업의 이유’에 대해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보자.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에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朴씨는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戰* 이라크戰* 북한제재 등에 반대(反對)하는
소위 반전평화(反戰平和)운동을 벌여왔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전은
“군수산업의 이익을 도모하고, 석유이권과 중동패권을 노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로 삼는 전쟁이 아닌 침략(侵掠)(2003년 3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으로,
아프가니스탄전은
“최첨단 신무기를 대거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고
그 나라의 자연을 마구 짓밟고 완전 초토화하는 것(2002년 3월21일 著‘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등)”으로,
91년 걸프전은
“수십만의 젊은 이라크 병사들이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사막에서 살육되고,
미국이 이라크 사회의 인프라 구조를 파괴해버렸고
생필품의 수입마저 막는 경제제재를 지금도 풀지 않아서
백만 이상의 이라크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 등 병으로 죽어갔다(‘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등)”
그는 反美논리를 전개해왔다.
그는 특히 미국의 대북(對北)제재가 한반도에 전쟁을 부른다며
김정일 정권의 不法행위를 어떠한 형태로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2002년 경 쓴 ‘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는 글을 일부 인용해보자.
“설마 설마 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 민중(民衆)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경각심을 드높여 예의 주시하자.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에게 화해와 평화를 향한 우리 겨레의 역사적 행보를 방해하지 말라고 단호히 경고하자...
만에 하나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덮쳐온다면
우리는 휴전선 일대에 평화의 천막을 치고 평화를 호소하는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평화음악회, 평화단식농성 등 행사를 벌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산하자”
그는 같은 글에서
“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안전을 남의 손,
외세 강대국 미국에 맡겨놓고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며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를 내 건 박성준씨의 반미(反美)주의는
인류보편의 범죄로 규정되고 있는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우호적(?) 판단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슬람의 지하드[소위 ‘성전(聖戰)]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라며
심지어 9.11테러에 대해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以上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논문 中)”고 말했다.
같은 글에서 일부를 인용해보자.
“한반도는 위험을 안고 있는 불안한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 언제나 미국이 있지요.
우리가 이번의 사태(9.11사태)를 보면서
‘오만한 미국의 콧대를 꺾었다!’
‘미국도 당해봐야 한다’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무슨 짓을 했기에 테러리스트들이 그토록 처참한 보복을 생각해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무친 한과 절망과 증오의 뿌리가 무엇인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합시다.”
박성준의 반미(反美)사상은 반전론(反戰論), 평화론(平和論)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테러행위, 김정일*,후세인 등 독재자들의 비인륜적 행위, 인권에 대한 문재 제기는 없었다.
[출처] 입력 2012.01.24. / 골프로 패가망신.
첫댓글 이런사실 처음접하내요 감사하고요 내가바보였군요 감사하고요 그밥에그반찬 방상전채가 불안하내요 혹시........
잘 보고 갑니다.
옜 어르신이 잘못을 꾸짖을때 떽끼... 이놈아 란 말 들어본적 있는지... 이 어떤 나라인데 사실도 아닌것을 배포하여 민심을 흔드는... 남을 뜻고 비방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자니 스스로 러워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지 못하는 그런 수준 떨어진 나랍니까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앞으론 이런 비방의 글은 올리지 말았음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마음이 평온하여 모든게 아름답게 보이는 좋은 사람이 되겠지요...
하트해변님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는것인가 본데 무엇때문에 비방의 글이라고 하십니까?
좌파세력을 옹호 하는 뜻으로 생각이 듭니다
어떤사람이 잘못된 약속 속에서 잘못을 방치한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좌파가 판을치고 나는 다른세상이 좋으면 그곳에가서 살것이며 왜 우리나라 에서 편안하고 극정을 많이 할필요가없는데
매일같이 남을 헐떠고 욕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떠한 오늘날의 학생교육이 자기만이만 생각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더불어사는세상 나가 위대할려면 남도 나와같이 위대해야
내가 위대하지 혼자 잘댈수가없습니다 그렇게 좌파선동 종북이 좋으면 그 곳에가서 사십시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진환씨 위대한 분을 한부로 비방 하지 마십시요
역사적 "진실"을 아직도 "비방"이라고 생각 하시는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從北-주사파들이 민통당-통진당에서 큰소리를 치지요.
뼈속부터 빨갱이 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총리를 지내게 되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늦엊지만 지금이라도 감옥에 보내게되어 정말 속이 후련합니다.
이런 한명숙이 판치게 만든 대한민국.....
속이 상합니다
간첩. 박성준- 을 "김일성장학금 " 으로 된 변호사들이, 재심신청 하고, 강압 어쩌고저쩌고, 무죄 만들어. 혈세로 수십억 보상?
세상이 하수상하여라. 그들의 기질 과 유전자는 못말린당께.
할아버지가할 이야기거리가 다 나왔다.할말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