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황원갑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인 연수영을 보고 사게 되었는데, 작가 후기에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관련 내용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전략)
고당전쟁 당시 최전방 격전지인 건안성 인근 청석관 유적에서 연개소문과 연수영(연개소정) 남매와 관련된 비문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1930년대에 요녕성 개주 현장(縣長)을 지낸 신광서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때였고, 항일전쟁 중이었으므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60년에 들어서 비사성 등의 발굴을 계기로 요동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하였다.
(중략)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입수한 자료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기에 소개한다. 벽류하 상류 석성 점장대의 비문 일부다.
3년 을사(645년) 봄 3월, 당 매괴왕 이세민이 수륙 105만 병사로 요동지역을 침범했다. 비사성의 성주 우소가……묘도로 출병했다. 석성도사 연수영이 이르기를, 출병하여 가는 길이 역류가 일고 군선이 뒤집히니 출병은 옳지 않다. 또 묘도는 적지이며 적세가 강하니 출병은 불가하다. 그러나 우소부는 이에 따르지 않고 묘도로 병사를 보냈다. 결국 역풍이 불어 군선이 부서지고 묘도에서 적을 만났다. 적장 장량은 기다렸다가 사방에서 공격해왔고, 형세가 매우 위급해져 대다수 군사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연수영이 곧 수군울 이끌고 나가 구원을…….
[三年乙巳 春三月 唐埋魁王李世民 水陸一百五萬之兵 侵入遼東界 卑沙城之城主于炤□□□□□ 出兵妙島 石城道使淵秀英之請爲 曰 行路出兵爲的中 逆流澐之軍船顚覆 出兵不可 又□□ 妙島之敵地 敵地强勢 出兵不可 于炤夫不從强遣之 兵至妙島境 逆風軍船破 妙島相遇 敵將張亮俟四方合戰 形勢危急 兵斬煞蕩盡也 淵秀英之 水軍救援出兵爲 □□□□]
이번에는 신광서가 확보했던 석성 인근 오고성(위패산성)의 비문 일부를 보자.
이때 연정토가 갑자기 수군장군이 되었다. 관민이 근심하고, 불만이 컸으며 고성운 · 온사문· 장운형 등은 병이 나고 말았다. 정토가 공과 벼슬을 탐내 군주 자리를 얻고자 다른 남매 수영을 참소하여 수영을 부여성으로 유배를 보냈다. 개화 7년 봄 2월…… 여름 4월, 오호진 장수 고신감이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공격했다. 그는 우리의 보병, 기병 5,000명과 역산에서 조우하여 우리 군사를 이겼다. 그날 밤, 우리 군사 1만여 명이 고신감의 배를 습격하다가 신감의 복병이 출동하여 패배했다.
[時淵靜土驟登水軍將軍 官民憂懣 高成雲溫沙文張熉炯等病 靜土貪公官位取大軍主 異妹秀英讒簒秀英夫餘于串 開化七年春二月 水軍軍主靜土自新城道下磨米城泛海唐來擊攻淶亮谷 多所疑忌不亮形擊危急 唐將古神感攻奔走卑沙城北難軍溫沙文高成雲等激唐奴淶亮谷 形勢不利力戰敗之… 夏四月 烏胡鎭將古神感將兵泛海來擊 遇我步騎五千戰於易山破之其野 我軍萬餘人襲神感舡 神感伏發乃敗]
한편, 비사성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태왕 4년(645년) 8월 15일 수군 군주 연수영은 당과 싸우기 위해 비밀리에 출전을 명해 병선을 움직였다. 적은 10만 대군에 1,000척이 넘는 배로 오고 있었다.……대장산도에서 흑산도까지 난전에 난전을 거듭하여 서로를 죽였다. 그 결과 당병은 5만이나 죽고, 남은 배는 수백 척에 불과했다.……(원문생략).
또 한편, 오고성에서 발굴된 비석은 연수영의 최후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개화(開化) 12년 신해 8월 태대형 연정토, 을상 선도해, 대신 계진 등이 태대사자 연수영이 모반을 도모한다고 참소하니 태왕도 연수영이 다른 뜻을 품었다고 의심했다. 태왕이 고심하다가 태대사자 연수영을 파면했다. 풍문에는 연수영이 반역을 꾀했다는 참소로 사사되었다고도 하고, 전리로 방출되어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나라 사람들은 연수영의 무죄를 믿었기에 이를 매우 통탄했다.……(원문생략).
개화는 보장왕의 연호로 보이는데, 보장왕 12년 653년으로 계축년이고, 신해년은 651년이다. 이 정도로 이야기해도 여전히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수영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정말 곤란하다.
(후략)
시간이 없어서 간단히 교차검증을 해보자면 645년 1차 고당전쟁 때 비사성의 함락과정과 고신감과의 전투과정이 보다 상세하며 고자 묘지명과 삼국사기에 나온 마미성이 항구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1차 고당전쟁 때 당군의 규모를 정사에 적힌 것들 보다 상당히 많게 보고 있습니다.
당인은 唐奴, 당태종은 매괴왕이라고 하는 비칭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남동생 이름이 삼국사기 등에는 淨土로 나온 반면 비문에는 靜土라고 나와있더군요. 그리고 보장태왕의 연호를 開化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서로 판명된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나온 보장태왕의 연호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만일 중공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연수영 관련 비문들이 진짜라면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만들 때 참조한 텍스트들 가운데 후기 고구려 고유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사료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이유립이 위의 비문들을 봤을 가능성은 없으며 다른 계통의 고구려 고유의 사료를 참고한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에는 위와 같은 내용들이 일절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화라는 연호가 일치한다고 해서 환단고기에서 개화가 나오는 대목들이 당대의 진실을 보장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우선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고당전쟁 관련 기록들이 중국 측 사료와 겹치거나 인용한 부분이 존재하고 위의 비문에서 고구려는 칭제하지 않았지만, 환단고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서는 칭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는 이유립이든 이맥이든 누구든 간에 한참 후대에 편집하거나 지어낸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이유립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보장태왕의 연호가 개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환단고기를 만들 때 참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환단고기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한 듯합니다.
** 연수영 소설을 쓰신 황원갑 작가님의 블로그입니다. 연수영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어서 링크합니다. 제가 생략한 부분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hwang450915&folder=13&list_id=11302787
첫댓글 전쟁양상은 정사와 아귀가 맞는군요. 을상은 물론 군주도 많지 않으나 고구려 관직으로 확인되는 것이고...매괴왕은 처음보는 표현이네요. . 새로이 등장하는 인명도 여럿 보이고...한편 개화에 대한 판단은 적당해 보이네요. 비문이 신뢰도가 높다면 내용상 쓰임새가 크겠습니다. 전문을 볼 수 없는게 아쉽군요.
唐奴라는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비문이 실존한다면 발해 황후 두 명과 더불어서 중공에서 공개 좀 했음 좋겠습니다. 뭐가 그리도 캥기는지...;; 당장 비문의 일부 내용만 봐도 캥길만 하긴 합니다만...^^:;
호오....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스크랩 해 가야겠군요. //
그런데 근거자료의 출처가 좀 더 자세했으면 좋겠는데... 아쉽군요. 저 비석들이 어느 시대의 유물이고, 비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등등... '카더라' 통신 이야기에 또 낚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원 글을 보다 보니 '연수영이라는 존재를 주목한 게 '2003년 중국이 유네스코에 청석관 유적지를 등록한 것이 계기' 라고 되어 있군요. 그리고 중앙일보 블로그에 연재된 거의 같은 내용의 글에서는 중국 측의 관보와 유네스코에 영문으로 기재된 등재자료의 내용이라면서 꽤 상세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hwang450915&folder=13&list_id=11302787)
그런데 해당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록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군요. 유네스코에 등록했다는 건 아마 '세계유산'(world heritage) 으로 등록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중국의 세계유산 리스트를 확인해도 청석관이나 개주 쪽 유적은 나타나
지 않습니다.
http://whc.unesco.org/en/list/439/multiple=1&unique_number=510
(참고로 지도상에서 압록강 중류 정도에 찍혀 있는 점은 집안-환인 일대의 고구려 유적입니다)
위 링크가 아마 청석관에서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위치인 듯한데, 이건 심양의 유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동아시아에서 세계유산의 위치가 점으로 다 표시되어 있는데 2003년에 등재되었다는 청석관 유적은 찾질 못하겠군요. 유네스코에 영문으로 기재된 등재자료가 어디 있는지 혹 보신 분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발해 황후 묘지석 두 개와 더불어서 중공 쪽에 미공개 자료들이 더 있을 듯 합니다. 공개하지 않는 이상 비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그나마 알려진 비문의 일부 내용들이 어떤 경로로 공개가 되었는지가 궁금하긴 합니다. 황작가님에게 자료를 제공했다는 전영미, 전기복 남매 학자가 관건일 듯 싶은데...;;
그럼 이환경 작가는 선견지명? 근데 그 전에 대본이나 잘 썼으면....
딱히 선견지명도 아닙니다. 이미 드라마 방영 전부터 연개소문 여동생의 활약이 담긴 전설들은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았으니까요.ㅋㅋ 연수정이 설인귀에게 죽는다는 설정만 봐도 전설을 참고한 흔적이 역력합니다.ㅋ
흠. 저는 나중에 보충 수정하면 스크랩하겠습니다. ^^
오타 수정하고 환단고기 면에서 살짝 보충했습니다. 보다 상세한 자료는 위의 링크한 곳에서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