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도 아니고 20대가 60대 마음을 알아요?”
김목경은 KBS <콘서트 7080>에서 담담하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불렀다. 공개홀 방청객들은 휴대폰 불빛으로 호응했고 일부 관객은 눈물을 훔쳤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김광석의 노래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1990년에 발표된 김목경의 첫 앨범 <Old fasioned man>에 수록된 노래다. 1990년 김목경이 20대에 만든 노래인 것을 아는 진행자 배철수는 김목경에게 물었다. “60대도 아니고 20대가 60대 마음을 알아요?”
“잘 모르죠. 제가 20대를 영국에서 긴 시간 보냈어요. 혼자서요. 5년 차 정도 되었을 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고 보고 싶었어요. 향수병에 걸려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던 집 건너편 집에 영국인 노부부 두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와요. 저녁을 먹고 10시 정도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두 노인 부부가 정원을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서양 사람 하고 한국 사람 하고 같은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렇게 적어 봤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이에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거든요.”
조금 길지만 김목경의 대답을 모두 살펴본 것은 시사점을 나누고 싶어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노부부의 이야기를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했나 싶다.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 노래를 20대 젊은이가 만들었다니 참 의외다. 하지만 김목경만 그런 게 아니다. 보통 신입 사회복지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많다.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가 60대 이상 어르신을 돕는 구조다. 배철수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60대도 아니고 20대가 60대 마음을 알아요?” 20대가 60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중간관리자인 30~40대는 80대 어르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나아가 세대뿐 아니라 환경, 경험, 어려움도 전혀 다른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모르니까 배운다
20대에 60대 입장의 노래를 만든 김목경의 대답에 몇 가지 힌트가 있다. 그의 첫마디는 “잘 모르죠”다.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삶의 결을 쉽게 안다고 할 수 없다. 모른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모르니까 더 집중하고 모르니까 더 경청하고 모르니까 더 살펴야 한다.
모른다는 전제 후 김목경은 말한다. 영국 생활 중 향수병이 왔고 그 상황에서 옆집 영국인 노부부의 뒷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다. 그 장면에서 김목경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런데 영국인 가족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녀는 매정하게 하룻밤 자지도 않고 반나절을 보낸 후 돌아간다. 그것도 노부부가 그렇게 좋아할 손주를 데리고 그냥 가버린다. 이 부분에서 김목경은 서양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서 김목경은 집중력을 발휘한다. 60대 노부부들의 특징이 잘 담긴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린다. 김목경이 이야기한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새던 밤들’뿐 아니라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 역시 오롯이 한 줄로 어르신의 상황과 정서를 잘 드러내는 가사다. 이유는 김목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 노부부와 대비하여 한국 노부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한국에서 알고 지낸 어르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혹은 부모님, 조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특징이나 장면들을 노트 가득 적었을 것이다. 그것들 중에 가장 적합한 내용만을 골라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20대 김목경이 쓴 이야기는 다른 어떤 노래보다 60대 정서를 잘 담을 수 있었다. 보편 정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20대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삶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모르니까 배운다는 자세가 먼저다. 여쭙고 배우며 어르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후 어르신과 함께 무엇을 할지 뜻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이 역시 어르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어르신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어르신과 함께 세운 뜻에 적합한 지를 따져 본격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 다음도 역시 모른다는 자세다. 그 일이 잘 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묻고 의논해야한다. 20대 김목경이 되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를 새롭게 채워간다는 마음으로 어르신 사업을 해보자.
첫댓글 20대가 60대에 대해 온전히 알아야'만' 한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글 제목과 선생님께서 따온 구절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김목경의 대답 중 "잘 모르죠."가 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모르니 알아야지. 알려면 여쭈어야지. 여기서 '알려면'이 60대 일반의 정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내가 만나는 '그 60대 어르신'을 말하는 거였어요. 다만 이렇게 되면 김목경의 노래가 (60대의) 보편 정서를 담았다는 말과 호응이 되지 않지요. 논리적 모순이 생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글을 썼을까? 역시 "잘 몰라요." 때문입니다. 모르니 여쭈어보자로 연결하려고 했어요.
사실 댓글 쓰기가 망설여졌던 것은 '알기 위해 물어야 한다'입니다. '묻다'는 '당사자의 의중, 의도, 결정'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요? 하나 더한다면 때때로 그 분의 삶을 알기 위해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럼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하여 현재 그분의 의중만 살피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그동안 글을 쓰면서 적당히 뜻만 통하게 넘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온전히 다듬지는 못하더라도 정교하게 다듬어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