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하나 포크레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음산 들녘을 마구 할퀴고 있는 모습을 허허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이종찬
지난 1970년대 공단이 들어서면서 기름진 논밭와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이 사라져버린 경남 창원. 그나마 옛 창원의 흔적을 고스란이 살펴볼 수 있는 비음산(510m)과 대암산(667m)이 지난 3월 초부터 포크레인의 삽날 아래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한국 축구발전의 전진기지'라는 이름 아래 창원시가 1000억원이란 어마어마한 사업비를 들여 비음산과 대암산 산자락 아래 '창원 영남권축구센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옛 창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무너지고 있다
창원시 사파동 305번지 일대 비음산과 대암산 산자락 약 22만㎡(66000평)의 부지. 이 곳은 도심에서 아주 가까워 수많은 시민들이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들 수 있는 훌륭한 휴식공간이자 비음산과 대암산으로 등산을 가는 지름길이다. 더불어 이곳은 매실·감·대추 등 과수원을 꾸리고 있는 옛 창원 주민들의 삶의 터이자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음산 들녘은 봄이면 매화와 벚꽃, 찔레꽃을 비롯한 여러 희귀한 들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 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와 모가 시퍼렇게 자라는 들녘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에는 발갛게 익어가는 감과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가 있고, 땡겨울에도 쑥이나 냉이 등 파아란 봄나물을 캘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오후 4시, 여러 가지 들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 곳에 섰을 때 들꽃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서있던 감나무와 매화나무, 대추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쑥과 냉이, 달래가 지천으로 자라던 논두렁과 봄동, 시금치, 마늘 등이 자라던 다랑이밭에는 시커먼 흙들만 이러저리 파헤쳐져 있다.
▲ 논밭을 마구 파헤쳐 반듯하게 고르고 있는 포크레인의 삽날만이 요란스럽게 웅웅거리고 있다
ⓒ 이종찬
▲ 축구센터를 짓는다는 이름 아래 이라저리 파헤쳐진 비음산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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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세상살이에 지친 나그네의 고달픈 마음을 포옥 안아주던 대자연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논밭을 반듯하게 고르고 있는 포크레인의 삽날만 요란스럽게 웅웅거리고 있다. 그 곁에 반쯤 잘린 미나리꽝에서는 아낙네 서너명이 낫을 들고 서둘러 미나리를 벤다.
"아직 미나리 벨 때가 멀었는데 우짜것노, 지금 베지 않으모 그나마 이것마저도 건지지 못할 낀데, 내가 키운 자연산 미나리 먹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중얼거리며 키작은 미나리를 베고 있는 아낙네의 손길이 바르르 떨린다.
쬐끔 남은 미나리꽝과 과수원 곳곳에 펄럭이고 있는 노오란 깃발과 붉은 깃발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저만치 70대 끝자락으로 보이는 노인 하나 포크레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음산 들녘을 마구 할퀴고 있는 모습을 허허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저 노인은 마지막 남은 옛 창원의 모습이 포크레인 삽날 아래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창원의 옛 풍경을 고스란이 담고 있었던 지난 해 가을의 비음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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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과 냉이, 달래가 지천으로 자라던 논두렁과 봄동, 시금치, 마늘 등이 자라던 다랑이밭에는 시커먼 흙들만 이러저리 파헤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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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이는 축구센터, 자칫하면 애물단지로
총 사업비 975억원을 들여 2009년 6월에 완공된다는 창원 영남권축구센터는 처음 창원시가 300억원 지원을 요청했던 경남도의 지원이 늦어져 공사가 1·2차로 나누어질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경남도가 늦어도 올 9월까지 추경 확보를 약속, 올 3월부터 축구센터 터닦이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창원시에 따르면 이 센터에는 천연잔디구장 2개(주경기장· 보조구장)와 인조잔디구장 3개(1·2·3연습장), 하프돔구장 1개, 푸살구장(일명 '벽치기 연습구장') 1개, 교육훈련시설 1동, 숙박시설 1동 등 축구에 따른 갖가지 시설을 갖춘다.
창원시는 지난달 20일 "축구협회·국민체육진흥공단·경남도 등과 협의를 거쳐 오는 3월 말 창원 영남권축구센터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실시설계 최종보고회에서 "사파정동 305번지 일원 6만5000평에 8개면으로 조성할 계획이던 영남권 축구센터가 3개면이 줄어든 5개면으로 축소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창원시의 축구센터 건설 규모가 처음 내세웠던 8개면에서 5개면으로 줄어들자 곳곳에서 우려섞인 목소리도 드세다. 시가 처음 계획했던 국내외 훈련팀을 유치할 수 없게 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엄청난 사업비를 들인 시설이 애물단지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는 1만5000석 규모의 주경기장과 최소 8개면에 천연 잔디구장 5개면 등을 만들어 한 해 30만명 이상의 국내외 훈련팀을 모아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누리려 했다.
하지만 계획이 5개면으로 줄어들자 시민들과 축구계 전문인까지 나서 "규모가 축소된 축구센터는 기존 운동장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ㆍ내외 전지 훈련팀을 불러올 수도 없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기왕 엄청난 예산을 들여 축구센터를 지으려면 애초 약속대로 천연 잔디구장 5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창원시가 '한국 축구발전의 전진기지'라는 이름 아래 1000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사업비를 들여 창원시 사파동 305번지 일대 비음산과 대암산 산자락 아래 '창원 영남권축구센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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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센터 공사 때문에 맑은 물이 흐르던 사파천에는 흙탕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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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대자연을 허물고 짓는 거 제대로 지어야
창원 영남권 축구센터는 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어난 까닭에 중앙 투자·융자심사에서 '사업비 과다'로 재검토 결정이 내려져 난항을 겪었다. 도비 지원에도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이 곳에서 과수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땅주인들이 그린벨트 선 해제, 공원지역 확대 지정 취소, 보상가 현실화 등을 내세우며 보상비 수령까지도 거부했다.
땅주인들은 지난 2005년부터 축구센터토지수용대책위까지 만들어 "형질변경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토지소유자들의 권익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기존 1만4천 평에 이르는 공원을 16만 평으로 확대지정할 경우 체육시설 외에는 토지이용이 불가능하므로 '생업을 포기한 투쟁'으로 맞서겠다"는 날을 세우기도 했다.
도비 지원이 문제가 된 것도 창원시가 천연, 인조잔디구장 등을 먼저 만들고 주경기장은 마지막에 세우기로 했기 때문. 이는 지난해 창단한 경남FC가 축구센터 주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키로 하면서 관람석이 5000석에서 1만5000석으로 늘어나 창원시의 전체 사업비가 800억원에서 975억원으로 늘어난 데서 비롯되었다.
창원시는 경남도에 늘어난 예산에 따른 300억원 지원을 요청했지만 경남도는 체육진흥공단 지원액인 125억원 이상은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창원시가 처음 창원 영남권축구센터를 유치하면서 체육진흥공단 지원액을 뺀 나머지 금액은 모두 시비(市費)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 주민들과 학생들 대부분은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 축구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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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주인들이 "그린벨트 선 해제, 공원지역 확대 지정 취소, 보상가 현실화" 등을 내세우며 보상비 수령까지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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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관계자는 "본래 8개면에서 예산 확보가 어려워 5개면으로 줄였지만 호남ㆍ중부권 축구센터인 목포와 천안의 시설보다는 양호하다"며, "이번에 축소 조정된 천연잔디 3개면도 부지가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약속된 경남도 예산 300억원만 내려오면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는 또 "지난 2006년 행정자치부의 하반기 중앙 투자·융자심의에서 '교통영향평가후 사업시행'이라는 조건부를 단 채 창원 영남권축구센터의 건립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토지 보상을 거부하는 땅주인들에 대해서도 "축구센터 건립부지에 따른 보상은 지난 해 말 80% 끝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축구센터보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
창원 도심에 마지막 남은 옛 창원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짓밟고 들어서는 창원 영남권축구센터. 이 곳 주변에는 건설회사에서 신선한 비음산의 자연환경을 내세우며 지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이층 양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더불어 토월고등학교와 사파고등학교가 코 앞에 있다.
그래서일까. 이 주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학생들 대부분은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 축구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이곳에 축구센터가 들어서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주거환경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아이들 공부에도 큰 지장을 주게 된다는 까닭에서다.
축구센터 곁 동성아파트에 살고 있는 박아무개씨(45)는 "그렇찮아도 세계 곳곳에서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 때, 하필이면 옛 창원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숨쉬는 이 곳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구센터를 꼭 지어야 하는가"라며,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마악 토월고등학교에 입학한 나그네의 큰딸 푸름(16)이는 "하필이면 왜 우리 학교 옆에 축구센터를 짓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우리 학교와 사파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은 공부를 제대로 하기는 글렀다,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시끄럽기도 하겠지만 유명 선수들 경기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공부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덧붙혔다.
과연 이 축구센터가 창원 도심에 허파처럼 남아있는 비음산 들녘을 허물고 들어설 만한 경제적 가치는 있는가. 이 센터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약속한 도비는 정확히 지원받을 수 있을까. 아직 보상을 받지 않은 땅주인들과의 마찰은 없을까. 센터 곁에 있는 토월고와 사파고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은 없을까. 아직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첫댓글 환경단체들이 딴지거는거밖에 안보입니다.. 제눈에는.. 이런거보다 식목일날 나무심고 관리나 했으면... 그냥 심으면 끝인줄 알어..
창원이 드디어 삽푸네요..
아마도 여긴 축구팬들뿐이라.. 축구관련해선 이런거에 문제제기 하는사람은 없을듯.. 다른 스포츠종목이라면 그런사람이 분명 나오겠지만..ㅋㅋ
요샌 지자체들이 다 축구 어쩌구 해보겠다고 난리네... 축구팬이지만 축구센터 같은게 더더더 친환경적일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축구보다 소중한 것은 깨끗한 환경..
이런거 말고 산 깎아서 쓸데없이 공장이나 대학교 만드는거에 반대해라...아니면 산깎고 암것도 안만드는 황당한 일에 반대하던가...
창원 전용구장 이왕 지을거 카타르 알샤드 경기장(블랙 화이트)처럼 심플아담하게~
환경이 더 큰 국가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