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긴 이사 일정에 떠밀려 한달여간 그동안 쌓였던 짐정리에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왜 이렇게 짐이 많은지 생각해 보니 4년 전 이사를 하며 버리지 못했던 짐이 그대로 다시 쌓인 결과였다. 이사 오자마자 한 리어카 분야의 책을 버렸고 근래 책을 잘 구입하지 않았던 사정을 감안해도 이번에 다시 상당한 양의 책을 버리게 되었다.
30평 살림살이에서 10평 가까운 짐을 덜어내려니 수고가 만만치 않았다. 30년 이상 사용하던 장롱도 이번에 처분했다. 이 장롱을 나눠줄 때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근 마켓 무료나눔에 사진 몇 장을 올렸더니 누군가 "내가 그 장롱 주인이요"하면서 찜하더니 그날 저녁 외국인 4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니, 장롱 하나 가져 가는데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왔느냐"고 했지만 그들은 그냥 웃기만 했다. "포터를 가져왔냐"고 물어보고 아래층 주차장에 내려 가보니 작은 1톤 라보가 한 대 주차돼 있었다. 라보는 꽃배달에 사용되는지 천막에 씌여 있었다. 그런 이동 수단으로 이 큰 장롱을 운반하려면 최소한 3번을 날라야 할 처지였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물러났다. 마음은 앞서지만 장비가 따라 주지 못했다.
결국 이 장롱은 외국인 신혼부부의 손에 들어갔다. 여성분은 중국인이었고, 생기발랄 활발한 성격이었다. 처음에 온다 못 온다 하길해 못가져갈 줄 알았는데 내용인 즉 용달차 사장님이 약속을 파기해 못왔다고 했다. 결국 가져갔는데 덩치가 산 만한 캄보디아 남편이 무사히 장롱을 차에 싣고 갔다. 한국인 용달차 사장님은 장롱의 무게와 크기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신랑의 덩치에 기대어 운반해 갔다.
그보다 작은 장롱은 베트남 신혼부부가 가져갔다. 약속 시간보다 미리 나타나는 바람에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차가 없다고 했다. "차 없이 어찌 장롱을 가져가냐"고 했더니 "다 수가 있다"고 했다. 잠시 기다렸더니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다. 작은 장롱인데도 문을 분해해서 가져가야 한다길래 도와주면서 힘들게 차에 실었는데 두 친구 모두 체격이 작아서 "필리핀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베트남"이라고 했다. 신혼부부라길래 겨울왕국 엘사의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컵과 깨끗한 그릇 십여 점에 2인용 전기밥솥을 챙겨줬더니 아주 좋아했다.
400만원 넘게 주고 산 에어컨은 들고 갈 수 없어서 팔려고 하니 18년 세월에 고장 한번 없었던 에어컨을 결국 철거업체가 분해해 갔다. 언제 얻어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은 타일 한 박스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 사람은 "시간이 없다. 남편은 술을 드셔서 운전을 못한다"고 했다. 할수 없이 직접 싣고 가 아파트 경비실 앞에 두고 왔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이사를 했는데 마침 어린 시절 등하교하던 길을 지나게 됐다. 굵고 무성해진 가로수와 그 잎새가 가을에 물들어 장관을 이루며 환영하는 수많은 인파의 깃발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기도 하고 오늘 초라한 내 모습에 안타까이 속으로 눈물도 한점 흘렸다. 하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가을에 먹고살기 바빠 단풍 구경 갈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무심해 울산 시내 곳곳의 가로수들이 멋지게 물들며 만추가경의 정취를 전하고 있다.
인생에도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다면 봄에 20대를 지나, 여름에 40대를 거치고 가을에 중장년기를 맞는다. 그리고 모든것이 메말라 버리는 노년기에 접어든다. 뒤돌아보면 인생이 그리 무한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내 것을 챙기기 위해 바둥댄다. 후진 인생이다. 최소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보통 인생이다. 타인에 대한 깊은 헌신이 따른다면 황금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