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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신뢰의 공화국’을 위하여 | ||||||||||||
MB정부 들어 ‘소통(疏通)’이 핵심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소통담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대한민국은 불통 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돈다. 각계각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만의 화두도 소통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 정국 이후 소통부재, 불통현상이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속도조절론’이 나오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며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들이 남한강의 이포보 상판과 낙동강의 함안보 크레인에 올라가서 목숨을 건 농성과 소통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주를 향해 가고 있다. 환경단체의 점거농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은 분명하다. 환경을 파괴하고 홍수예방에 도움이 안 되는 ‘4대강 사업을 지금 방식대로 계속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은 환경문제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재원배분의 문제, 일자리 창출의 문제, 미래성장동력 인프라 구축 문제 등이 얽혀 있어 훨씬 민감한 민생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민심을 업고 당선된 김두관·안희정 지사가 4대강 사업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16개 시 · 도지사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은 정치가 아닌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다른 지역의 강 문제까지 단체로 나서선 안 된다고 일방적으로 못을 박았다. 청와대에선 “4대강은 대통령의 ‘역린’이다. 4대강 사업 중지만 빼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 없냐?”라고 반문한다고 한다. 국민의 70~80%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재검토 하지 않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스런 소신 때문임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한편, 경남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위원장 공영윤)는 지난 27일 집행부인 경상남도에서 제출한 ‘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 및 도민 피해 정밀조사’ 관련 예산(3억5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뿐만아니라 마치 중앙의 지시에 의해 관제대모라도 하듯 경남도내 13개 시.군 단체장들을 동원 낙동강사업의 중단 없는 추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말 부산ㆍ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명의로 경남도와 충남도에 공문을 보내 이달 6일까지 4대강 사업을 계속할지, 대행사업권을 반납할지 공식적으로 답변하라고 최후통첩 하듯 통지를 했다. 7·28 재보궐선거로 얻은 유리한 여론지형을 과신하고 이를 활용해,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환경·시민사회단체를 상대로 ‘불통 의지’를 분명히 하고 4대강 사업의 속도를 더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행태에 대해서 경남도의 김두관 지사와 충남의 안희정 지사가 “우리는 속도전 안한다. 6일까지 답변할 수 없다.” “참 무례하다.”며 반발하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김지사는 고정주영 회장이 큰 규모의 사업기획이 있을 경우 “네 돈이면 그렇게 쓰겠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원래 4대강 예산이 10조였는데 6개월 만에 20조로 늘어났다”는 말을 하며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도민을 섬기고 나라를 아끼는 애국심,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통찰력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정책역량,” “다른 부서는 물론, 정책기획단계부터 도의회, 시민단체, 전문가, 시민사회와 소통하면 훨씬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으로 공무원들의 소통능력 배양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런 김지사의 사려 깊은 통 큰 행보에 든든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끼는 국민들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소통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이다. 소통은 어떤 결론이나 진실, 진리를 찾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통이라는 참여와 합의 과정을 거친 결론은 힘을 지닐 수 있다. 국가 권력의 최고지도자라면 소통을 위해 더 노력하고 성찰해야 한다. 소통이 민주사회의 전제조건이라는 평범한 사실에 주목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관리하는 민주적인 시스템을 회복해야 한다. 소통은 적대적 공존이 아니라 ‘건설적 긴장관계’이다. 소통이 지향하는 목표는 가능한 한 다수의 사회구성원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고, 강요된 합의가 아니라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허무한 정치적 수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일자리, 교육, 문화, 복지, 주거, 의료, 등의 생활상의 과제들을 조금씩이라도 개선하고 만족 수준을 높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소통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절차적 장치의 공정성 문제나 소통의 조건도 검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소통의 실천적 이념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소통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고, 갈등, 반대,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다수의 의사에 접근해가는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정한 배분이 필요한 것이며, 그런 것들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따라서 ‘소통 가능한 신뢰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미래 권력의 핵심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의 리더로서 인정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재능, 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선한 기운’ 바로 소통력(疏通力)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편안하고 따뜻하며 진지하게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소통력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부터 진정한 리더로 인정하게끔 만들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공감과 감동의 잔잔한 힘이다. 좋은 사회는 이러한 소통의 합리성이 두루 적용되는 사회이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 원리에 입각한 제도이고 이것을 공식적으로 매개하는 것이 선거, 정당, 의회 등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6.2지방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받아들여 더 늦기 전에 대화에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가 사업을 직접 강행하고, 점거농성을 강제해산한다고 해서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이 잠재워질 것도 아니다. 그럴수록 더욱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뿐이다. 소통, 화해, 협력, 포용, 덕치가 아닌 강압과 배제, 권위주의로 가는 것은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다. 4대강사업은 ‘역린’이라기보다는 조기에 보수의 시대를 마감하는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도 점차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다음 대선은 ‘4대강 대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권 내에서나 시민단체 원로들이 속도조절이라는 명분을 줄 때, ‘출구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소통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를 바란다. 향후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에게 타 정파 및 일반 국민과의 ‘소통능력’이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소통을 위해 보수진영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진보 진영은 이념과잉을 버려야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양쪽 모두 자기반성적 성찰적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실현가능한 정책적 역량을 길러 나갈 때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통찰, 합리적이고 정확한 분석과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승자독식주의, 강력한 중앙집중주의, 과도한 명분주의, 처절한 밥그릇 싸움, 압축적 고도성장에 따른 빨리빨리 문화, 서열주의, 극단적 이념의 사유화, 각개약진의 삶의 패턴, 등이 지적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정치의 알파와 오메가는 지대추구(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국가부문의 자원과 영향력에 접근해서 수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줄서기, 줄세우기’라는 말이 있다. 승자독식주의나 과도한 명분주의보다는 지대추구와 맞물린 전사회영역의 정치화, 정략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보수주의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진보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을 뿐이다. 오른쪽으로 심하게 구부러진 막대기와 같은 불균형한 상태이다. 따라서 양쪽이 대등한 지위에 있는 것처럼 상정하고 소통부재에 대해 같은 무게의 책임을 묻는다면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다. 소통은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생각을 교환하며, 양보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력관계, 사회적 균형, 자원의 공정한 배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이 바로 소통문제가 안고 있는 당파성, 복잡성, 민감성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지도자의 문법을 창출해내야 한다. 국민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그들로부터 존경을 누리는 덕 있는 정치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단순히 성장률과 국민소득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소통과 신뢰의 문화 속에서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고 사회통합력을 높여나갈 때 지속가능한 품격 있는 민주공화국이 펼쳐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