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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소설 총평
얼마전부터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한국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다.
시대의 흐름일 뿐이지, 그것을 위기라고 해서
다시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독자들에게 동정표를 얻기 위한 말도 아니고...
글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문학의 영역도 좀 넓혀갔으면 한다.
이 책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국소설에서는 생소한 영역에 도전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르를 인터넷이나 언론에서는 철학 판타지 소설 또는 지식소설이라 한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지만, 그 속에 온갖 철학 사상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에 이 책은 <소피의 세계>와 견주기도 한다.
나도 <소피의 세계>를 읽긴 했는데,
그책은 소설의 형식을 띠긴 했지만 내용면에 있어
최소한 나에게는 무척 어려웠던 책이었다.(언제가는 다시 도전할 책이다.)
하지만,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철학 사상이 비교적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고,
<소피의 세계>보다 그 비중이 낮아 부담감도 적었다.
그리고 또 이 책은 판타지적이 요소때문에 <해리포터>시리즈와 견주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한참 전에 <TV 책을 말하다>에서 소개되어 알게된 책이다.
나는 이제서야 읽었고,
한국소설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지은이들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김용규, 김성규라고 하는 형제인데,
그들은 모두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리고 김용규는 철학에 관련된 많은 교양서적을 쓰신 분으로 유명하다.
전문 소설작가가 아니라서 소설의 재미적인 측면을 우려했지만,
구성력도 탄탄하고, 스토리라인도 괜찮았다 싶었다.
그리고 지식욕구에 충족시켜줄 만한 많은 상식들이 등장하여
이 또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적으려고 하는데,
어려운 철학이론과 환타지 소설 특유의 낯선 용어들과 이야기 흐름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혹, 내가 적은 이 글을 보고, 이 책에 관심을 거두는 이가 없길 바란다.
나의 독서일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시간절약해서 쓰기 때문이다.
나는 쓰기보다 읽기에 치중하는 사람이니까...
1. 알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알도이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알도가 어렸을 때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세계적인 바이오닉 공학박사로 인도에서 일하기 때문에
알도는 독일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학자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다방면에 걸쳐 책을 많이 읽은 알도였기에
15살의 어린 나이지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방학때마다 아버지의 회사가 있는 인도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이 소설도 그가 인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도의 아버지 김재일 박사는 인도 아우랑가바드에 있는
마이클론 바이오닉스 라는 회사에 일하고 있었다.
알도가 도착했을 때 급한 일이 생겨 아버지는 뭄바이에 가 있어서
공항에는 아버지의 동료 알브레즈 박사가 마중나왔다.
김재일 박사팀이 만든 레온과 레나라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었는데,
레온은 연구용으로 쓰이고 있고,
레나는 인간의 두뇌에 가장 근접하게 만든 인공지능 로봇으로,
알도에게 보여주기 위해 알도의 머무르고 있는 방에 있었다.
레나는 흉상부만 있고, 귀와 눈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판단하는 그런 인공지능로봇이다.
물론 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도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가까운 미래로써,
이 로봇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었다.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기 위해
등장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알도가 아버지가 없는 며칠 동안 인도 유적지를 살펴보기로 했는데,
그중 아잔타 석굴에 갔다가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보고 뒤쫓아갔다.
그 사람이 아버지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알도는 실수로 그들을 몰래 보고 있던 것에도 도망나왔다.
2. 인식론과 사회진화론의 오류
소설의 중간중간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한 것만 적어본다.
중세를 넘어선 유럽은 그동안 신이 중심이 된 세계가 변하고 있었다.
개미에 비유되는 경험론과 거미에 비유되는 합리론은 모두 모순을 가지고 있었었데,
그래서 나온 사조가 꿀벌에 비유되는 인식론이다.
그리고 인식론의 핵심은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세상은 신에 의한 세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식론에 뿌리를 둔 계몽주의 사상이 유럽에 퍼지면서
세상은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들을 갖게 되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는 부작용도 야기시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인 자연환경파괴라고 한다.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주변 환경도 인간을 위해서면 파괴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가 오늘날 이렇게 편한 세상을 만들어놓았을지 모르지만,
지구의 환경, 나아가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그런 인간중심주의는 19세기 사회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더욱 왜곡되어갔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은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하버트 스펜서 등이 주장한 것인데,
사회도 자연처럼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그로 인해, 자연의 법칙인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원칙이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진보를 진화와 동일하게 보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진보라고 하는 것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저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원칙만이 존재하였다.
이것은 개인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를 불러일으켰다.
계몽주의사상의 자유, 박애, 평등 중에 자유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19세기는 자유방임주의가 번성하고,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강한 나라가 약한나라를 침입하는 제국주의가 번성햇던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 자신들은 약국을 침입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치 않고,
그저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고 합리화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쁜 무리들이 이런 사회진화론을 내세워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음모를 합리화하였다.
3. 나칼의 서
탈란 교수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 <나칼의 서>의 비밀을 추적하는 고고학자였다.
<나칼의 서>는 태양의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태양의 사원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것이다.
그가 그렇게 평생 <나칼의 서>를 찾은 이유는
그 <나칼의 서>에 영생의 비밀이 적혀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문 연구가 아닌 영생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에
평생을 바친 것이다.
태양의 사원은 야요디아라고 부르는 제8구에 위치하고 있다.
탈란은 몇년전 학회에서 만난 김재일이 데리고 온 아들로 보고,
그가 '태양의 사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탈란은 몸에 신인 내리게 하는 강신술이라는 능력이 있어서
알도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
4. 음모
알도는 아버지로부터 며칠째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는 와중에
새로 사귄 인도인 친구 고오빈다로부터 아버지의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나칼의 서가 있는 태양의 사원과 동일한 이름의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이 카스트 제도를 더 굳건히 하려고 하고 있고,
이를 김재일 박사가 소속되어 있는 연구소에서 돕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도는 아버지가 그럴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도와 고오빈다는 연구소 파티에 참석했다가
더 뜻밖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그 파티에는 태양의 사원 교주 산자이도 참석했는데,
그 산자이란 사람은 카스트 제도를 성스런 제도로 생각하고,
새로운 연구소 소장 로스키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음모에 동참할 수 없다고 하여
알도의 아버지는 위기에 빠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도는 며칠전 아잔타 석굴에서 본 사람이 아버지라 확신하고,
고오빈다와 함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잔타 석굴로 향한다.
알도와 고오빈다는 아잔타에 갔다가 우연히 나탈의 서에 적혀 있는 주문을 외우자,
비밀의 문이 열리고,
그들을 뒤쫓아온 탈란 교수의 계략으로
알도와 고오빈다는 이상한 통로로 빨려들어가 정신을 잃게 된다.
정신을 차린 알도와 고오빈다.
그들은 온 곳은 다름아닌 야요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연꽃의 정령을 만나게 되었다는데,
그로부터 태양의 사원과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야오다이는 타락한 영혼들이 잡혀 오는 곳이고,
그곳을 점령한 자는 나긴스라는 마녀인데,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어둠과 악의 성이었다.
그 성안에 태양의 사원이 있고, 나칼의 서도 그곳에 있고,
알도의 아버지도 그곳에 잡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꽃의 정령은 그들이 어둠과 악의 성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게 된다.
알도와 고오빈다는 중간에 레나를 만나게 되는데,
레나는 흉상만 있는 게 아니라 온몸을 모두 갖추고 나타났다.
알도는 이것또한 연꽃의 정령이 도와주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연꽃의 정령이 말해준대로 유니콘의 정령 아론을 만나고,
아론의 도움으로 어둠과 악의 성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칼라쿠타들을 처치하고
아버지가 갇혀 있다고 하는 유와 무의 방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아버지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뒤쫓아왔던 탈란 교수와 그의 조수가 도착했다.
이 모든 것이 탈란 교수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나칼의 서가 있는 곳까지 오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그들의 힘으로 올수 없었던 것이다.
탈란 교수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알도를 이용하여 거기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렇게 탈란 교수는 영생의 비밀이 담긴 <나칼의 서>를 손에 얻었지만,
마녀 나긴스가 도착하여 그들은 죽음과 함께 영생하게 되었다.
알도 일행도 나긴스에게 죽음을 당할 운명이었지만,
연꽃의 정령이 나타나서 나긴스를 설득하였다.
그로 인해 얻어낸 것은 알도 일행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
살려준다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긴스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알도와 고오빈다는 큰 빛을 보고 의식을 잃었는데,
알도와 고오빈다는 아잔타 석굴 안에서 자다가 관리인에 의해 깨어났다.
그들이 야요다이에서 보낸 3일의 시간은 하나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알도는 꿈을 꾼 것인가?
하지만, 고오빈다는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그것이 단지 꿈만은 아닐거라 확신했다.
5. 정체
연구소에서 알브레즈 박사도 이런저런 정황으로 사건의 전모를 하나씩 알게 되었다.
김재일 박사와 같이 연구하던 이카로스 프로젝트 연구는 바로,
카스트 제도를 고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연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먼저 알게 된 김재일 박사는 산자이에게 반항하여 그가 납치된 것이다.
이에 산자이는 모든 연구를 알브레즈에게 위임하려고 했지만,
알브레즈도 산자이의 음모를 알게 되어 거절했다.
이에 산자이는 알브레즈의 딸을 납치하여 위협했다.
알브레즈 박사는 칸트의 비판적 이성에 대해 생각을 하며 결심을 하게 된다.
칸트는 이성의 양면성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였다.
즉, 인류 역사는 이성은 진리를 찾는다는 미명 아래 너무 많은 오류를 범행했다는 것이다.
진리만 찾기 위해서 희생도 뒤따르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합리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합목적성이라고 한다.
이성이 진리를 찾는데 도구로 사용되는 도구성 이성이라는 것이다.
이런 칸트의 경고는 그 이후에도 무시되었고,
히틀러의 만행도 이성을 도구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 산자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알브레즈 박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산자이에 대항하기로 마음먹는다.
소설의 결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해피엔딩이다.
알도는 큰불이 난 마을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사람을 구함으로써,
마녀와 약속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행하게 되었고,
고오빈다, 레나, 알브레즈 박사의 도움으로
김재일 박사와 알브레즈 박사의 딸이 무사히 풀려나게 되었다.
물론 산자이의 음모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말이다.
6. 저자의 의도
저자가 이 책의 의도를 후기에 적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은 2001년에 처음 나왔고,
내가 읽은 것은 2006년 개간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후기에서 다음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은 전문인의 시대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전문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또한 되어야만 한다. 전문인이란 기술자,
과학자, 관리자, 경영자, 의사, 법률가, 디자이너 등과 같이
도구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의 힘은 실용성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인의 활동은 그 본성상 개인적이며
합목적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거시적 전망이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에 이들이 중심
이 되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바로 진정한 전문가의 자세를 경각해주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지식인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호하며 사회에
구현하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이다. 때문에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초개인적이고도 합리적이며 도덕적이고 또한
인간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에 의해서만 사회가 발전하며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단순한 전문인이 아니라
지식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식인의 자세이다
...
이 책을 덮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은
2005년 황우석 사건 취재를 책으로 엮은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하나요."란 책이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잘못된 전문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로 인해 황우석은 전문가이지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인류 보편적 가치를 잃은 전문가 때문에
우리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가?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전문가가 지식인 행세는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나는?
나는 영원한 아마추어요, 삼미슈퍼스타즈의 일원이다.
책제목 : 알도와 떠도는 사원
지은이 : 김용규, 김성규
펴낸곳 : 웅진 지식하우스
펴낸날 : 2006년 12월 28일 (개간본)
정가 : 13,000
독서기간: 2008.01.13 - 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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