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화창한 봄날 창덕궁과 후원에 꽃구경을 가기로 지난 주에 결정되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비바람에 추운 날씨로 따뜻하게 챙겨 입었지만 그래도 춥다.
식사를 마치고 정문인 돈화문 매표소 앞에 기다려 6명이 입장을 한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조선 태종 12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선조 40년(1607년)에 완공한 것으로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이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지만 창덕궁의 서남쪽 모서리에 있는데,
그 이유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
궁궐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었다.
인정전은 궁궐에서 으뜸되는 건물로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다.
내부에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고,
그 뒤로는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가 둘러쳐 있다.
어좌 위에는 보개라 하여 별도의 천장이 있고
천장 한가운데는 봉황을 조각하여 이곳이 임금의 공간임을 나타내고 있다.
인정전 마당에서 인정전으로 가는 길은 삼도로 가운데 높은 길은 임금이 지나고
양쪽의 낮은 길은 신하들이 지나가는 길이다.
마당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자연석으로 된 박석으로 깔려있고
삼도 옆으로는 정조가 세운 품계석이 두 줄로 세워져 있어 문신과 무신을 구분하며,
이 곳이 위계와 권위를 상징하는 엄숙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선정전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
인정전과 같이 의식을 위한 공간을 '정전'이라 하고, 선정전처럼 일상 업무를 위한 공간을 편전이라 하였다.
희정당은 선정전과 더불어 임금의 집무 공간이었다.
희정당은 선정전보다 편안한 업무 공간으로,
선정전은 건물의 최고 위계를 나타내는 '전'(殿)인데,
희정당은 그 다음 위계인 '당'(堂)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조전은 왕비의 생활 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었다.
대조전은 왕실의 대통을 이을 왕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좋은 날을 골라 임금과 왕비가 동침하는 장소였다.
흥복헌은 조선시대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며 순종황제께서 운명하신 곳이기도 하다.
흥복헌에서의 마지막 어전회의는 순종황제에게 데라우치와 이완용, 윤덕영, 윤택영형제 등
친일 세력이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 넘기는 서약에 합의를 종용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회의였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일을 즐겨한다는 뜻이며
궁궐 건물과 다르게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일반 사대부의 집처럼 지었다.
1926년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마지막 황태자(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도 이곳에서 살다가 1989년에 죽었다.
이 정자는 낙선재 후원에 있는 상량정이다.
낙선재 관람을 마치고 후원 입장시간까지 한시간반 동안
휴게실인 빈청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4시에 입장하여 약 한시간반 동안 후원 관람이 이어진다.
비원이라고 불리는 후원에 대한 얘기는
2015년 9월 15일 산행기(433번)를 참조 바란다.
동궐도는 조선후기 순조 연간에 도화서 화원들이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궁궐 그림이다
모두 16폭으로 1폭은 상하 6면으로 접혀져 있으며 첩자로 꾸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