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기 오지혁입니다. 트래킹 소감입니다.
총평을 먼저 하자면, 자연의 힘과 갖고 있던 것에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산행이었다. 인도 다녀 온 순서로 타임라인을 적용해보자면, 뉴델리에선 위생의 소중함을, 라다크에선 산소의 소중함을, 판공초에선 도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트래킹에선 내가 살아 온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나는 원래 한번도 체력전으로 뒤쳐진 적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1일차에도 내가 제일 잘 걷고 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고 행군에도 원래 자신감이 있어, 애들 몸상태랑 멘탈도 관리했다. 의무 담당이었던 내가 해야하는 일이자, 가장 연장자로서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일차에 패스에서 휴식시간이 길어지자 급격하게 체온이 뺐겼고, 코로나 독감보다 훨씬 심한 몸살기운이 밤에 찾아왔다. 그 다음날부터는 5300m가 고도계에 찍히는 순간 고산병이 찾아왔다. 숨 쉬는 방법 조차 까먹는 공포감이 들었다. 끝까지 올라가보려했으나 비가 오는 탓에, 가방도 넘겨주었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어 처음엔 일언지하 거절했으나, 어제 나처럼 애들이 몸살감기에 걸릴까봐 지체할 수 없다 판단하여 배낭을 동훈이에게 넘겼다. 정말 미안했고, 고마웠다. 중간에 뺏으려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내 성장을 방해하지 말아줄래” 였다. 역시 오타쿠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중략)
3일차까지 고산병으로 인해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5일차까지 몸상태가 괜찮았는데도 불구하고 패스 부근만 가면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숨이 가파졌다. 설상가상으로 판공초만한 물집이 양발에 잡혔다. 저녁에 신발이 젖어, 양말을 일반 양말로 갈아 신었는데 그게 화근이 된 것이었다. 4일차에 박지 도착까지 거의 1시간을 남겨두고 거의 기어서 갔다. 원래 물집 잘 잡히는 편이어서 물집엔 면역이 있는데 그날따라 쭉 모래 지형이었고 날씨도 유난히 더웠다. 항상 내가 뒤쳐지면 뒤에서 같이 가주는 모건이한테 고마웠다.
결국 나는 초모리리 트래킹 마지막 패스에 도착했다. 마지막 날엔 거의 나는 고산 마스터 수준이었다. 높고 긴 패스를 넘을 땐 다른 인원들도 고산병이 왔다. 그때 그래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패스와 저 멀리 보이는 초모리리 호수는 내가 본 광경 중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드라마틱보단 퓨어한 아름다움에 가까웠다. 일부로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사진으로 다시 보았을 때 ,그 감동이 사라질 꺼 같아 눈으로만 기억하기로 했다. 사실 벌써 기억이 안난다. 역시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
산행 중간에 한국가서 뭐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 뿐만아니라 모두가 먹고 싶었던 음식, 가자마자 할 일, 하반기 계획을 짜고 있었고 배낭이 갖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뉴델리에선 왜 내가 화를 내고 살았는지, 한국 그 편안한 환경에서 왜 그렇게 불만족 하고 살았는지, 이제까지 만났던 인연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산행이었다.
산행의 본질을 내가 깨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제대로 느낀건 하나다. 산행의 본질은 무언가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던 것들과 필요없는 것을 잘 구분하고, 내려놓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높게 오르기 위해선 가벼워야만 한다는걸 그때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필요한 것만 넣어 배낭에 담아야하고, 내 커리어에도 그렇게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단체로 가서 내가 버틸 수 있었는데 그 원인은 책임감이었다. 내가 막중한 임무를 맡은 건 아니지만 인원들을 데리고 가고, 처음 계획을 시작한건 나였기에 내가 나약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오가 있는데..^^ 여튼 책임감이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조금 변했는지는 마지막날 뉴델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와 모건이는 뉴델리 첫날에 거의 멘탈이 아스라진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뉴델리 여행에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도 오래가진 못한다. 단풍이 피기 시작하면 근처 뒷산에 또 올라가야겠다.
저희는 트래킹전에 인원들 고산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었습니다. 원래 트래킹이 끝나고 판공초 호수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고산적응을 바로 해보고, 캠핑도 한번 해볼겸 판공초에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다녀왔습니다. 산행이 아니라 올리지 말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그래도 낭만있는 추억인데 업로드 하기로 했습니다.
지프차를 원래 빌리려 했으나, 너무 비싸 오토바이를 빌려서 다녀왔습니다. 하루 렌트 비용은 대당 1만원이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자연산 마멋(?)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