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까지 끄적이는 작업을 끝내고 새벽 2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간밤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곤 설렘에 아침 일곱 시에 정확히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거실 베란다로 나가 보니 눈꽃이 피었는데, 아! 지난가을 시청에서 나무들을 가지치기 해 마치 털 깍은 강아지 같은 나무들이 서 있어 아쉬움을 삭여야 했다. 그럼에도 서운한 마음에 옷을 찾아 입고 강둑으로 나가...^^
엄마랑 내가 이곳에 분양받아 온 지도 어느덧 30년째다. 어린 나이에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전자제어 자동차 심화 과정을 공부하려고 수도권 대학에 가 있을 때였다. 1주일 내내 학교 기숙사에 처박혀 지내다가 주말에 한번 부모님이 있는 이곳에 내려와 엄니가 해 주는 밥도 먹고 일요일 저녁 기차를 타고 다시 올라가곤 했다. 그때 휴일에 내려와 단독세대-청약저축도 없이 3순위로 분양 신청을 한 뒤 1.2순위(900가구 가까이 됨)에 다 돌아간 뒤 남은 6가구 중에 억세게 운이 좋아 당첨됐다. 당시 추첨하는 날 나 대신 큰누나가 뺑뺑이를 돌렸다. 어느 날 기숙사로 전화가 와 받으니 큰누나였다. 3순위라 체념하고 있었는데, 당첨이 됐다고 하여 그때의 기분이란 ㅎㅎ(그때 자동차 공부보단 여심女心을 공부했어야 했는데 ㅋ)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는 교육 현장(교단)으로 추천을 해 주었지만, 해외 근무하며 향수병을 심하게 앓아 유혹(S-구룹에서 운영하는 수도권 모 기술원이었음-지금은 스웨덴 기업으로 넘어감)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내려와 밑바닥 생활을 다시 했다. 이 지역이 고향이라곤 해도 오랜 세월 밖에 나가 생활했기에 동종업계의 얼굴이나 생리도 전혀 몰라 얼굴도 익힐 겸 65만 원짜리 일자리를 조건도 따지지 않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주인이 부담스러워했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니 받아주었다.ㅎ 딱 6개월 일하고 임시로 다른 날일을 하며 창업할 자리를 알아보다가 97년 IMF 직전 개업하게 되었는데.ㅠ(이후는 길어서 생략ㅎ. 당시 동종업 기사 급여가 150 안팎이었으니, 난 보조 기사를 구하는데 지원해 1/2 이었음)
일터에 오시는 손님들(특히 아줌마들)은 아파트는 자꾸 옮겨 다녀야 프리미엄이 붙어 자산을 늘리는데, 왜 한 곳에 그렇게 오래 붙박이로 사느냐, 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유~ 얼마나 잘 쓰고 잘 먹고 살다 가겠다고 그리 욕심을...'하곤 했다. 정남향(180˚-5 동남)이라 겨울에도 햇살이 온종일 안방과 거실 깊숙이 들어와 보일러를 꺼도 따스하다. 심지어 뒤쪽으로 붙은 안방 욕실에도 볕이 들어오니 그저 감사할 뿐... 무엇보다 조용하고 베란다에 나가 해바라기 하며 책을 읽거나 집 앞 호숫가를 바라보면 모든 번뇌와 욕심이 사라져 힐링하기 그만이다. 어느 해 봄 베란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학교 문학 동기(아줌마임)가 톡을 보내 즉흥적으로 호숫가 사진을 담아 보냈더니, '우리는 날 잡아 돈을 내버리고 찾아가야 하는데 매일 공짜로 누린다' 해서 얼마나 웃었든지. 따져보니 그 말이 맞아!
저층 주민들이 시야 가린다고 자꾸 시청에 민원을 넣어 나무들이 자랄 새 없이 가지를 잘린다. 심지어 성장 순이 있는 상수 머리를 싹둑 자르는 일도 빈번하다. 나무가 심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음에도 그저 한 개인의 편익을 위해 민원을 넣는... 아파트 담장 안에 심은 나무들도 1/3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인간들, 싫으면 이사를 하던가 죄 없는 나무에 화풀이하다니!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폰 충전한다고 7시 40분쯤 나갔는데. 강바람이 살랑거려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많이 날아갔다. 2010년 1월 1일 새해 첫날. 그땐 엄니가 곁에 계실 때였다. 폭설이 내려 말 그대로 상고대가 얼어붙어 환상적인 눈꽃이 나무마다 피어 이른 아침 강둑으로 나가 정취에 반쯤 홀려서 사진을 담으며 마냥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해가 중천에 올라 집에 들어가니, 엄니 왈 "가게 가서 눈 치우고 오는 거야?"하고 묻는다. 놀다 들어왔다고 하면 엄마 배고픈데 기다리게 했다, 고 한 말씀 하실 것 같아 " 음~ " 하고 웃으니, 엄니가 뭘 눈을 치워! 어디 가서 놀다 들어왔구먼! 하셔서 '엄마한테는 거짓말도 못하겠다'고 얼마나 웃었는지. 이젠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ㅠㅠ
일터로 갈 때는 아래 아치형 큰 다리(나는 '무지개다리'라고 부름)를 건너고 집에 돌아올 땐 이 다리(일방통행)를 이용한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6.25 전쟁 당시 다리 위에서 치열하게 교전을 벌였던 우리 국군들의 피 끓는 조국애와 젊은 영령들의 헌신에 늘 숙연해진다. 교각에는 그날의 상흔인 기관총 총탄 자국이 곰보처럼 나 있다. 그런 역사적 현장도 모르며 살기 힘들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고 이곳 다리 위에서 삶을 내던지는 철없는 젊은이들도 있으니, 격전의 전쟁터였던 다리 위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영령들의 얼마나 혀를 차며 웃을까. (실제 97년? 어느 아가씨가 새벽 1~2시 사이?에 실연을 이유로 삶을 던지려는 것을 돌려보낸 적 있음. 이야기가 길어서...대충 유부남을 좋아했던 아가씨였는데, 강릉여고를 나와 이곳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고.)
엄마랑 휴일이나 일과 후 저녁을 먹은 뒤 바람 쐬러 나와 주로 이 길을 걷곤 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지난 일들이 아련히 떠올라 때론 눈물을 짓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 하늘로 돌아간 뒤 누군가의 기억으로 재생되어 존재할 수 있다면, 비록 그 추억이 아프다 해도 행복할 것 같다. <오~! 가엾은 두 영혼> 글 속의 귀뚜라미도 산책로 표지판 옆 벚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주말이면 서울.수도권에서 찾아와 이 길을 같이 걸으며 예쁜 추억을 쌓은 친구들도 제법 많았으니, 나는 죽는 그날까지 이곳을 떠날 수 없을 듯하다.ㅎㅠ
내가 사진을 담으며 이른 봄눈을 만끽하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뒤따라 걷던 두 내외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휴일이라곤 해도 같은 정서를 지니니까 가능하지 싶다. 더군다나 이른 아침 시간에 하얀 은백의 세계가 펼쳐진 호숫가 산책로를 둘이 걷는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두 분의 공감대 정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행복 별거 아닌데... 그쵸? 저런 모습 속에 내 안의 행복이 담겨 있으니까요.^^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났으면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산책로를 마치 첫사랑 입술에 입맞춤하듯이 설레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을 텐데...나름 늦지 않게 일어난다고 했는데도 나가 보니 발자국이 너무 많이 지나갔다.ㅋ 세상에 쉽게 얻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ㅎ
엄마랑 때론 친구들이랑 이 길을 산책하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이 묻어 있는 강둑 산책로 벤치 위에 하늘은 하얀 도화지를 깔아주었다. 여름밤이면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이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강바람이 시원해, 아니 그보다는 수다 떠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ㅎㅎㅎ
휴일이나 밤에 엄니랑 바람도 쏘일 겸 엄니의 휠체어를 밀고 이곳까지 와서 잠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때론 군것질도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추억이 그리워 가끔 이곳을 찾는다. 다른 이들은 더 멀리 가는데 엄니의 몸 컨디션을 생각해 중간 지점인 이곳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돌아곤 했다. 엄마뿐만이 아닌 서울 수도권에서 주말이면 찾아오는 친구들도 이곳에서 심쿵한 추억을 남기곤 했다. 음~ ㅅㅇ, ㅇㅇ, ㅇㅎ, ㄱㅅ 등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ㅎㅎㅎ
오월이 돌아오면 호수 한가운데 풀섬들이 파란 옷으로 갈아입고 담수호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물이 대기와 접촉하며 수온 차이로 수면 위에 뽀얀 물안개가 섬을 끌어안으며 피어오르면 말 그대로 환상의 섬이 되기도 한다. 이곳보다는 좌측으로 강을 따라 올라가며 그곳에는 풀섬들이 남해의 다도해다. 한때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친구와 보려고 호숫가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ㅎ 물 위에 떠 있는 까만 점들은 아침 산책(장 보러)을 나온 오리들이다.
한 곳에 오랜 세월 붙박이로 살다 보니 이 나무가 살아온 삶의 역사를 알고 있다. 처음 손목 굵기의 나무로 심었는데, 이동 과정에 나무껍질이 상처를 받아 마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병변이 생기며 썩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나서 이렇게 성장했다. 전에 찍어 둔 사진도 있을 텐데... 엄니 계실 땐 지나가며 어루만지며 '더는 크게 아프지 말고 잘 커라' 위로도 건넸다. 조물주는 사람이나 나무나 지구촌의 생명체에 본능적으로 살아내려는 자기 기적을 내려 주셨다. 힘들다고 불편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꿋꿋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나무처럼 당당하게 다시 설 수 있는 날이 돌아온다. 녀석 볼수록 대견하다. _()_
우리와 이웃한 아파트 남문 출입구. 아파트에서 강둑 산책로로 바로 나갈 수 있어 편리하고 예뻐 지나는 길에 꼭 바라본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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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25.04.04 이미지 소실 재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