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이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다는 미명아래, 서민들에게 불리한 약관을 만들어 이를 시행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제일은행의 돌발행동을 집중 취재했다.
엊그제 제일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간 주부 정모씨(33)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일은행 측에서 5만원 이상 입금시켜야만 신규통장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담당 직원은 친절하게도(?) 월 평잔이 10만원 미만이면 2000원을 페널티 공제한다는 사실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5만원이란 금액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정모씨는 통장을 개설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황당과 분노가 섞인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제일은행(www.kfb.co.kr)이 국내은행 중 최초로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를 도입했다. 제일은행은 2001년 1월 2일부터 예금을 신규개설한 거래고객에게 월 평잔 합계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월 2000원의 수수료를 받으며, 아울러 5만원 이상 입금시켜야만 통장을 개설해 주기로 결정했다.
본지는 정모씨의 놀라운 제보를 받고 일단 제일은행 본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제일은행 홍보부 이모 대리는 "이미 금융감독원의 승인이 떨어진 일"이라며 간단한 설명 이외엔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제일은행 측과 인터뷰 약속을 받아낸 뒤, 금융감독원에 확인 전화를 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일은행 측의 요구를 승인했다"고 말했으며 "국민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제일은행이 싫으면 다른 은행과 거래하면 되지 않겠는가?"는 몰지각한 답변을 했다. 또한 기자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전혀 관계도 없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책임을 돌렸다.
본 기자는 혹시나 싶어 공정거래위원회와 연락을 취했지만 김모 과장의 "저도 처음 듣는 얘깁니다. 웃기는 사람들이군요. 그것이 우리 쪽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라는 정말 우스운(?) 대답을 들어야했다.
소비자보호원에서도 '소비자 소리함'이란 게시판에 제일은행 측의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 도입에 대한 국민의 하소연이 버젓이 게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소비자보호원의 관계자는 금융담당자와 토의한 후, 국회의 '날치기 법안 통과'에 버금가는 제일은행의 돌발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알려주기로 했다.
전화 취재를 끝마친 본지는 곧장 제일은행측과의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본지 기자들은 제일은행 본점이 위치한 종로로 향하던 길에, 거리와 지하철에서 10여명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예상대로 제일은행의 '뒤통수치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그 중 회사원 박모씨(40)는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서 살려놓았더니 이럴 수가 있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부분 시민들은 경악과 함께 "자세히 조사하여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여 기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일은행에 도착한 본지 기자들은 쥬스 한 잔을 다 마신 이후에야 홍보실의 이모 대리와 대면할 수 있었다. 이모 대리는 참고자료 한 장만을 달랑 내놓은 후 제일은행측의 입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일은행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제일은행장)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서이며, 소액 다계좌 보유 및 휴면계좌의 발생 등으로 인한 은행 전체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함과 동시에 고객의 입장에서는 자산관리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자는 것. 이모 대리는 인터뷰 도중, 서너 차례나 일간지 기자로 추정되는 다른 방문인과 대화를 함으로써 취재 흐름을 완전히 끊어놓는 예의(?)를 보여주었다.
사실상 제일은행은 외국 기업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미국계 투자전문회사인 뉴브리지캐피탈은 2000년 1월 제일은행에 5000억원을 투자하여 지분 51%와 경영권을 확보하고 Wifred Y. Horie 은행장을 비롯한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였다.
이모 대리의 말에 의하면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의 도입은 COO인 Dunken W. Barker 상무의 단독결정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은행들이 채택하고 있으니 국내에도 도입해야 된다는 논리다.
당시 미국인이 아닌 간부급 한국인들의 반발이 많았으나 Dunken 상무 한 사람의 입김을 막지는 못했다. 본지는 제일은행 인터뷰를 끝내고 타 은행의 반응은 어떠한지 살펴보기 위해 근처 A은행을 찾았다.
놀랍게도 A은행 관계자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도리어 "충격적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본지 기자가 관계자에게 의견을 묻자 "은행측 입장에서 본다면 고객 차별화를 통한 수익성 확대 방안이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일 것"이라고 솔직히 답변했다.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하여 한국경제와 주주, 고객 모두에게 기여하는 초우량은행으로 자리잡겠다는 제일은행. 자신들은 십자가를 멨을 뿐이며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제일은행. 그러나 선진금융기법을 무작정 도입한다고 해서 정착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가 은행을 살찌우는데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지만, 가난한 국민들에게는 매달 2000원을 강탈해갈 수도 있는 몰인정한 제도에 다름 아니다.
제일은행에게 바란다.
IMF 시절 국민의 혈세로 구제되었던 기억을 상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국민들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소시민들의 원망이 들려오지 않는가. 방침 철회를 다시 한 번 신중히 고려하라.
본지에서는 이후 제일은행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