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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포커스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은 고린도전서 15:22인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을 소개하면서, 님이 궁금해 하시며 알고자 하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해 주셨습니다. 님의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창세기에서 아담은 천국에 갔나요? 지옥에 갔나요?
둘째, ‘아담 안에서’ 라는 뜻은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와 반대되는 세속적이거나 육적인 것을 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인(하늘)을 말하는 것인가요?(고전 15:44, 47, 49)
라고 말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창세기에서 아담은 천국에 갔나요? 지옥에 갔나요?에 대해서입니다. 님이 이러한 궁금증을 갖게 된 것은 고린도전서 15:22인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을 보고서입니다.
이 구절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면서(15:1-11) 그를 믿는 자인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부활을 말해 주시는 것(15:12-34)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어서는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15:35-58)도 말씀합니다.
이 중에서 님이 질문의 근거 구절로 삼은 15:22인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내용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란 서신을 써서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은 그들에게서 논쟁되는 여러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비롯해서 바울의 사도성, 음행, 결혼, 우상제물, 성찬, 방언과 예언 등의 은사 문제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이 중에서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에서 부활을 전해 주었었는데 이제 그 부활의 복음의 참 뜻을 다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필요성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부활을 말하기에 앞서서 서두에서 고린도교회가 부활의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 복음에 견고히 서서 굳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이 놀라운 복음 위에 바로 서 있다는 증거라고 그들의 믿음을 확인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만일이 이들이 부활의 복음을 처음부터 별 의식 없이 믿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한마음으로 굳게 믿어왔다면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먼저 주께로부터 전해 받은 것을 전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무엇에 믿음이 굳게 서 있는 것인지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그 복음을 굳게 지키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믿음이 이 복음 위에 서 있다는 증거로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실증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게바에게 나타나신 것을 비롯하여서 열 두 제자에게, 또한 500여명이 넘는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신 것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당시에는 이들 중에 태반이나 살아 있으니 헛말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남으로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자신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대하고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믿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 한번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대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안 된다.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라고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며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논증적으로 부활을 다음과 같이 말해 나갑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는 어찌 된 것이냐? 그분도 아직 여전히 죽은 자로 계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이죠.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시다면 그동안 우리가 전한 것은 다 헛것이요 또 그런 우리의 말을 듣고 믿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아무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다시 살리셨다고 전한 우리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될 것이니 결국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니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셔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온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어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다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만 믿는 것을 전부로 알고 오직 여기에만 매달려 있는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비참하며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확신에 찬 어조로 강하게 '그러나'라고 말하면서 반전해 나가는 전개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을 분명히 해두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첫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으로 그가 죄 때문에 죽은 것 같이 우리 또한 모두 아담 안에서 죄 때문에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혈통이요 그의 죄인 된 종족이기 때문에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그 결과로서 죽음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 값인 사망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난 그 생명을 인해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순서가 있어서 제일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러한 논증에서 말해지고 있듯이, 22절에서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죽음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아담은 인류의 첫사람으로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있으며, 첫사람 아담이 죄 때문에 죽은 것 같이 그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 또한 아담 안에서 죄 때문에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혈통이요 그의 죄인 된 종족이기 때문에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인이며 죽음 아래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그 결과로서 죽음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3:10)며,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3:19)고 하면서 “죄 값인 사망”(6:23)을 말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난 그 생명을 인해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렇게 말이죠. 바울이 고린도전서 15:22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는 죄인 된 첫사람 아담 안에서의 모든 사람의 죄 문제, 곧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의 죄를 다루며 그 죄인들이 받을 심판으로서 죽음의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는 첫사람 아담을 비롯해서 그와 함께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은 심판인 죽음의 형벌로 지옥에 갑니다. 이러한 처지된 사람의 모습이, 곧 사람의 실체가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감춰지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사람을 말하면서 그가 알게 해주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죽음이 한 사람, 그러니까 첫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듯이 이제 죽은 자의 부활이 또 다른 한 사람에 의해서 왔다는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할 때 그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울이 해주고 싶은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바울이 하고 있는 말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는 그 죄값으로 누구나 죽음을 당하게 마련인데,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부활한다는, 즉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 바울은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반드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열매, 곧 첫사람이 되셔서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그에게 함께 연합되어 있는 열매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임을 말하였습니다(15:23).
그래서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르는 사람은 죄값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혜를 입습니다. 첫사람 아담과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이 죄값인 죽음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 내던져집니다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들이 믿는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구속의 피 공로로 죄에서 구원받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의 주이신 생명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나라인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한 자가 되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을 자신이 부활한 생명에 연합한 자가 되게 하여 다시 살리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자들인 그리스도인, 이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에게로 불러 모으시고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이 되게 하십니다. 이 일을 세상 끝날까지 해 나가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는 죽음의 심판 아래 있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과 구원의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이것을 말해주시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이 언약 안에 두시고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救贖)을 받게 하십니다. 즉, 속죄(贖罪)의 은혜를 입고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을 부르셔서 그와 언약을 맺으셨으며 그에 따라서 그를 구원의 약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신 그대로 그를 구원하셔서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요 부활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니 첫사람 아담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 자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아담은 천국 갔나요? 아니면 지옥 갔나요?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죄인된 첫사람 아담은 죄 때문에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첫사람 된 또 다른 한 사람인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들어간 자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로운 일은 첫사람 아담 한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똑같이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첫사람 아담에게 있는 일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백성에게 똑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님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아담 안에서’ 라는 뜻은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와 반대되는 세속적이거나 육적인 것을 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인(하늘)을 말하는 것인가요?(고전 15:44, 47, 49)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는 앞서에서 답변을 드리는 설명에서 말하였듯이 ‘아담 안에서’는 그와 함께 죄와 죽음 아래 있게 된 것에 이해에 의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서 그 부활의 생명에 그를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이 있게 된 것에 대한 이해에 의해서 해주시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이전의 아담 안에서는 죄로 죽었던 자인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에 의해서 다시 살리심을 받는다” 라고 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것에서 님이 고린도전서 15:44, 47, 49의 세 구절을 들어서 ‘아담 안에서’ 라는 뜻은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와 반대되는 세속적이거나 육적인 것을 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인(하늘)을 말하는 것인가요?라고 물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님이 제시한 세 구절에서 보게 되는 서로 대비가 되고 있는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은 첫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죄값으로 죽음의 심판 앞에 있는 육의 몸이지만 또 다른 한 사람, 곧 부활의 첫사람이 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뒤에는 더 이상 육의 몸으로 있는 것이 아닌 영적인 몸으로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흙에서 난 자‘와 ’하늘에서 난 자‘의 대비적인 설명은 인류의 첫사람인 아담은 땅에 있는 흙으로 지어진 흙에서 나온 자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이고, 또한 ’흙에 속한 자의 형상‘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의 대비적인 설명은 모든 사람은 누구나 첫사람 아담과 같이 흙으로 지어진 몸(형상)의 육으로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사람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같은 몸인 하늘에서 주어진 몸(형상)을 지니게 될 것으로 비록 지금은 아담과 같은 몸인 육으로 있지만 세상 끝날에 있게 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늘에 속한 자의 몸으로 있게 될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변을 마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증거하는 진리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할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린 답변의 글을 통해서 님이 궁금해 하는 의문이 풀려질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서 부활의 진리에 님이 주께 가진 믿음이 확증되는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지금 눈이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소식을 들으니 전국 곳곳에서 큰 눈과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온 대지를 넉넉히 적심으로 활기찬 생기가 있게 하는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너무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갖습니다. 이로 인해서 적지 않은 불편과 피해도 있을 수 있기에 갖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넉넉함도 지나침도 모자람도 그 모두가 주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며, 그 너머에 있는 참된 것을 바라보며 생명의 주를 의지함으로 우리 자신을 주께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강건하실 것과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목사님 자세한 답변 감사 합니다 이 모든 것도 주님의 허락 하심임을 일깨워 주시고 함께 하신 목사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