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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돌과 비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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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문학관* 스크랩 쥐면 꺼지는 봉곳한 뽕브라처럼 외 / 장옥관
동산 추천 0 조회 185 09.05.08 18:0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쥐면 꺼지는 봉곳한 뽕브라처럼 / 장옥관 

 

 

 

 

 소줏집에서 등골 안주가 사라졌다 광우병 탓이다 광우

병의 잠복 기간은 5년, 올해 86세 친구 아버지 광우병 파

동 뉴스 본 뒤엔 퇴근길 아들이 자주 사들고 오던 등골에

젓가락 일절 대지 않더라고,

 

 또 이런 이야기: 아파트 노인정에 나가는 게 유일한 낙

인 82세 장모님 며칠째 칩거하시는데 사연인즉, 말기암에

걸린 그 할마씨 점심상에서 얼굴 마주하면 도무지 밥덩이

가 넘어가질 않아서,

 

  아흔을 넘기고는 끼니마다 밥공기에서 밥 덜어낸다는

시인의 외할머니, 며느리 볼일 보러 나간 밥상에서는 식

은밥 한 공기 말끔히 비우신다는 할머니,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아, 그랬던가 무릇 생(生)이란

쥐면 꺼지는 봉곳한 뽕브라처럼 속이 비어서

산수국 헛꽃에 죽자고

달려드는

저 겹눈의 허기에 바닥은 없다 

 

 

 

 

내가 강에 가는 이유 / 장옥관


사람들은 묻는다, 왜 강에 가느냐고. 인적 드문 적막 강변에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아내가 싸 준 도시락 들고 집 나서면서 나도 물어본다.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비둘기를 실은 낡은 바퀴 구슬프게 굴러가고 시절을
잊은 시집은 차 바닥에 뒹구는데 부지런한 버스가 부려놓은 씩씩한 공장
지나쳐 나는 왜 날마다 강으로 가는가. 반듯한 교과서 명랑한 군대, 나날의
구름 안색 저리 훤하건만 눈 흘기는 물총새 삐죽이는 자갈 비웃음 받으며
평일 대낮에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 찾을 길 없을
때 풀숲 자갈밭에 퍼질고 앉아 밥이나 먹는다.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식은
쌀밥은 말없음표처럼 촘촘하고 흰 두부의 먹먹함 사이 비쩍 마른 멸치의
서러움을 키 큰 붉은여뀌 목 빼어 기웃거린다. 태풍 매미에 할퀸 제방은
벌건 살점을 드러내고 손발 다 잃은 버드나무 찢어진 비닐을 날개인 양
달고 서 있다. 거센 물살에 떠밀려와 눈뜬 채 제 살점 개미떼에게 떼어
주는 참붕어. 모로 일제히 쓰러진 갈대풀 속에는 누가 옮겨 놓았을까,
붉은 우단 의자 하나. 그 위에 내려온 하늘이 턱 괴고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예나 제나 한결같은 모습은 쉼 없이 부닥쳐오는 입술에 귀
맡겨둔 물 속의 돌멩이. 어룽대는 물빛에 내 낯빛 비춰보고 저물녘
나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와서는 말하리라. 돌멩이 얼굴에 꽃이
피었네, 능청부리면 짐짓 모르는 척 받아주는 아내의 몸에 찰박이는
물소리는 서럽게 내 몸에 울려 퍼지리라.

 


다시 살구꽃 필 때 / 장옥관


옛 외갓집 살구나무 꽃 필 때
이모는 아궁이 속에서 굴러 나온
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
곤곤한 달빛 위로 흰 발목이 둥둥 떠다니며
장독마다 차오르는 물소리를
내 어린 풋잠은 엿들었던 것이니
그런 날이면 한 밤중에도
오줌보가 탱탱하게 부풀어올랐다
문풍지를 스미는 희미한 향기
먼 우주의 물고기가 안마당까지 몰려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고 가기도 하는 것인데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눈 맺혀
돋아나는 초승달
벌겋게 달아오른 외할머니의 아궁이가
한밤 내내 식을 줄 몰랐다
둥그스름 달집 딸아이의 몸 속으로
벌건 숯불은 다시 지펴져
봄밤의 구들 뜨겁게 달구어낸다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 장옥관


그래,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함부로 몸을 만지지 말라는 거지 초경의 딸아이가 껴안으려는 나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래, 열 두살이라면
고치를 만들고도 남을 나이
늘 열어놓던 방문도 자주 닫히고
눈에 띠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일기장 두께가 두꺼워지고 있으리라
지난 달에 전화요금이 두 배로 늘었다
늦은 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
공명통 같은 고치속에서
콧등에 난 수두같은 네 몫의 시간을 너는 맨발로 건너가고 있으리라
누구도 손 뻗어 거둘 수 없는 어둠이기에
팔짱 낀 시간 견딜 수 밖에 없겠으나
며칠 째 굳게 닫혀 있는 고치속이 하 궁금해
들여다보니 아뿔사,
금성 라디오 잎에 엎드려 졸고 있는 중학생 나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어머니가 거기 앉아 계신다



돋보기 맞추러 갔다가 / 장옥관


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성대도 늙는가,
굵고 탁한 목소리.
10년 전 이사 올 때 뭉쳐 놓았던 고무 호스,
벌어진 채 구멍 오므라들지 않던 호스가 떠올랐다.

오후에 돋보기 맞추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
흰 모시 치마저고리만 고집하던 노마님이 사돈집에 갔다가
아래쪽이 조여지지 않아 마루에 선 채 그만 실례를 하셨다고-

휴지 가지러 간 사이 식어버린 몸,
애걸복걸 제 몸에 사정하는 딱한 사연도 있다.
조이고 싶어도 조일 수 없는 不隨意筋, 늙음이다.
몸 조여지지 않는데도 마음 사그라들지 않는 난감함,

늙음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실은 남남이듯
몸과 마음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깨달음,
찬물에 발바닥 적시듯 제 스스로 느끼기 전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실,
이것이 늙음이다. 
 

 

 

 

 

걷는다는 것 / 장옥관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육차선 대로변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뼈마디를 밟고 저기 저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검은 혓바닥

 

갈라진 거울처럼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 몸이 혓바닥이 되어 핥아야 할 뼈마다

내 등짝에도 숨어있다

 

 

 

 

밥 먹는 일 / 장옥관

 

 

큰 수술 받은 아내하고 둘이서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는다

모름지기 밥 먹는 일이 범상하지 않음이여

지금 우리는 한차례 제사를 드리고 있다

생기 잃은 몸에 정성껏 공양을 드린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온 맘을 다해 청포 갖춰 입은 방아깨비처럼 절을 올린다

서로의 몸에 절을 올린다

 

 

 

지렁이 / 장옥관



몸에 묻힌 흙먼지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가 춤을 추는 줄 알았을 것이다

초여름 볕 짱짱한 대낮
온몸 뒤틀며 뒹굴고 있는 굵은 지렁이 한 마리
현기증 나는 춤사위 동작 펼치고 있다
어제 그제 비 그쳤는데
무슨 까닭으로 백주(白晝) 시멘트 길에 나와 허공을 후벼파고 있을까

어떤 시인은 지렁이가 비의 뿌리라고 했지만
아니다, 지렁이는 땅의 뿌리

아파트 화단의 흙구덩이
여린 연분홍 꽃 매달았던 모과나무가 옮겨진 자리에 뭉텅 끊어진 뿌리
몸체의 기억 품고 있는 실뿌리 하나가
뻥 뚫린 구덩이 허공을 헤집다 빠져나와 여기 뒹구는 게 아닐까

‘학교 다녀올게요’ 현관문 닫고 나간 아이
한 줌 재조차 없는 완벽한 부재(不在)*

몸통 쑥 빠져나간 구덩이에서 삐어져 나온 굵은 칼금의 기억 한 가닥이 여기 검붉은 몸뚱이로 뒹굴고 있는 게다
진피(眞皮)가 훌렁 벗겨진 벌건 살점
공기가 닿을 때마다 불길 이는 통증, 길고 붉은 혓바닥이 달디 달게 제 몸을 핥고 있는 거다

그 황홀한 춤, 고통의 도취!

나는 고독한 춤을 지켜보다가 입 닫고 가던 길
묵묵히 다시 걸어나갔다


*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전동차(기관사 최정환) 안에서 한 정신질환  자가 불을 질러, 승객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하늘 우물 / 장옥관

 

 

한때 나는 새의 무덤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다

물고기의 무덤이 물 속에 있고

풀무치가 풀숲에 제 무덤을 마련하는 것처럼

하늘에도 물앵두 피는 오래된 돌우물이 있어

늙은 새들이 거기 다 깃드는 줄 알았다

피울음 깨무는 저 저녁의 장례

운흥사 절 마당 늙은 산벚나무 두 그루

눈썹 지우는 것 바라보며 생각하느니

어떤 죄 많은 짐승 내 뒤꿈치 감옥에 숨어들어

차마 뱉어내지 못할 붉은 꽃숭어리

하늘북으로 두드리는 것일까

하르르 하르르 귀얇은 소리들이 자꾸 빠져들고

죽지 접은 나무들 얼굴을 가리는데

실뱀장어 초록별 물고 돌아드는 어스름 우물에

누가 또 두레박을 던져 넣고 있다

 

 

 

타클라마칸의 눈동자 / 장 옥관


이층 사무실 눈앞에 노오란 유채꽃이 하늘거리고
있군요 명신유리샷슈집 아주머니가 가꾸는 옥상 위
화단 파 쑥갓 상추를 솎아내는 몸뻬바지의 아줌마
를 자주 봅니다 그 아주머니 올해는 웬일인지 유채꽃
을 피워냈군요

유채꽃들이 황사바람에 전전긍긍하는 것을 봅니다
일년에 단 한 차례 잔칫상을 차려놓았는데 청첩도 보
내지 않은 황사가 와 망나니짓입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불어온다지요 천년 전에는 호
수였다는 사막, 누란의 옛 그림자를 담고 있는 사막,
월아천의 명사산 비파소리가 지금 들려옵니다

천산남로의 길을 지난 해 다녀왔지요 ?항의 밤, 한
사내가 야시장에서 두 딸을 데리고 해금을 켰습니다
여윈 어깨가 불러낸 노래의 물살은 급하고 가팔랐고
요 그 밤에 불던 흙바람이 지금 눈앞에 지나가고 있습
니다 사는 것이 아직 견딜 만합니다

누런 군용 담요처럼 하늘을 덮는 황사 기실 식물에
게 흙이란 밥 아닙니까 수십만 리에서 날아온 밥! 사
막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노래와 뼛가루가 이 바람 속
에 섞여 있으니, 이를 마신 저 유채꽃은 내년 봄 천년
전에 사막에서 사라진 사람의 눈동자를 피워내겠군요

 

 

 

가부좌 틀고 앉아 새끼를 낳는다 / 장 옥관


앉음새는 두말할 것 없이 가부좌이다
가부좌 틀고 앉아 새끼 낳는 짐승을 보려거든
경주 남산에 오를 일이다
복장 시커먼 늙은 도둑처럼 골짜기로 숨어들어
산꼭대기 소슬하게 얹힌 석탑의 처마 아래
쪼그리고 앉아 조바심 보태면
큰 짐승의 어두운 앉음앉음 너머로
주먹 하나가 불끈 솟구친다 어, 어 입 다물 사이도
없이 가부좌한 가랑이 사이로
꿈틀꿈틀 검붉은 대가리의 핏덩이가 힘껏 빠져나오니
아, 앉은 채로 새끼 낳는 일의 장엄함이여
피비린내 물씬 풍기나 여물 씹는 희미한 냄새도 난다
하지만 갓 태어난 짐승의 눈동자는
어리둥절 핏기 채 가시지 않아 아직은 미혹, 미명의 세상일 때
떫은 감 같은 눈동자에 피막이 걷혀
말갛게 낯빛이 투명해지고
종내는 피 맑은 홍시처럼 중천에 둥싯 떠올라
골짜기 구릉 할 것 없이 구석구석 어둠을 닦아 낸다
도둑질로 이골 난 이 축축한 마음까지도 죄다
내다 말려주는 저 달빛!
남산 골짜기 부처가 가부좌 틀고 앉아 새끼를 낳는다
둥글게 물소리도 이 밤 허물을 벗는다

 

 

 

달과 뱀의 짧은 이야기 / 장옥관

 

 

은빛 수레바퀴 밤새 하늘을 굴러다닌다는

전월사(轉月寺),

동짓달 북향의 골짜기는 옴팍해서 달빛 담기에

맞춤한 옹배기랍니다

 

도시 인근 흔히 보는 이 암자 주인은

올해 갑년을 맞은 비구니,

법명이 달풀(月草)이라 하시는군요

여섯 살 나이로 경주 함월산(含月山)에서

계를 받았다는데요

 

먹물옷 말고는 딴 맘 딴 옷 가져보지 못한 채

다 늙은 사람의 심정이사 뒷산 오리나무나 짐작할 뿐

제 잇속이나 셈하는 복장 시커먼 도둑이 알 바 아니겠지요

그러나 인연 닿는 곳마다 굳이 달을 갖다 붙이는

여자의 마음은 알듯 말듯 하구요

 

낯모르는 사람이 내미는 찐빵 이천원어치에

빗장지른 마음 덜컥 열어젖히는 혼자 사는 늙은이,

해 짧고 달 긴 동짓달 속사정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서두

휘영청 초저녁에 뜬 달이 한잠을

자고 나와 봐도 그 자리,

다시 깨어 봐도 그 자리,

도무지 눈꺼풀 없는 밤이라는군요

 

그런 밤이사 얼음조각 머금은 듯

차고 시린 달이 어둑새벽까지 띠살문 밝혀서

안 그래도 가난한 우리 스님의

몸이 더욱 말라붙었겠구요

뒷산 솔숲 소쩍새 목쉰 소리에

마당 가슴팍 찬 우물도 덩달아 깊어졌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조금 아는 것이어서

세상의 일을 어찌 이루 다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장지문 바로 건너

대웅전 마루 아래 뱀 소글이 숨어 있다는데요

법당이든  부엌이든 심지어 하루는 늦은 밤

티브이 위에 똬리 틀고 혀 날름대고 있더라는 이야기

 

생각건대 달풀 우거진 보름달 속에는

수천수만 실뱀 똬리 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 달빛,

얼키설키 뒤엉켜 뭉쳤던

은빛 실뱀들 오리오리 풀려

날이면 밤마다 마룻장 아래 모여드는 건 아닐는지

그래서 늦은 밤 법당 안이

이따금 해바라기처럼 환해졌던 것인가

 

이리 몸 섞고 저리 몸 뒤엉켜 겨울잠 자는

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동짓달 덩두렷이 보름달로 굴러가고,

어떤 못된 뱀은 아궁이 통해

불 꺼진 몸속으로 자꾸 파고들고,

그때마다 처마를 받든 두리기둥은

화들짝 뿌리가 굵어졌겠지요

 

그에 날 저물어 기어코 잡는 손길

뿌리치고 일어서다 보니 아뿔사,

기왓골 타고 굴러온 달.

달풀스님 목에 얹힌 달덩이에 혓바닥이

두,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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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껍질 속 상처를 둥글게 만드는 시의 힘

 

글/ 박상봉

1
장옥관 시인은 내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중학교와 대학 선배이고 한때

직장의 상사였으며 문단선배로 30년이 넘도록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저런 관계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살아오는 동안 여러 가지로

베풀어 받은 것들이 적지 않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은덕 하나는 평생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직장을 그의 도움으로 얻게 된 것이다. 직장 좋은 덕분에

집도 사고 차도 굴리며 요즘 같은 실업대란의 시기에 밥벌이의 지겨움을 느낄

만큼 오래 다니고 있으니 인간 장옥관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일생의 큰 은인이

아닐 수 없다.

그를 생각하면 전자산업 도시로 알려진 구미(龜尾)가 먼저 떠오른다. 구미수출

산업공단(현재 한국산업단지공단 중부지역본부)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5년 가까이 직장상사로 모시며 한솥밥을 먹었던 추억 때문이다.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다 보니 매일 기본적으로 꼬박 여덟 시간은 붙어 지냈다.

퇴근하고 나서도 지역의 문학모임이나 문단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는

경우가 잦았다.

90년대 초반, 직장 때문에 대구를 떠나 구미에서 살게 되면서 기계소리 요란한

산업현장에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 근로자들이 의외로 많음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문학의 열기 또한 어느 지역 못지 않게 뜨거웠다.

오로지 벌어먹고 살기 위한 생존현장의 그 질서정연한 노동과 시간의 압박을

뚫고 어떻게 시심(詩心)이 꽃을 피우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당시 구미

수출산업공단 홍보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장옥관 시인이 문학의 텃밭을 일구고

시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해마다 공단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구미공단 근로문학상을 주관하였다.

또 당시 금오공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김선굉 시인, 평론가 김양헌과 '수요문학

교실'을 만들어 급속한 공업화, 도시화 물결로 삭막해져 가는 구미에 훈훈한

시심(詩心)을 가꾸고 문학의 숨결을 불어넣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수요문학교실'을 운영하는 일과 지역문학 활동에 한몫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더러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만나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으니

그 즈음에 그와 나는 바늘 가는 곳에 따라 다니는 실처럼 붙어 지냈던 셈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바퀴소리를 듣는다』(민음사,1995)가 쓰여지던 시절 이야기다. 나는 거의 매일 한편 꼴로 시를 생산해내는 놀랍게도 왕성한 그의 필력을

목도할 수 있었다. 신작을 쓰고 나면 곧바로 보여주고 느낌을 물어오곤 했으므로 갓 구워낸 초고 상태 그대로 시를 감상하는 특전도 누렸다.

여름날 소나기 쏟아지듯 작품을 쓰던 시기에 지근거리에서 시인 장옥관과 인간

장옥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가깝게 지냈으니 나야말로 그를 속속들이 잘

아는 축에 든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아마 그런 인연 때문에 이 글의 청탁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보는데 막상 글을 쓰려드니 그의 시도 그의 삶도

오리무중에 있고 그냥 함께 여행을 다닌 추억만 가득 떠오른다.

무던히도 많이 돌아다녔다. 구미·선산·해평 구석구석은 말할 것도 없고 왜관·칠곡·성주·김천·지례·군위·상주로, 또 영주·안강·경주·영천·울진으로 낙동강을 따라서

흐르는 강물처럼 순례하며 틈만 나면 산이나 강, 숲이나 돌밭을 찾아 쏘다녔다.

깍아지른 듯 하늘로 솟은 기암절벽과 그 위로 우거진 송림, 그리고 낙동강 물길

과 강 건너에 펼쳐진 금빛 모래톱의 아름다운 어우러짐을 내려다보며 감탄하였던 경천대를 그의 손길에 이끌려 처음 가보았다.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었다는 사랑채 독락당(獨樂堂)과 뒤쪽의 계정(溪亭)과 같은 문화유산과 천혜절경을 답사하고 다닌 것도 그의 덕분으로 누리게 된 행운이다.

2
경북 구미시 끝자락인 선산을 건너 김천에 들어서면 석쇠불고기로 유명한

<배시내>라는 마을이 있다. 언젠가 그를 따라 그곳에 간 적이 있다. <감천(甘川)을 끼고 뻗어 있는 국도>를 타고 <드넓은 선산벌 건너오는 순한 바람>을 맞으며 김천으로 가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접어들자 숯불구이 고깃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석쇠에 토종 돼지고기를 올려놓고 연탄불로 살짝 구워서 접시에 담아 나오는

데 그 맛이 너무 기가 막혀 못먹는 소주를 댓잔 걸치고 불콰하게 취해서 어스름

짙어 가는 골목을 빠져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그는 한번 읽어보라고 시 한편을 불쑥 내밀

었다. 필자가 고기 맛에 혼을 빼앗겨 허겁대며 소주잔을 비우고 있을 때 옆에서

고기 대신 시를 굽고 있었던 것일까. 그날 <배시내>에서 맛있게 구어진 시를

한번 읽어보자.

일렁이는 황금빛 율동을 지나 배시내로 갑니다
통통하게 알밴 유월의 바람
엎어놓은 사발처럼 들판 가운데 마을이 있습니다
甘川을 끼고 뻗어있는 국도는 은사시나무 가로수
드넓은 선산벌 건너오는 순한 바람에
곧추섰던 눈썹도 가지런히 빗겨 가라앉고
방목의 검은 염소떼 등잔 같은 눈빛
고집 센 채식주의자의 정신을 만납니다
---- [배시내 가는 길] 부분

그를 따라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어딘가 다녀온 뒤에는 어김

없이 시로 재생산되는 여행의 기록들을 읽는 재미와 감동이 더 쏠쏠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편 중에는 시인이 직접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쓴 유형의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작품 하나를 더 읽어보자.

낙동을 가려면 선산에서 910호 지방도를 타야 한다 불꺼진 백양나무 가로수를

지나야 한다 단밀로 가는 낙단교 건너지 않아야 한다 쌍용 주유소 갈림길 지나

공원묘지 위를 연사흘 흩뿌리는 눈발 낙동 가면 무엇이 있나 고드름 달린 倭式

목조 이층 목화다방과 덜컹대는 유리미닫이 약방의 낡은 처방전 밤 아홉시에

벌써 버스는 끊기고 싸락눈이 갈기 세워 골목을 누빈다
- 「낙동 가는 길」부분

시집 『바퀴소리를 듣는다』에 실려있는 여행시 유형의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여행안내 책자에나 실려 있음직한 어투로 '낙동'이라

는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가는 길과 그 주변 풍경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처럼 그의 시편들 상당 부분이 여행경험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시인이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나 풍경묘사가 아니다.

<낙동 가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시인은 '지금, 왜, 이곳에서

식은 재를 뒤적이고 있는가'. '거센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튕겨져나와 지붕 낮은 시골다방의 나른한 유행가 가락을 때묻은 실꾸리에 감고

앉았는가'. 그 이유를 월간 『현대시』(1993년 8월호) '여행시 특집'에 이 시와

나란히 수록된 시인의 짧은 산문을 통해 들어보자.

사실 이런 풍경은 너무 흔한 것. 너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낯설기만 한 것. 낡은 냄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시간의 녹을 벗겨내면 거기 하얗게 드러나는 알미늄의 속살처럼 이 흔한 풍경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삶의 생채기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상처는 또한 얼마나 따뜻한가. 뺨을 부비면 금세 마음은 훈훈해지고 나는 몸을

던져 그 상처의 시간을 끌어안는다.

- 산문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중에서

그런 것이다. 그는 <각질 이룬 시간의 껍질>(「낙동에서」) 벗기고 한때 그곳에

있었을 삶, 마치 빛 바랜 사진 액자와 같은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몸을 던져 그 상처를 끌어안으려 하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항상 그렇게 따뜻하였다. 어린 딸을 대하듯 <소금기

쓰라린 눈으로>(「씨앗 속에」) 비루먹은 내 삶을 지켜보면서 생채기 난 곳을

깊이 끌어안아 주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친형 이상으로 꼼꼼히 챙겨주던 사람이었기에 지금도 나는 그를 알게 된 것을 더할 수 없이 귀한 만남으로 여기고 산다.

3
그는 누구에게나 정이 넘치고 사랑을 베푸는 어진 사람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남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뜨겁게 끌어안아 주는 인품에 먼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그 자신은 누구 못지 않게 상처를 많이 가진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고, 청상이 된 어머니마저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셔서 졸지에 청소년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자기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은 남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줄도 안다'는 말이

있듯이 그 자신이 많이 아파 보았기에 남의 아픔을 나누려 하고 세상의 상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혜안(慧眼)도 갖게 되었으리라.

어쩌면 시보다 더 아름다운 시인의 타고난 성정은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한

어린 딸이 알고 싶어하는 생명의 비밀을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형식으로

쓰여진 「씨앗 속에」라는 작품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 시는 <나무의 상처가 꽃>이라거나 <상처를 통하지 않고 가는 길은 이곳에

없다는 걸>, 그리고 <상처의 힘으로 제 몸에 창을 내는 벽오동>의 비유를 들어

씨앗이 오랜 세월의 추위와 바람을

참고 견디어 낸 후 생명을 꽃피우듯이, '나'를 희생하고 인내함으로써 삶이 더

풍성해진다는 우주적인 생명의 원리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의 시 세계는 그의 삶을 닮아 있다. 그의 시는 각지고 모난 이 세상의 절망과

상처를 잘 어루만져 둥글게 만드는 <상처의 미학>으로 정리된다. 길을 떠나 현장

에 직접 가서 시를 빚어내기에 언어가 신선하고 행간은 힘이 넘친다. 여기, 도저한 낭만성과 빼어난 서정의 울림이 보태어져 그의 시 세계는 더 아름답다.

그의 첫 시집 {황금연못}(민음사, 1992)에 실린 [바퀴에 대하여]를 보면 시인의

낭만적인 기질과 서정성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은빛 굴렁쇠와 아버지의 달구지

바퀴가 서로 겹쳐지거나 어긋나면서 그려내는 풍경은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다.

낭만성과 서정성의 극점에 놓여 있는 첫 시집 {황금연못}이 현실을 초월해버린

이상향의 공간이었다면 두 번째 『바퀴소리를 듣는다』는 현실적 공간으로 더

가깝게 접근하였고, 세 번째 시집 『하늘 우물』(세계사, 2003)은 그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며 신화적 세계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이제껏 세 권의 시집을 내놓았을 뿐이다. 등단도 늦은 편이었지만 첫 시집을 서른 일곱 살이라는 느지막한 나이에 상재했다. 그 후 3년만에 두 번 째 시집을

내어놓고 <주목할 만한 신서정의 시인>으로 평단의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세 번째 시집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묶여졌다. 그 시기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대구와 구미를 매일 출퇴근하던 직장을 그만 두었고 반년동안은 실어증을 앓기도 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받은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타격은 나이가

들수록 떨쳐낼 수 없는 악몽으로 되살아나 발목을 잡았다.

그 영향 때문일까. 세 번째 시집 『하늘 우물』은 전작에서 보아왔듯이 여전히

서정적이지만, 이 시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부드럽고 섬세한 언어로 빚어내는 감칠맛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생명의 황폐함을

드러낸 작품이 눈길을 끈다.

<하늘에도 물앵두 피는 오래된 돌무덤이 있어>, <피울음 깨무는 저 저녁의 장례>(「하늘 우물」), <검은 향기 흰 젖이 되어 여린 목숨들 거두고 있었던 것>(「냄새에 대한 보고서」), <고비산맥의 돌멩이는 다 새들의 무덤이란다>(「죽은 새를

묻어주었다」> 등에서 보듯 일상에 미만해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순간적으로 <아스팔트에 묻어 있는/비명을 깔아뭉개>지만, <앞차가 가졌을 뭉클한 감각이/그대로 내 바퀴에 전해지는>(「비명」), 남의 사소한 죽음조차도 자신의

문제로 깊이 받아들이며 현실의 불길하고 불안한 삶을 다시 돌아본다.

나희덕 시인은 『하늘 우물』에 대해 <반생명적 현실과의 대면을 고통스럽게

치러낸 내면의 기록>으로 읽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자신조차도 <생명과 반생명

의 극단을 오가며 베낀 노래와 신음의 언어>라고 시인의 자서(自序)에서 세 번 째 시집의 성격을 함축해 놓았다. 시인이 보는 세계는 <침몰해 가는 배의 운명>처럼 급박하다. 그래서 <나는 난파된 배의 승객으로서 침몰해 가는 배의 운명을 꼼꼼

하게 기록해 두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민화의 세계를 향하여」)는 고백을 남기고 있다.

4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구미가 떠오른다. 그로 인해 모성의 품안 같고 한겨울

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했던 구미. 그러나 이제 그는 거기 있지 않다. IMF의

무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치기 직전인 1996년 스산한 겨울 20년 동안 한결같이

다니던 직장을 명예 퇴직한 그는 지금 대구에서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하면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대백프라자 뒷쪽에 위치한 작업실로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질항아리 속에 담긴 부레옥잠이 살랑살랑 몸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검은 돌, 푸른 돌, 흰 돌, 누런 돌, 얼룩 돌... 둥글고 각지고, 크고, 작은 돌들은

가끔 소리 지르며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는 요즘도 문인수, 이하석, 송재학 시인 등 '시오리' 동인들과 틈나는 대로

돌밭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질 만한 돌이 되려면 각진 돌은 곤란

하고 둥근 돌>이라야 한다는데 <바위에서 깨어져 나온 각진 돌이 둥근 돌이 되기

까지는 수수만 년 부드러운 물이 어루만져줘야 한다> 고 조용히 말하는 시인의

푸르게 빛나는 눈빛을 보고 있으려니 결국 시를 쓰는 일도 각지고 모난 돌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는 물처럼 터진 껍질 속 상처를 둥글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장옥관 시인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 수상

시집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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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5.08 21:01

    첫댓글 결말에서...<바위에서 깨어져 나온 각진 돌이 둥근 돌이 되기 까지는 수수만 년 부드러운 물이 어루만져줘야 한다>

  • 09.05.08 21:18

    .....는 그 문구의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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