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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요 10:1-6)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요 10: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세월을 아껴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아무렇게나 허비하지 않고, 소중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살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욥기 37:2절을 보면, 욥의 세 친구들이 큰 고통을 당한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왔다가,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욥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을 때, 그때, 그 세 친구들을 따라왔던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고 말했습니다.
위로하겠다고 찾아온 세 친구들이 욥에게, “지금 되어진 모든 일들은 다 너가 저지른 죄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라”고 계속해서 공격하자, 욥은 나름대로,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방어를 했습니다.
논쟁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세 친구들을 따라왔던 엘리후가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해답을 알고자 할 때, 우리의 이성이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으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으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노의 고향과 친척과 어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도망치던 야곱은 한밤 중, 들판에서 잠을 자다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도망쳐나왔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 바로 왕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 5:26-27)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들은 것을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미디안 병사들이 무서워,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찧던 기드온도,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전에 머물던 어린 사무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무엘은 너무 어린 탓에, 처음에는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다시 불렀을 때,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 준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전하셨고, 그 중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는 팔복의 말씀도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으로부터, 솔로몬으로부터,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세상의 소리, 더 나아가, 사탄 마귀의 소리를 들으면, 딴 길로 가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우리의 양심에는 “할까? 말까?”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분명하게 잘못된 길인 줄을 알면서도, 사탄의 소리에 홀리게 되면, 그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발달된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경우에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항상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바로,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예전에는 “개”, “고양이”라고 막 불렀는데, 지금은 조심스럽게 “반려견”, “반려묘”라고 불러야 합니다. 예전에는 “개”나 “고양이”는 집 밖에 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지금의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집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집 밖에 나가면,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반려견”, “반려묘”를 아기 다루듯이 꼭 껴안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애 키우는 것보다도, 더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려견”, “반려묘”가 죽고 못사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인이 “반려견”, “반려묘”를 소중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반려견”, “반려묘”가 주인의 말도 잘 듣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이 “반려견”, “반려묘”를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는데, 그 “반려견”, “반려묘”가 주인의 말은 전혀 안 듣고, 옆집 아저씨 말만 잘 듣는다고 한다면, 그 주인이 좋아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주인은 “반려견”, “반려묘”가 듣든지 말든지, 계속 이름을 불러대기도 합니다. 계속 이름을 부르면서, 그 맛에 살기도 합니다.
외출할 때도, “반려견”, “반려묘”를 오랫동안, 혼자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맡기기도 합니다. 잠깐 외출시에도, “반려견”, “반려묘”가 어떻게 보내는지, 휴대폰에 설치된 앱으로 집안에 있는 “반려견”, “반려묘”를 살펴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주인과 함께 걸어가던 “반려견”이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따라가 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찌 되겠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무리 고와도, 따라가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맛있는 것으로 유혹을 한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큰 집에 산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 집으로 쏙 들어가서 안 나오면 안됩니다.
오직 주인의 음성만을 듣고, 주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인을 바라보고, 주인의 음성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양인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아무리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한다 해도,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아무리 근사한 것으로 우리를 꼬신다해도,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왕이었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대상 14: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블레셋과 싸우러 나갔을 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 패한 블레셋이 전열을 정비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다시 같은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대상 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더니,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가 싸우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요단 강을 건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마주한 첫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다음, 소리를 질렀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 성을 돌기 전에, 여호수아는 혼자, 여리고 성 앞에 가서 섰습니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큰 싸움을 앞에 둔 지도자로서, 염려와 걱정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오직 자기를 믿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큰 일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아마도 큰 걱정거리이었을 것입니다.
잠을 못 이루고, 홀로, 여리고 성 앞에 섰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여호수아는 그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라고 외쳤습니다.
“아군이냐? 적이냐?” “누구 편이냐?”
그때, 그 사람이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 5:14)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씀하시자,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했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모든 일에 자신의 뜻과 생각에 따라 살아가기에 바쁩니다.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의 판단과 지혜로 먼저 결정하고,나중에, 하나님께서 자기가 내린 그 결정을 축복해주시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기보다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결정한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고, 축복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일에 무관심한 것은 불신앙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시간을 내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바빠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이 귀하고 복된 날만큼이라도, 만사를 제쳐놓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있으면, 듣기 싫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편 81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인간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자, 계속해서 인도하시는 애끓는 하나님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보게 됩니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시 81:8-14)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무엇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십니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이미 충분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신과 백성들 사이에 대화의 통로를 열어 놓으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말씀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 시대의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모세나 여호수아, 야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분명하고 세밀한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혼자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도해주셔야 합니다.
개발이 되어 있지 않는 동네일수록, 밤길이 무섭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는 밤길을 갈 때, 앱을 켜면, CCTV 관제센터에서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 CCTV 모니터를 자세하게 지켜보는 앱을 사용중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세밀한 돌봄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누군가의 관심과 돌봄과 동행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말씀하시는 세 번째 이유는, 믿음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들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필요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신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55: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좋은 것을 먹을 수 있고,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며 새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귀를 열어,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생명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