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환자 헌신한 두 간호사 노벨평화상 추천
서울 마포갑의 노웅래, 마산합포의 최형두 의원
소록도의 두 천사 국회의원 109명 아름다운 동참
최형두 의원(국민의힘, 마산합포)과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갑) 은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위해 43년간 헌신한 마리안느 스퇴거(88세)와 마가렛 피사렉(87세,사진), 두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서를 노벨평화상 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 두 의원들은 지역구가 전라도가 아닌 의원들이지만 카톨릭신도회원으로 당파를 떠나 이심전심 함께 뜻을 모아 더불어민주당 김두관,고용진,이해식,인재근의원등 48명, 국민의 힘 김선교,서범수,이달곤,송언석,하영제,조해진의원등 53명,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무소속의원등 109명의 국회의원들을 동참시켜 두 간호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했다.
한국 정치의 흑막속에서도 참 좋은 일에 국회의원들이 기꺼이 동참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형두의원은 지난 2019년 7월,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추천위원회 위원장인 김황식 전 총리를 수행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간호협의회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함께 지지를 호소하였으며, 2021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두 사람을 추천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를 졸업 후 한국 정부가 요청한 다미안재단 의료진 일원으로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의 치료에 헌신했다. 다미안 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자 이들은 환자들 곁을 계속 지키기로 결심하고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간호 이외에도 열악한 환경개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사들조차 중무장하던 시절, 맨손으로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공중보건과 복지향상을 위해 공중 목욕시설, 결핵센터, 정신병원, 시각 장애인 시설 등을 세웠다. 환자의 자립을 돕기 위해 농경지를 매입해 나눠주기도 했다.
이들 두 간호사는 지난 2021년 국제간호협의회(ICN) 플로렌스나이팅게일국제재단(FNIF)으로부터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는 국민훈장(모란장), 호암상 사회봉사상, 만해대상 실천 부문 등을 수상했다. 마리안느는 고지선, 마가렛은 백수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으며 2016년에는 대한민국 명예 국민이 됐으며 대한간호협회 명예 회원이기도 하다.
1962년과 1966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파견되었다가 공식적인 파견이 끝난 뒤에도 소록도에 남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봤다.
한평생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다가 건강이 악화하자 2005년 11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편지 한 통을 남겨두고 조용히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소록도에는 이들 두 천사의 사랑꽃이 해풍에도 시들지 않고 있으며 문둥병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흥땅을 밟으면 붉은 흙이 해변의 햇살과 어울려 한국의 자연에서 느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서하고 있다.
한하운시인은 1920년 3월 20일 함경남도 함흥군 덕천면 쌍봉리(현 함흥시 쌍봉리)에서 지주 한종규(韓鍾奎)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 때 함흥 읍내(함흥면)로 이사하여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고, 13세에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17세 되던 1936년에 한센병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학업에 계속 전념하여 이리농림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세이케이(成蹊)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22세 되던 1941년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북경대학' 농학원 축목학계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43년에 함경남도도청 축산과에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1944년 사직하고 한센병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
1948년에 월남해서 서울 명동 등을 떠돌다가 1949년에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1949년 잡지 『신천지』에 나병의 고통과 슬픔을 노래한 「전라도 길」등 시 13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을 가게 된다. '신천지'로 안내한 사람은 이병철(李秉哲)[7]이란 인물로 한하운은 1949년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펴내면서 더욱 문둥병 시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975년 사망하기 전까지 인천시 부평구 동암지역에서 양계단지를 운영하다가 이승을 하직했다.
필자는 부평 양계단지를 찾아 한하운시인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는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