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적산(隱跡山)은 최고봉인 상은적산(392.9m)과 하은적산(305m)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13.5km의 산줄기이다.
암팡지면서 장쾌하고 수려해서 산꾼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드러운 육산에다가 어느새 기암과 바위벼랑이 출몰하는 산세는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산정의 트인 전망대에선 월출산에서 별매산을 거쳐 두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호남의 젖줄인 유유한 영산강을 바라볼 수 있다.
주지봉(490.7m)과 문필봉, 그 뒤로 월출산(808.7m)의 기암이,오른쪽으론 월각산(456m)을 지나 장대한 흑석지맥이 품을 펼치고 있다.
함정굴은 옛날에 짐승 사냥을 위해 함정을 파놓은 곳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용의 형상으로 기우제를 지낸다는 용지봉과 구멍 바위를 지나면 도선국사가 수학한 곳이기도 한 옥룡암(玉龍庵)터가 나온다.
옥룡암은 1628년(인조 6)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상은적봉을 지나면 동쪽으로 사모관(紗帽冠) 형상의 기암인 관봉(冠峰·296m)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길은 남북종주코스 외에 탈출로.
불치(佛峙)는 ‘불현(佛峴)’, ‘부치고개재’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갯마루에 부처를 모신 당집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
우리는 여러사정을 감안하여 북쪽에서 남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은적산 13km 남북종주 산줄기가 영산강가에 멈춰서 건너편의 무안군 일로읍 소댕이와 마주하는 지점이 들머리.
그렇게 하므로해서 서호면 방향 탈출로를 다양하게 열어 놓아 날머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호면 엄길리의 철암산(142m) 7부 능선 암벽에 매향(埋香)과 관련된 21행 118자가 음각(陰刻)된 글자바위가 있다.
1344년(고려 충혜왕 5)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 제1309호인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이다.
매향은 불교 풍습으로서 고려 말에 민간의 결사 형태로 유행하였으며 미륵부처의 도래를 기원하면서 향나무를 갯벌에 묻는 일종의 불교행사이다.
산행궤적
약 11km를 5시간동안 걸은 셈.
네비에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 산162-1'을 입력하여 남해고속도로 서영암Ic에서 내렸다.
산행채비를 갖추고...
하은적봉 1.2km이정표에서 ...
입산통제 안내판을 접한다. 통제만이 만능은 아닐 터.
서호면에서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은적산 북남종주는 13.5km의 거리.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영산강은 4대강 사업을 찬성한 유일한 강이였다.
야트막한 산이라고 무시한 일행들이 시작부터 된비알을 맞이해 헥헥거리다...
군데군데 전망대에서 뒤돌아보며 쉼을 한다.
.
하은적봉에 올랐다.
300m 높이의 산에서 이만한 조망은 흔치 않을 것.
정상 우측으로 조금 비켜선 바위전망대에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는 맛은 정말 꿈결같다.
그리고 나아갈 진행방향으로 오르내리는 능선길과 멀리 상은적산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인다.
십여년 만에 다시 인증샷을 하고...
여성회원들의 모습도 담았다.
산길을 이어가면서 우측으로 열린 조망에 넋을 빼앗기고...
계단을 내려서서...
다시 보는 영산강.
영산강에 떠있는 작은 섬은 가래섬.
뚜렷한 능선길에...
항암효과에 탁월하다는 부처손이 바위 전면에 붙어있다. 부처손은 특히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막는 데 뛰어나다고 한다.
암과 방사선 노출이라는 큰 고통을 덜어주는 약초이니 부처님의 손길이란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진달래가 반겨주는 등로에...
지난 산행 때와 마찬가지로 춘란이 예쁘게 피었다.
예전보다 개체수가 많이 줄은 건 사람들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나보다.
사방이 트인 능선길은...
내내 수려한 조망을 선사하고...
우리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등네미님의 열정은 어제에 이어 연거푸 산행을 한다니 놀랍기만하다.
두꺼비를 닮았나?
이어지는 능선길에...
이름모를 예쁜 야생화
어디쯤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본 하은적산.
그리고 고도를 뚝 떨구는 불치(해발 약100m)에 내려섰다.
육각정자에서 일일회원을 포함한 회원들을 소흘마을로 탈출시키고(화살표 뒤 임도로...),우리는 화살표 방향으로 다시 산길에 접어든다.
불치에서 하은적산 방향의 이정표
불치에서 상은적산 방향의 들머리와 이정표
관봉정상과 하은적봉이 3.5km로 거의 비슷하다.
좌측 잡목사이로 범상치 않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살짝 당겨보니 관을 닮은 관봉이다.
관봉갈림길에서 관봉을 다녀온 일행들을 조우하였다. * 이정표에 관봉1.7km는 잘못된 거리표시로서,GPS상 0.7km를 확인했단다.
나는 또다른 목적을 위하여 관봉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다시 길섶에서 예쁜 야생화를 만났다.
살짝 내려섰다가 관봉을 올라서면...
관봉의 위세가 범상치 않아...
바위 암봉을 올라섰더니 이 가슴 뻥뚫림 환희를 어이할꼬?
氣가 느껴지는 관봉에서...
한동안 머물며...
이풍진 세상을 관조한다.
관(冠)을 닮았으니 관봉
주능의 하은적봉 방향.
상은적봉
바위 틈새의 수줍은 작은 진달래까지.
이제 돌아 내려갈 참.
내려와서 역광으로 올려다 보는 관봉의 모습
그리고 관봉 아래 너럭바위에서 한동안 숨을 고른다.
너럭바위 아래에서 까꿍!~~
돌아 내려서니 구멍바위였다.
내려서는 길 모개나무재는 1.3km
하산길 잡목 사이로 철암산을 살핀다.
살짝 당겨본 철암산
동백인 듯 아닌 듯한데, 무척 냄새가 나는 나무다.
도로에 내려서다.
내려서서 돌아본 산길은 동백군락이 맞넹.
모개나무재 드날머리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고...
정자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다시 한번 올려다보는 산길입구엔 노란 개나리가 예쁘게 피었다.
아스팔트를 걸어 내려오다 '관봉사(冠峰祠)'표석을 발견하고 들어가본다.
'강면함평노공운기공적비'와 '관봉사묘정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관봉사는 함평 노씨 시조 문충공을 비롯한 선조들을 봉안하였다.
잠긴 문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 밀어본다.
솟을삼문 밖에도 '효열부인남평문씨기적비'가 있고...
'소촌고가 자우당(慈雨堂)' 표석이 서 있는 뒤로 돌담길이 아름답다.
돌담길도 아름답지만 길바닥도 꾸며진 모습이다.
'자우당' 당호의 집이 어딘가 하였더니 이 집인 모양이다.
오원석 형님이 "부모가 이 집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시다 작고하셨는 모양이다."라고 추측을 한다.
이제 철암산자락의 보물 1309호인 '엄길리암각매향명'을 찾아간다.
도로 좌측으로 낮은 산자락의 철암산이 보이고, 그 뒤로 특이한 인상착의의 문필봉 주지봉이 보인다.
농로를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그제서야 만나는 안내판. 안내판 뒤로 영암서호중학교가 보인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새로 마련된 작은 주차장도 있다. 안내판엔 400m의 거리
안내판이 가리키는 데로...
조금만 오르면 '엄길리암각매향명(奄吉里岩刻埋香銘)'
고려시대 어간에는 엄길리 일대 해안가의 간척이 이루어지지 않아 엄길리 마을까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매향 풍습은 대개 이런 입지를 갖추고 있는 곳에서 그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매향은 불교 풍습으로서 고려 말에 민간의 결사 형태로 유행하였으며 미륵부처의 도래를 기원하면서 향나무를 갯벌에 묻는 일종의 불교행사이다
이러한 매향 행사가 진행되면 그러한 경과와 발원자들을 비문에 새겨두는데 그러한 것을 매향비라 한다
보통은 돌을 다듬어 석비에다가 매향과 관련된 내용을 음각하기 마련인데,이곳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넓직한 바위 사면에 그대로 글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제작 연대는 고려 충혜왕 5년(1344)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고성의 삼일포 매향비보다는 조금 후대에,경남 사천에 남아있는 매향비보다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매향비 혹은 매향명 가운데에서 세 번째로 이른 것이라 한다
커다란 바위 우측의 석문안이 글자가 새겨진 곳.
석문을 통과하는 지점의 벽면에는 총 18행 129자가 음각되어 있다
다행히 덮개바위로 인해 풍우로부터 피해를 덜 입을 수 있었기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일견 어지럽게 새겨진 낙서같아 보이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해서 글자 식별이 가능하다.
중간에 '석가열반후이천삼백(釋迦涅槃後二千三百)', 줄 바꾸고 우측으로 '사십구년갑신팔월십삼일(四十九年甲申八月十三日)'이 확인된다.
관심이 많은 오원석 형님이 석문안의 자잘한 새김 글자를 확인하고 있다.
학구파 오원석형님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하나하나 촘촘히 새겨진 글자
매향명이 있는 바위에서 바라보는 은적산과...
월출산 방향
'엄길리 암각매향명'에는 매향의 주도자. 연대. 위치. 집단. 발원자가 모두 밝혀져 있다
매향명의 내용은 '고을말북촌ㅇ을포(古乙末北村ㅇ乙浦)에서 '용화초회공양(龍華初會供養)'을 목적으로 '미타계내천만인(彌陀契內千萬人)'이 발원하였다.
용화회'에서 공양할 침향을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발원자는 천을미분·김대ㅇ, 김금물·김동화·신일소 등이고,
화주·각생·급암·진암 등의 승려 이름도기록되어 있다
안내판
작은 주차장으로 내려서서 뒤돌아본 모습.
좌측에 보이는 바위가 매향명이 있는 바위.
함정재로 향하면서 뒤돌아보니 흡사 故노무현대통령이 뛰어내린 부엉이바위를 빼다 박았다. 저 바위를 한세바위라고도 하던데...
아스팔트도로에 나오니 안내판이 붙어있고, 그 지점은 바로 '서호보건지소'
'엄길리지석묘군' 안내판도 있다.
첨성대를 닮은 돌탑과...
서호중앙교회 사이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또 돌아보니 한세바위 외에도 또다른 범상치 않은 바위들이 보인다.
철암산을 당겨보니 보면 볼수록 김해 봉화마을의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를 닮았다.
함정재 곡각도로 주차장에 우리버스가 보인다.
버스정류장은 윗괴음. (여기서도 철암산의 위용이 느껴진다.)
막 뒷풀이가 시작된 듯.
(함정굴재 은적산 들머리)
'설알 솥장사 햇 좉장사'했다며 뽀시시 웃던 천성산님.
알고보니 산행 끝부분을 욕심껏 채우지 못하고 조금 스쳤기 때문에 하는 너스레였지만 그건 천성산님의 본심이였다.
그 분의 열정을 알고나면 그건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함정굴재 들머리의 이정표
개인사정으로 이렇게 식어빠진 산행기를 올리니 감흥은 반으로 줄었다.
산행기를 올리는 지금 이 시간 20대 국회의원 개표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 어느 재벌총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치인이 제일 삼류라고...
우리나라 정치인은 국민들 평균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수립된 우리나라 임시 정부이다.
1910년 경술년,어영부영하다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 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깢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무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 상 화>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그 날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틈을 엿보고 있습니다.
두 장의 야생화는 댓잎현호색인 것 같습니다.
건강은 괜찮겠죠? 그 날은 산에도 올라가지 못했으니...
아는 병이니만큼 우쨌던지 잘 달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