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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급증하는 아동 영양실조가 예방 가능한 5세 미만 아동의 사망을 야기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하자(Hajjah), 알 후데이다(Al-Hudaydah), 암란(Amran) 등 예멘 전역에서 영양실조 유행철마다 대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2년 1~10월 사이, 영양실조 치료를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시설을 찾은 아동은 총 7,597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예멘에서 영양실조는 6~9월 사이 급증하지만 2022년에는 그 시기가 4~5월로 당겨졌다. 이번 유행은 12월까지 이어질 것이라 전망된다.
조기 유행에 더해 입원 치료를 요하는 중증 영양실조 아동 환자가 치솟아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시설에 과부하가 걸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급성 영양실조와 설사, 폐렴, 빈혈 등 합병증을 앓는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긴급 대응 활동을 개시해야 했다.
호흡곤란을 겪는 영양실조 아동과 보호자. ©Athmar Mohammed/MSF
예멘에서 아동 영양실조는 고질적인 문제다. 매년 이어지는 계절성 유행은 농가의 작황부진으로 인한 흉작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2014년 말 전쟁이 고조되기 전부터 관측된 현상이지만, 내전이 지속되며 그 직간접적 여파로 취약 인구의 식량 안보 등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했다.
예멘에서 영양실조 환자가 급증하는 데에는 크게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1. 식량 접근성 차단
경제 위기로 물가가 상승하며 예멘 내 수많은 가정이 식량을 충분히 구하지 못하고 있다. 8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일자리는 고사하고 안전한 거처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멘 화폐인 리알(Riyal)의 가치는 하락세에 접어든 반면 식료품·교통·유류비는 치솟고 있어 식량 접근성이 저하됐다.
네 살배기 손자 압둘라(Abdullah)를 데리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아브스(Abs) 병원에 여러 번 찾아온 할아버지 쇼란 모하메드(Shoran Mohamed)는 예멘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쇼란의 손자는 영양실조 및 여러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압둘라를 데리고 아브스 병원에 여러 번 찾아왔어요. 20일 전 퇴원했는데 증상이 악화해 다시 오게 됐습니다. 영양실조 치료식이 구비된 집 근처 의료시설엔 갈 수가 없는 상황인데, 여기는 진료를 보고도 돈을 받지 않아 부담이 없어요. 압둘라의 아버지는 다른 지역에 있고 아이의 엄마와 할아버지인 제가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식량으로 아이를 먹이려고 하고 있어요. 우유조차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합니다.”_쇼란 모하메드 / 영양실조 아동의 할아버지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아브스 종합병원의 영양실조 환자 입원 치료식 센터에서 4살 아동 환자를 살피고 있다. ©Jinane Saad/MSF
2. 필수 의료서비스 접근성 차단
예멘의 의료시스템은 붕괴 일보직전이다. 현지 보건부의 제한된 재원, 의료물자 부족, 불규칙하거나 지불되지 않는 의료진 급여 등으로 다수의 정부 운영 의료시설이 운영을 중단했다. 고유가 등 이미 힘든 상황에서 의료시스템까지 마비된 상황은 필수적인 응급 치료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따라서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잦으며, 이는 영양실조 등 조기에 예방할 수 있는 합병증을 야기한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알 살람 카메르(Al-Salam-Khamer) 병원이 있는 암란 지역에서는 5월 말부터 중증 급성 영양실조 환자가 꾸준히 증가했다. 영양실조 입원 치료식 센터의 병상가동률은 9월에 396%를 기록했다. 동시에 응급환자 또한 20% 증가했다. 2022년 1월부터 9월 사이, 31명의 환자가 중증 급성 영양실조로 입원 후 사망했다. 이 중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병원에 너무 늦게 찾아와 합병증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환자였다. 중증 급성 영양실조로 알 살람 병원을 찾은 이들은1차 의료시설이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않는 인근 지역에서 암란 지역까지 왔다. 알 후데이다(Al-Hudaydah) 지역도 마찬가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아드다히(Ad-Dahi) 지역 병원의 응급실을 지원하고 있는데, 1월부터 10월 사이 1,902명의 영양실조 및 합병증을 앓는 아동 환자가 입원했다.
3. 만연한 빈곤과 열악한 생활 환경
영양실조 환자 급증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열악한 생활 환경을 꼽을 수 있다. 하자(Hajjah)주의 아브스(Abs) 병원에서는 제대로 된 거처나 수입이 없고 식량 접근성이 차단된 국내실향민이 다수 거주하는 아브스 인근 지역에서 오는 환자를 주로 받고 있다. 1월부터 9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아브스 종합병원 내 영양실조 입원 치료식 센터에는 2,087명의 영양실조 및 관련 합병증을 앓는 아동환자가 입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대부분 생후 23개월에서 6세 사이의 아동이었다.
국내실향민은 고용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어요. 또 이 지역에 깨끗한 식수가 부족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예요. 깨끗한 식수가 없으면 설사 환자가 증가할 수도 있어요. 질병의 확산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위생용품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요.”_사담 셰이아(Saddam Shayea) /아브스 병원의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책임자
4. 지역사회의 보건인식 부족
현재 영양실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산전후관리에 대한 보건인식 제고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산전후관리가 전무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실정은 고위험 임신이나 출산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산모나 신생아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2022년 아브스 병원에서는 산과병동에 입원한 산모 중 50% 이상이 영양실조를 앓고 있었다.
과거에 이곳에서는 산전관리를 받는 임신부가 드물었다. 2021년,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 중 단 10%만이 최소 한 건의 산전 진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산전 관리는 임신부가 영양실조를 앓는지 확인하여 적절한 영양실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면 신생아와 영유아가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을 상당히 낮출 수 있으며, 개선된 임신 결과(pregnancy outcome)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모유 수유나 아동 정기 예방접종의 중요성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이 현저히 부족하다. 영양실조 초기 증상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 영양실조 발견 및 예방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아브스 종합병원의 영양실조 입원 치료식 센터에 입원한 아동을 살피고 있다. ©Mohammed Al-Shahethi/MSF
5. 인도적 대응의 공백
올해, 지원액 삭감으로 인해 수많은 1차 의료기관이 운영을 중단하거나 의약품 등 물자 부족 사태를 겪었다.
아드 다히 병원으로 중증 급성 영양실조를 앓는 한 살배기 딸을 데려온 아버지 아흐메드 아부 알 가이스(Ahmed Abu Al Ghaith)는 이 여파를 여실히 체감했다.
네 아이 모두 영양실조에 걸렸어요.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영양실조 치료 센터로 데려갔는데 증상이 더 심각한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했어요. 영양실조 치료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아픈 아이들에게 치료식이 먼저 돌아갔어요.”_ 아흐메드 아부 알 가이스 / 영양실조 아동의 보호자
일부 보건 프로그램의 운영 중단에 더해, 영양실조 및 식량, 식수위생 서비스 지원 활동의 공백도 특히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더욱 악화하는 영양실조 및 합병증의 위험을 끌어 올렸다.
영양실조 환자 급증에 대응하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예멘 21개주 중 13개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대부분 의료시설에서 합병증을 앓는 영양실조 아동 환자의 수가 급증했는데, 이에 따라 병상 가동률이 100%을 훨씬 상회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영양실조 환자 급증과 취약계층 이환율 및 사망률을 줄이고자 영양실조 활동 프로그램을 현격히 확대하고 있으며, 1차 의료서비스 지원 및 보건증진 활동 규모도 확대했다.
암란주 알 살람 병원 소아과에서는 6월부터 영양실조 입원 환자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 대응계획을 마련하여 기존 113개 병상을 213개로 증설했다.
또한 알 후데이다주 아드다히 지역에서는 급증하는 급성 영양실조 환자에 대응하기 위해 70병상 규모의 영양실조 입원 치료식 센터를 신설하고 5세미만 아동에게는 보건소에서 해당 센터로의 인계 절차를 무상으로 지원하여 영양실조 치료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했다. 11월 한 달 사이 합병증을 앓는 영양실조 환자 282명이 신설된 영양실조 센터에 입원했다. 또한 아드다히 지역에서는 영양실조 유행 발생 시 조기에 파악하고 현지의 영양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수 있게끔 영양 감시(nutrition surveillance) 체계를 강화했다.
하자주에서는 아브스 병원의 병상 가동률이 180%에 육박할 정도로 영양실조 아동 환자가 대규모로 유입되어 현지 보건부가 사용하던 공간을 영양실조 입원 치료식 센터로 전환해 센터 규모를 확대했다. 더 나아가 알 후데이다의 알 카미스(Al-Khamiss) 보건소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멘에서 영양실조는 특히 예방 가능한 5세 미만 아동의 사망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현지 보건당국과 인도적 구호단체, 의료구호단체 등 각기 활동 주체는 종합적인 대응 활동을 전개해 예멘 전역의 영양감시체계의 범위와 효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1차 의료기관의 공백을 메워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하고, 지역사회의 보건인식을 신속히 제고해 지역사회 수준에서 영양실조 조기 증상을 발견해야 한다. 또한 영양실조에 특히 취약한 5세 미만 아동을 위해 예방접종 캠페인 또한 전국적으로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