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사상적 변천으로 본 중국근대화 백년사”
리영희 평전/[9장] 두번째 언론사 해직, 진보지식인으로 2010/06/12 08:00 김삼웅리영희 ‘중국연구’의 밑받침이 되는 글 중의 하나인 <사상적 변천으로 본 중국근대화 백년사 - 서구 문명 극복의 백년> 역시 200자 원고지 200매에 가까운 평론이었다. 몇 대목을 발췌한다.
오늘날의 사회주의 중국의 형성으로 일단락되는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문명의 ‘부정과 극복’이라는 것으로 두드러진다.
이것은 서구문명의 단순한 이식이나 심지어는 ‘서구화’ 그 자체를 근대화의 목표와 내용으로 여긴 일본, 터어키 등을 비롯하여 오늘날 후진국 근대화의 일반적, 역사적 유형에 속하는 많은 국가들과 대조적인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다. 심지어 같은 사회주의권이면서도 소련의 그것과도 다르다는 데서 중국 근대화 과정의 사상적 특성이 있다. 따라서 중국 근대화 과정과 결과적 성격은 그것이 서구문명을 낳은 자본주의적 사상에 대한 사회주의적 성격이라는 것만으로는 해석이 끝나지 않는다.
해석은 어떻든 그와 같은 특성의 근거는 중국의 ‘4천년 문화’그 자체에 있다.
근대화 백년을 통해서 중국문화는 표면상 패배를 당하면서도 공격해 오는 모든 외래사상에 지배되지 않고 그것을 동화시켜 버렸다. 4주(四周)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취급한 중화사상은 극히 내쇼널리틱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현대의 국가적 개념에서가 아니라 그 지리, 문화적 상황으로 해서 그것은 내쇼널리틱하고 자기 충족적이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특성은 중국문화가 유럽의 기독교 문화나 불교의 인도, 알라신의 아랍문화 등에 비해 지극히 현세적이며, 따라서 정치주의적이라는 성격에서 비롯한다. 그 이상과 내용의 면에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현세적, 정치주의적 사상이라고 한다면 중국 근대화투쟁은 이 현세적 선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사상을 토대로 해서 진행되어 왔다.
크게 간추려서 아편전쟁, 태평천국난, 제국주의침략, 잇달은 패전, 의화단사건, 신해혁명(청조타도), 공화정부혁명, 5.4문화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백년의 근대화 운동은 외세에 의한 지배의 강화와 내부적 사회의 분해 작용만을 촉진했을 뿐이다.
4천 년의 자랑스러운 문명이 중국 전통사상만으로나 양무론(羊務論)과 같은 피상적인 서구과학, 기술문명의 도입만으로써는 그 유지,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자 중국인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외생(外生) 사상을 채용하게 되었다.
중국 현대화의 사상적 과정에서 우리는 그 기본적 자세가 서구문명의 수용, 부정, 극복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마르크스사상의 수용으로써 중국의 근대화를 이루는 동시에 ‘반유럽’의 사상으로 자기를 높이는 역사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상적 기조가 같은 근대화를 이룩하면서도 ‘유럽화’의 길을 걷는 소련, 일본, 터어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 때의 후진국과 판이한 오늘의 중국을 낳게한 것으로 해석된다.
항일전과 그후의 과정은 세계에 하나의 경이로 비치고 있는 현대 중국의 건설과 함께, 북경을 북미합중국의 제38대 대통령 닉슨이 찾아가는 것으로 일단 막이 내린다. 닉슨이 그곳에서 만난 모택동과 주은래와 비행장에 마중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5.4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110년 전 성왕(聖王)과 백성이 일체가 되는 ‘대동(大同)’사상을 품고 공상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태평천국의 손자이기도 하다. (주석 16)
주석
16) 앞의 책, 107~120쪽. 발췌.
오늘날의 사회주의 중국의 형성으로 일단락되는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문명의 ‘부정과 극복’이라는 것으로 두드러진다.
이것은 서구문명의 단순한 이식이나 심지어는 ‘서구화’ 그 자체를 근대화의 목표와 내용으로 여긴 일본, 터어키 등을 비롯하여 오늘날 후진국 근대화의 일반적, 역사적 유형에 속하는 많은 국가들과 대조적인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다. 심지어 같은 사회주의권이면서도 소련의 그것과도 다르다는 데서 중국 근대화 과정의 사상적 특성이 있다. 따라서 중국 근대화 과정과 결과적 성격은 그것이 서구문명을 낳은 자본주의적 사상에 대한 사회주의적 성격이라는 것만으로는 해석이 끝나지 않는다.
해석은 어떻든 그와 같은 특성의 근거는 중국의 ‘4천년 문화’그 자체에 있다.
근대화 백년을 통해서 중국문화는 표면상 패배를 당하면서도 공격해 오는 모든 외래사상에 지배되지 않고 그것을 동화시켜 버렸다. 4주(四周)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취급한 중화사상은 극히 내쇼널리틱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현대의 국가적 개념에서가 아니라 그 지리, 문화적 상황으로 해서 그것은 내쇼널리틱하고 자기 충족적이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특성은 중국문화가 유럽의 기독교 문화나 불교의 인도, 알라신의 아랍문화 등에 비해 지극히 현세적이며, 따라서 정치주의적이라는 성격에서 비롯한다. 그 이상과 내용의 면에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현세적, 정치주의적 사상이라고 한다면 중국 근대화투쟁은 이 현세적 선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사상을 토대로 해서 진행되어 왔다.
크게 간추려서 아편전쟁, 태평천국난, 제국주의침략, 잇달은 패전, 의화단사건, 신해혁명(청조타도), 공화정부혁명, 5.4문화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백년의 근대화 운동은 외세에 의한 지배의 강화와 내부적 사회의 분해 작용만을 촉진했을 뿐이다.
4천 년의 자랑스러운 문명이 중국 전통사상만으로나 양무론(羊務論)과 같은 피상적인 서구과학, 기술문명의 도입만으로써는 그 유지,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자 중국인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외생(外生) 사상을 채용하게 되었다.
중국 현대화의 사상적 과정에서 우리는 그 기본적 자세가 서구문명의 수용, 부정, 극복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마르크스사상의 수용으로써 중국의 근대화를 이루는 동시에 ‘반유럽’의 사상으로 자기를 높이는 역사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상적 기조가 같은 근대화를 이룩하면서도 ‘유럽화’의 길을 걷는 소련, 일본, 터어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 때의 후진국과 판이한 오늘의 중국을 낳게한 것으로 해석된다.
항일전과 그후의 과정은 세계에 하나의 경이로 비치고 있는 현대 중국의 건설과 함께, 북경을 북미합중국의 제38대 대통령 닉슨이 찾아가는 것으로 일단 막이 내린다. 닉슨이 그곳에서 만난 모택동과 주은래와 비행장에 마중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5.4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110년 전 성왕(聖王)과 백성이 일체가 되는 ‘대동(大同)’사상을 품고 공상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태평천국의 손자이기도 하다. (주석 16)
주석
16) 앞의 책, 107~120쪽.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