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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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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스크랩 영화포스터 표현의 짧은 역사
사전트 추천 0 조회 950 12.03.30 00:0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영화에 관한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가 어린 시절 알프레도 아저씨가 일하는 극장의 영사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영사실 벽에는 늘 영화포스터가 이것저것 붙어 있는데,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카사블랑카]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서로 볼을 댄 채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유명한 포스터다. 그런데 포스터가 컬러다. 물론 새삼스러울 거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컬러 포스터가 광고하는 대상인 영화는 사실 흑백이다. 컬러 영화는 1920년대 말에 이미 등장했지만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그러니 영화포스터는 영화가 탄생된 뒤 50년 이상, 흑백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컬러로 광고해온 셈이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문제 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포스터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다. 스타의 아름다운 얼굴이든 영화 속 가장 빛나는 장면이든 그것이 관객을 강력하게 유혹해야 한다.

 

 

 

 

 

그리하여 영화포스터는 색상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늘 과장된 채 디자인되었다. 이것은 영화포스터가 감독보다 셈이 더 빠른 스튜디오의 제작자나 극장주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환경 아래에서 제작된 영화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보의 과다’다. 우선 가장 중요하다고 해야 할 영화 제목이 커다랗게 부각된다. 흔히 붉은색 띠를 배경으로 흰색 글자로 디자인하거나 또는 글자 자체를 두껍게, 강렬한 색상으로 디자인한다. 여기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한 컷 들어가고, 또 주인공 남녀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감독과 영화배우의 이름이 꽤 큰 글자로 추가된다. 부족하다 싶으면 영화를 설명하는 자극적인 문구까지 더해진다. 마지막으로 영화사의 로고와 유명한 제작자나 스태프의 이름, 그리고 어떤 경우는 최악의 장식적인 패턴까지….

 

이렇게 디자인된 복잡한 포스터를 보면, 한 장의 포스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견하고 관여했을지 알 만하다. 또 디자이너의 수준 또한 당대 최고가 아닌 것은 물론, 그저 그런 평범한 디자이너가 맡았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영화포스터는 익명으로 디자인되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포스터이므로 이런 포스터에는 주인공이 없다. 모든 정보가 서로 튀려고 난리를 부린다. 과거 우리나라의 극장 간판을 떠올려보라. 온갖 정보로 가득 찼던. 이것은 세계 영화포스터의 이런 전통으로부터 기인한다. 또 영화를 판매하는 최종 단계인 극장에 이르면 감독의 의도와는 더욱 벗어나 포스터의 수준은 더욱 떨어지기 마련이다. 영화 역사에서 포스터만큼은 영화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민 케인] 같은 혁신적인 영화도 포스터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분명 영화포스터는 공공 캠페인, 연극, 공연 포스터와 비교하면 대단히 낙후되었다.

 

 

 

 

그러던 역사에 1950년대 중반 혜성처럼 나타난 디자이너가 있었다. 바로 솔 바스다. 그는 뛰어난 타이틀 시퀀스 디자이너였을 뿐만 아니라 포스터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화를 홍보하는 모든 프로모션 인쇄물에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영화포스터에서 스타의 얼굴을 과감히 빼버린 용기까지 발휘했다. 이 혁신은 독립 제작자와 감독이 부상이라는 배경으로부터 비롯된다. 막강했던 스튜디오의 힘이 약해진 것도 한몫 했다. 오토 프레밍거, 알프레드 히치콕, 스탠리 큐브릭 같은 감독은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영화 언어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그들은 영화에 관한 전권을 휘두르며 영화포스터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영화포스터에서도 진부한 방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서서히 영화포스터에는 무엇이 주인이고 무엇이 보조인지 분명해졌다.

 

 

 

 

 

 

유럽에서는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의 등장과 함께 포스터는 미학적으로 폭발적인 진화를 이루게 된다. 자크 타티는 [윌로씨의 휴가], [나의 아저씨] 같은 회화적인 포스터를 통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누벨바그의 작가주의 감독들 역시 그들의 영화 미학만큼이나 뛰어난 포스터로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 이미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독보적인 포스터를 제작한 바 있다. 그 흐름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이들 유명한 영화의 유명한 포스터 이미지는 후대 영화들에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또 하나 반드시 영화포스터 역사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은 폴란드와 체코, 쿠바와 같은 공산권 국가들의 포스터다. 상업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이 국가의 디자이너들은 서유럽과 미국의 영화를 수입하면서 그 영화포스터가 갖고 있는 원래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포스터를 창조했다. 그들은 스틸 사진을 쓰거나 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놀라운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렇듯 지역성 강한 영화포스터가 등장한 것은 지금까지도 대단히 드문 현상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포스터라는 미디어 자체의 특성을 살린 뛰어난 작품도 나오긴 했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영화포스터는 진부한 방식을 채택했다.

 

좀더 전면적인 진보와 그것의 안정된 정착은 1960년대 후반 할리우드의 영화가 변화하면서부터다. 존 카사베츠, 로만 폴란스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앨런 같은 재능이 넘치고 자기만의 영화 세계가 뚜렷한 감독들은 포스터에서도 설명적이지 않은 단순한 모더니즘의 방식을 채택했다. 그 전 영화들은 어떻게든 영화의 매력을 관객이 놓치지 않게 하려고 전전긍긍함으로써 정보 과다와 미학적 진부함을 낳았다. 그에 반해 할리우드 뉴 시네마의 감독들은 과감한 생략과 압축의 방식을 채택했다. 주역이 되는 하나의 이미지를 크게 부각하고, 제목 이외에는 글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지런히 정돈한 지금의 스타일이 이때 확립되었다. 특히 [악마의 씨], [매쉬], [대부], [비열한 거리]처럼 영화 장면과는 관계없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며 회화적인 표현이 나타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오늘날 영화포스터는 각 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감독과 디자이너가 무한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투자자의 영향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스타의 인물사진을 부각하는 디자인이 가장 보편적인 양식인 것도 변함없다. 그렇지만 영화포스터 디자인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단순해졌으며 표현 방식이 다양해졌다. 결정적으로 타이포그래피의 운용에서 놀라운 진보가 있었다. 웬만한 포스터에서 세련됨을 느끼는 이유는 역시 타이포그래피의 우수성과 단순해진 구성에 있다. 여기에 대중의 뇌리에서 잊어지지 않을 핵심 이미지 하나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디자인이 우수해지고 포스터 자체가 독립된 미디어로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과거의 영화포스터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그 포스터를 보면 추억이 떠오르고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결코 세련된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스터에 있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미지와 그 영화가 우리에게 주었던 감동과 즐거움 때문이다. 그것이 배우의 얼굴이건 회화성 짙은 그림이건 은유로 가득한 상징물이건 관계없이 말이다. 그래서 [시네마 천국]을 보며 영사실이나 극장 벽에 붙은 옛날 영화포스터를 보면,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아 저거 [카사블랑카] 포스터다’ 하며, 그걸 본 것만으로도 즐거운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다. (글/김신, 월간<디자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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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5.15 21:15

    첫댓글 고맙습니다..

  • 12.06.08 01:03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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