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요일, 잔뜩 날씨는 흐렸지만 눈이나 비는 안 내리고 바람도 약합니다. 제주도 특유의 안개도 별로 없어 한라산이라도 싫컷 쳐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행군노정을 이승악오름로 정도 잡고 나섰습니다. 이승악 오름 입구로 올라가는 탐방로 3.5km도 아주 근사해서 언제 날잡고 이 길따라 걸어보는 것도 아주 좋을 듯 합니다.
이승악오름 입구에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아주 춥지않아서 다소 가볍게 입고나온 터라 아무래도 오름행은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다시 돌아나왔지만 영 아쉽습니다. 돌아오다 보니 삼나무슾도 개방이 되어있어 간단하게 태균이하고 서로 기념사진만 주고받고...
서귀포로 빠져서 왠지 서귀포항 쪽에 뭔가 있을 것 같아 그 쪽길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차몰고 지나만 다녀서 미처 보지못했던 해안가 쪽에 멋진 산책로가 있어 우리를 반깁니다... 그럼에도 어제의 산책은 저를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분명 경기파장이 올라온 것 같은 준이의 상동언어가 거의 미칠 지경으로 몰아넣습니다. 상동언어야 수 년간 해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데 요즘은 그 상동언어를 하면서 저에게 자꾸 밀착을 합니다.
상동언어 반복은 마치 아주 오래된, 알랑 드롱이 주연한 어떤 한 영화 장면처럼 거의 그런 수준입니다. 그 영화에서 형사였던 주인공을 납치해다가 세뇌시키기 위해 정신적 학대의 한 방법으로 어떤 큰 강당같은데 앉혀놓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 같이 넣어서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타악기를 계속 두드려대는 장면... 그 영화장면이 요즘 부쩍 생각납니다.
요즘 준이의 상동언어 반복은 거의 그 장면 수준인데, 지금도 '그게 아니야'를 수 백번쯤 반복하고 있습니다. 수 백번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부쩍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의 상동언어하고는 형태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이럴 때마다 영상으로 찍어서 경기가 얼마나 왔는지 확인해 보는데 영상을 보니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요즘은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깝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소리를 제게 강요하는 제스츄어를 하고 이를 거부하면 제게 화내는 언어폭력과 감정폭력 두 가지를 다 보입니다.
이제는 드디어 완이 옷 속에 손을 넣어서 하지말아야 시도까지 하니, 이 사태가 빨리 끝나야 할텐데, 그럼에도 사태가 빨리 끝나는 사안이 아니기에 이제는 저자신에게 걱정이 됩니다. 준이를 보내고 안보내고의 문제보다 제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싫습니다.
과거에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서 무섭게 폭력을 휘두르던 안이는 신체적 폭력 유형이라면 준이는 상동언어와 극심한 감정기복이라는 감정폭력입니다. 안이의 신체폭력은 돌출될 때 피하고 대응하면 되지만 준이의 감정폭력은 종일 이어집니다. 안이는 돌려보낼 부모가 있으니 그래도 제가 더이상 감당이 안될 때 돌려 보낼 수 있었지만, 준이는 그럴 처지도 안되니 그게 더 암담하게 합니다.
요즘은 매순간 제 정신줄을 잘 잡지않으면 저자신에게나 태균이에게 문제가 될 것 같아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또 다져봅니다. 그래서 어제의 서귀포항과 서복 8경 감상은 억지스런 면이 있었을지언정 너무 좋았습니다. 진시왕을 위한 불노초를 구하고자 서복이라는 사람이 제주도 서귀포까지 왔다고 해서 서귀포라는 지역명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우스광스럽습니다.
서복은 진시왕 때 굉장한 사기꾼으로 불로초를 찾는다는 것도 사실 왕한테 큰 사기를 친 것인데 그 덕에 서귀포가 만들어졌다니 우리의 세포조직 속 미토콘드리아처럼 원래의 목적은 사기이거나 횡령 성격인데 결국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진화된 것처럼, 서귀포도 서복이라는 사기꾼에게 감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수은이 불로초인줄 알고 마구 먹어대서 말년에는 각종 정신병에 시달리며 불노초에 목을 멘 진시왕도 그래봐야 겨우 50년 생을 살고 갔을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애타게 갈망하는 것에의 숨어있는 약점이나 결핍된 부분을 항상 되돌아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감각의 문제를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중요하지만 재밌는 사실, 우리가 보통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색깔이 바로 내 머리에서 수용하거나 조합하기 가장 어려운 색이라는 것! 그래서 자폐아이들이 특정 색깔에 엄청 집착하고 그 색깔 장난감이나 물건을 계속 들고 다니면 그 색깔에 대한 시각처리가 후두엽에서 잘 되고있지 않다는 말해줍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색깔에의 노출이 더 많이 되어야겠죠.
지적수준이 떨어질수록 더 화려하고 색색깔로 자신을 치장하고 화장을 짙게 하는 것도, 시각정보처리 기능이 약할수록 더욱 화려한 색깔에 끌리게 되는 것이 원인입니다. 자폐증을 막 벗어난 여자아이들이 과도하게 화려한 치장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요, 서복이 서귀포에 와서 반한 풍경들이라고 하니 볼만하기는 했습니다.
그렇게 서복 8경을 돌고나서 암벽 아래 시민들을 위한 담수탕 시설이 있어 거기까지 내려가서 신나게 놀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태균이가 내려오질 않습니다. 분명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니 이걸 피해서 어딘가에서 기다리는 것 같아 한참 기다리다 올라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태균이. 일단 아이들을 차에 태워놓고 서복기념관부터 다시 부지런히 돌아보고, 서복기념관가기 전에 둘러보았던 서귀포항 쪽 공원까지도 뒤졌으나 오리무중! 혹시 화장실에 있을까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남자화장실까지 들여다보았지만 여기도 없고. 큰일이다 싶어 차를 빼서 서귀포항 도로를 끝까지 달려보았으나 보이지 않는 태균.
급한 마음이 되서 처음에 주차했던 곳으로 다시 와보니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서있는 태균이. 담수탕 쪽으로 아예 안 내려왔으니 찾아헤맸던 시간까지 족히 1시간인데.. 도대체 1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도 어딘가 사라졌다 제자리로 잘 찾아오더니... 과연 어디를 다녀왔던걸까요? 미스테리입니다.
어제는 괜히 마음도 위축되고 준이가 버거워지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에 일기조차 버거웠는데... 오늘 어떤 청년의 어머님이 격려의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보충제를 참 열심히 하시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졌다고 기쁜 글을 자주 보내주긴 했지만... 이 글을 받으니 괜히 눈물이 울컥! 아마 준이때문인 듯 싶습니다. 저는 준이 하나 바꾸어주지 못하는데...
카페 글 중에 사회공헌에 관한 글 읽었습니다.
대표님~ 대표님 덕분에 저희 가족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는데 요즘 아이 감정폭발이 거의 줄어서 네식구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감사함을 글로 다 전하지 못하네요...
제 친구도 주야간 하는 남편이 늘 신경이 날카롭고 욱해서 힘들어했는데 멜라토닌 먹고 온화해졌다고 고맙다고 매일 전화가 옵니다 ㅎ
생각하시는 만큼 대외적인 활동 못하고계시겠지만 덕분에 여러 가정이 살아갑니다.
감사한 마음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준이가 하루 빨리 안정되었음 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태균씨의 한시간이 못내 궁금해 집니다. ^^
준이의 탈출 경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네요.🙏🍒
고생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