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왕비사당
대덕읍 연지리 3구는 연동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입니다.
그 마을에는 아주 낡고 조그만 사당이 있습니다. 너무 볼품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런 사당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저 사당이 무슨 사당인가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왕비사당이지요.”
“왕비사당, 이름 한 번 거창하군요.”
“옛날 이 마을에 다녀가신 임금께서 사랑했던 처녀의 혼령이 모신 곳이니까 당연히 왕비사당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오, 그런 유래가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비와 바람에 시달리고 씻기어서 낡고 허름해 보이지만 임금님과 마을 처녀와의 사랑을 담은 유래가 있다면 재미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연동마을은 바다와 가깝습니다. 옛날에는 남녘 해안 쪽에는 왜구의 침입이 자주 있었습니다. 왜구는 일본에서 몰래 건너온 아주 못된 해적들입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아서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예사로 합니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왜구의 노략질로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닷가는 워낙 먼 곳이라 때 없이 난리를 겪기도 합니다.
당시 임금님은 왜구로 인해 가족을 잃고 많은 손해를 입은 지역을 찾아가 위로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오신다네.”
“그렇다는구먼, 오래 살다 보니까 나랏님을 뵈올 때가 있겠네.”
“임금님이 이 먼 곳까지 오시다니…….”
연동마을 사람들은 기대가 컸습니다. 임금님은 저 멀고도 먼
곳에 계시기 때문에 일생 동안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오신다니 기쁘고 기대가 될 수밖에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야겠지.”
“임금님이 쉬실 곳을 깨끗하게 준비도 하고…….”
“혹시 임금님께서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시면 어쩔까.”
“그것을 대비해서 얌전하고 착한 처녀를 골라 시중도 들게 해야 할거야.”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드디어 임금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임금님은 멋있게 치장한 백마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십니다.
그 뒤에는 많은 벼슬아치와 군인들이 줄줄이 따라 옵니다.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군사들의 창과 칼이 햇볕에 반짝입니다. 참, 보기에 좋습니다.
“야! 정말 굉장하구나.”
“어서 마중을 나가도록 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어른들과 촌장을 앞세우고 마을 입구로 나가서 절을 올립니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임금님은 따뜻한 말씨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이제부터 지방마다 군사를 준비해 두었다가 왜구들이 행
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임금님.”
“또한 저희 마을을 찾아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과인도 착한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즐겁소.”
“임금님과 신하, 군사들은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였습니다. 임금님은 아주 흡족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술도 권하면서 유쾌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문득 임금님은 시중드는 한 처녀를 눈 여겨 보았습니다.
처녀는 날씬하고 예쁜 데다 시중드는 행동이 얌전합니다.
“저 처녀는 예쁜 데다 일하는 것도 맘에 드는구나.”
“우리 마을의 처녀로, 허씨 성을 가졌습니다. 마음씨도 아주 착합니다.”
촌장이 자랑을 보탰습니다.
임금님은 그 말을 듣고 신하를 향해 명령했습니다.
“여봐라! 오늘은 피곤하니 이 마을에서 자고 가야겠다. 그러니 숙소를 준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임금님.”
“그리고 저 처녀를 내 후궁으로 삼을 테니 그렇게 알라,”
신하들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촌장은 임금님께서 허씨 처녀를 후궁으로 삼는다는 말에 신이 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퍼뜨렸습니다.
“세상에! 허낭자는 이제 왕비가 되겠네.”
“아니야, 왕비와 후궁은 다른 거야.”
“다르긴 뭐가 달라. 그게 그것이지.”
“어떻든 우리 마을 처녀가 임금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맞는 말이네.”
임금님의 시찰은 끝났습니다. 임금님은 나랏일로 항상
바쁩니다. 그래서 급히 대궐로 올라갔습니다. 연동 마을의 허낭자는 임금님께서 날을 잡아 대궐로 부르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임금님은 한양으로 가시자 많은 일들에 분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나 먼 남쪽 연동마을의 허낭자를 점차 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허낭자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임금님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바람이 언뜻 불어도 혹시나 하고 문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마을 쪽으로 달려가는 말이 보이면 임금님의 사신이 아닌가 달려가 봅니다.
날이 가고 달이 흘렀습니다. 계절이 수십 번 바뀌었습니다.
야속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임금님의 소식은 영영 없습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허낭자는 점점 나이가 들어갑니다. 한 번이기는 하지만 임금님의 후궁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혼인도 할 수가 없습니다.
10년, 20년, 30년…….
임금님은 허낭자를 까마득히 잊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결국 허낭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서 허낭자를 고이고이 장례 지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허낭자의 오매불망 기다리다 죽은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지었습니다.
사당은 관죽전 동편에 지은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당을 왕비사당이라 하고 매년 정월 보름날이면 제사를 드렸습니다.
연동리. 그 마을은 왕비사당에 정성껏 제사를 지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연동 사람들은 해마다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매년 풍년이어서 생활이 아주 넉넉했습니다.
허낭자는 슬프게 죽었지만 그 혼령은 지금도 연동마을을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구전에서는 왕비사당의 주인공은 해상왕 장보고의 딸이었다고 전해오기도 합니다.
장보고의 전성기에 왕실과 혼약을 했던 딸이 아버지의 실각과 함께 잊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슬프고 가슴 아픈 전설은 세월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남녘 바닷가의 호젓한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왕비사당’은 찾는 이들의 감성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날 것입니다.
정남진 설화. 엮은이: 김석중
연동에 그런
설화가있었다니ᆢ
이따가봐야겠고ᆢ
으째 그란디
장보고 딸이라면
장낭자가 아닐까!
김석중씨 이전에 桂沙公의 저서 <계사소고집> 장흥의 마을 유래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 바람.
왕은 괜히 처녀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실언을 했네요. 처녀의 가슴은 기다림으로 타들어 갔겠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이야기같습니다.
대덕읍 연지리에 그런 슬프고 가슴 아픈 설화가 자리하고 있었군요.잘보고 갑니다
장보고 관련전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장보고 이름이 일본 사기에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보고 이름조차도 이름인지 별칭인지 확실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본문 내용은 아무래도 설화의 인물을 장씨라 하지를 않고, 허씨라고 한것은 엮자의 판단이라고 여겨집니다. 무게감을 허씨로 둔 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보고 딸 설이 있다 정도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엮자 : 김석중
전남 장흥 부산 용반리 출생이다. 장흥고, 대불대 관광산업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부터 82년까지 기독청년활동으로 민주회복인권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전남지역 기독청년회장, 호남 NCC인권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1976년부터 82년까지 새농민문화상,관광수필문학상,호국문예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9년에는 전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바람』, 『꿈꾸는 물새』, 『거미눈』,『장흥의 민속』, 『구름걷어내기』, 『청산에 우짖는 저 새는』, 『탐진댐 수몰이야기』, 『속깊은 우물』, 『누군들 더 따뜼한 남쪽마을이 그립지 않으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