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해 전! 남쪽지방에 사시며 농산물을 팔아주신 어느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용건을 묻자 농가를 도우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와이셔츠를 선물하고 싶다는 겁니다.
귀한 마음에 감사하여 마음만 받겠노라 하자 그분 왈! 사위가 양구를 다녀왔는데 정말 오지 마을이라 했답니다. 그분의 말에 잘못 아신 것 같다며 “양구에서 춘천까지는 50분이면 간다고 했더니” 아니랍니다.
사위의 말이 양구가 얼마나 오지 마을이든지, 집과 집사이의 거리가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산골 동네였다는 겁니다. (짐작하기는 방산면을 다녀가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오지 마을에서 사역하시니 백화점에서 와이셔츠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결국 선물로 보내오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분이 양구를 곡해(曲解) 하신 것이라 생각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양구가 산간 지역이구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교회 봉투 인쇄를 을지로에 자리한 인쇄소에 의뢰했더니 봉투 제작을 마친 업체에서 택배를 보내려고 알아봤나 봅니다.
처음 의뢰하면서 견적받은 비용으로 입금하려 했더니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택배사에서 양구는 도서 산간지역으로 분류가 되어 추가 요금이 발생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양구 주민으로 살아가는지도 햇수로 9년차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사는 동네가 도서 산간지역으로 분류된다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비용의 문제이기 보다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어서 전화하신 분에게 양구가 산간지역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재확인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잠시 후 그분으로부터 연락이 오길 변함없다며 입금액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일이 있어서 서울을 가게 되면, 오래전 양구에서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은 하나같이 양구를 오지 중에 오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지금의 양구는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서 2시간 안에 도착하는 거리임을 강조하면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강원도 하면 대부분 산비탈에 자리한 밭을 떠올리지만, 제가 사는 양구는 제법 넓은 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 양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한반도의 배꼽인 정중앙에 자리했다는 점입니다. 남쪽의 끝인 마라도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정중앙에 자리한 지역이 바로 양구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주로 지냈던 갈릴리 지역은 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보면 변방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그러기에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임을 전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46 中)라는 나다나엘의 말을 듣게 됩니다. (나사렛과 갈릴리 지역은 동일 권역입니다. 하나 성경 참조)
세상 역사는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하지만 하나님 나라 운동은 반대 현상을 보여줍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보자면 철저하게 실패한, 실패자를 통하여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견인토록 하는 통로로 사용하심을 구약시대 모세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공주의 아들 신분에서 목동이라는 비천한 신세로 수직하강했던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진행해 가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한가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그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느냐?”입니다.
“에브라임 산악 지대에 엘카나라는 수브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삼상1:1 上, 공동번역 성경)
산악지대에 살던 엘가나의 부인 한나를 통해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선지자가 태어나 쓰임 받게 되는 성경의 역사는 변방과 지방이라는 출신 성분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는 위안과 소망을 품게 해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린도전서 1: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