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7일 부활절 설교
**부활은 신앙의 핵심((요 20:24-29)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진짜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까 의문시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형 선고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성경적 증거들이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보고 그 공포와 두려움을 못 이겨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마26:56)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봤다,(마27:32)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 사람들도 있었다.(마27:57)
-다른 이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서 ‘부활’을 전할까 봐 경비병이 예수님의 무덤을 24시간 삼엄한 경계를 서며 그 돌무덤을 굳게 지킨 일도 있었다.(마27:65)
-예수님이 돌무덤에 안치되고 인봉한 것을 본 자들이 있었다.(마27:66)
-이것 말고도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확실히 돌아가셨다는 무수히 많은 증거가 남아 있다.
*예수님 부활에 관하여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보여준다.
-구약에서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 이야기(왕상 17:17),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 이야기(왕하 4:32), 신약에서는 회당장 야히로의 12살 된 딸 이야기(막5:21), 나사로 이야기(요11:17) 등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들의 다시 ‘살아남’과 예수님의 ‘부활’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난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죽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영원히 죽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증거도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빈 무덤과 천사의 증언이다.(눅24:4)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신 것이다.(요20:11)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일이다.(눅24:13)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일이다.(눅24:36)
-이것 말고도 성경의 무수한 곳에서 예수님의 부활 증거가 발견된다.
-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라면 예수님의 부활 또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줄 믿는다.
-우리가 확실히 받아들여야 할 ‘부활’은 예수를 믿는 ‘신앙의 핵심’이다.
-이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이자 신앙의 뿌리라고 하겠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산증인이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부활이 확정된 것이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가? (예~~~)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따라서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나도 반드시 부활하리라”(따라서 하시라)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아니고 이렇게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성령님을 보혜사로 믿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불행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도마는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보았노라” 했을 때 완강하게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도마의 이 말은 그 마음이 얼마나 완고함과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을 수 없었던 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에게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도마가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불신앙의 동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만일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을 때 그 주님을 만났더라면 적어도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도마가 주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실증주의적 사고 때문이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가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이처럼 실중주의란 만져보고 체험해보고 확인해보고서야 믿겠다는 주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체험을 더 중시하는 불신앙이다.
*기독교는 봄으로 믿는 종교가 아니고 믿음으로 보는 종교며, 알고 나서 믿는 종교가 아니고 믿음으로 알아지는 역설적 종교이다.
-우리 예수님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완곡한 불신앙에 빠져있는 도마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마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도마의 불신앙적 사건이 있은지 여드레가 지났을 때 예수님은 다시 찾아 오셔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 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도마가 주님의 부활사건 믿기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도마는 마침내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보았다.
-그리고 생생히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로써 모든 의심의 안개가 말끔히 걷힌 도마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이 고백은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으로 실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진 열매였다.
*(예화)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를 발견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강하게 말렸다.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있는 거야. 저것을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하며 지렁이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부활을 이야기 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말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증거를 보여라. 그러면 믿겠다.”
-이런 사람들은 끝내 천국의 하늘을 보지 못한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불신앙의 교만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아직도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부활의 생명역사에 대해 확신이 없는가?
-만일 그렇다면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 마음에 믿음만 생기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부활사건의 신비는 아무 의심 없이 믿어지게 된다.
-문제는 부활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므로 말씀을 보고 듣는 삶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13~14의 말씀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볼 때 부활의 예수님 앞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은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는 고백이다.
-오늘 부활절에 우리 심령에 찾아오신 예수님, 우리의 주님께 이 같은 신앙고백으로 늘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