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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Khandha-vagga)
제22주제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제6장 속박 품
취착의 양상 경(S22:56)
Upādānaparipavatta-sutta
3. “비구들이여, 취착(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의식의 무더기이다.”
4. “비구들이여, 만일 내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와 그것의 네 가지 양상을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였다면,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결코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난 나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와 그것의 네 가지 양상을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였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각각에 대한 네 가지 양상이 있는가? 나는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물질인가?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 – 이를 일러 물질이라 한다. 음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질이 일어나고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물질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잘 도를 닦는 자들이니, 잘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가 있나니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이라 한다.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느낌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잘 도를 닦는 자들이니, 잘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인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에 대한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이라 한다.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인식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잘 도를 닦는 자들이니, 잘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형성[行]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도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에 대한 의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심리현상들이라 한다.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심리현상들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심리현상들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심리현상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형성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잘 도를 닦는 자들이니, 잘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형성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식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식, 소리에 대한 의식, 냄새에 대한 의식, 맛에 대한 의식, 감촉에 대한 의식, 법에 대한 의식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의식이라 한다.
정신∙물질이 일어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일어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자들은 잘 도를 닦는 자들이니, 잘 도를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Saṃyutta Nikāya 22
6. Upayavagga
56. Upādānaparipavattasutta
Sāvatthinidānaṃ. “Pañcime, bhikkhave, upādānakkhandhā. Katame pañca?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Yāvakīvañcāhaṃ, bhikkhave, ime pañcupādānakkhandhe catuparivaṭṭaṃ yathābhūtaṃ nābbhaññāsiṃ,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Yato ca khvāhaṃ, bhikkhave, ime pañcupādānakkhandhe catuparivaṭṭaṃ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th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 pe …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Kathañca catuparivaṭṭaṃ? Rūpaṃ abbhaññāsiṃ, rūp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rūpanirodhaṃ abbhaññāsi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vedanaṃ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nirodh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Katamañca, bhikkhave, rūpaṃ?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 rūp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rūpaṃ. 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āhāranirodhā rūp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 … pe …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Ye suvimuttā te kevalino.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Katamā ca, bhikkhave, vedanā?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edan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edanāy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 … pe … evaṃ vedanā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 pe …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Katamā ca, bhikkhave, saññā? Chayime, bhikkhave, saññākāyā—rūpasaññā, saddasaññā, gandhasaññā, rasasaññā, phoṭṭhabbasaññā, dhammasaññā. Ayaṃ vuccati, bhikkhave, saññā. Phassasamudayā saññāsamudayo; phassanirodhā saññ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ññ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 pe …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Katame ca, bhikkhave, saṅkhārā? Chayime, bhikkhave, cetanākāyā—rūpasañcetanā, saddasañcetanā, gandhasañcetanā, rasasañcetanā, phoṭṭhabbasañcetanā, dhammasañcetanā.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 Phassa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phassanirodhā saṅkhār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saṅkhāre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saṅkhārān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saṅkhāre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saṅkhārānaṃ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Ye suvimuttā, te kevalino.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Katamañca, bhikkhave, viññāṇaṃ? Chayime, bhikkhave, viññāṇakāyā— cakkhuviññāṇaṃ, sotaviññāṇaṃ, ghānaviññāṇaṃ, jivhāviññāṇaṃ, kāya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viññāṇaṃ. Nāmarūp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Ye suvimuttā, te kevalino.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ā”ti.
Saṃyutta Nikāya 22
Connected Discourses on the Aggregates
56. Phases of the Clinging Aggregates
At Savatthi. “Bhikkhus, there are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What five? The form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feeling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perception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volitional formation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consciousnes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So long as I did not directly know as they really are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in four phases, I did not claim to have awakened to the unsurpassed perfect enlightenment in this world with its devas, Mara, and Brahma, in this generation with its ascetics and brahmins, its devas and humans. But when I directly knew all this as it really is, then I claimed to have awakened to the unsurpassed perfect enlightenment in this world with … its devas and humans.
“And how, bhikkhus, are there four phases? I directly knew form,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I directly knew feeling … perception … volitional formations … consciousness,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And what, bhikkhus, is form? The four great elements and the form derived from the four great elements: this is called form. With the arising of nutriment there is the arising of form. With the cessation of nutriment there is the cessation of form. This Noble Eightfold Path is the way leading to the cessation of form; that is, right view … right concentration.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form,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are practising for the purpose of revulsion towards form, for its fading away and cessation, they are practising well. Those who are practising well have gained a foothold in this Dhamma and Discipline.
“And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form,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through revulsion towards form, through its fading away and cessation, are liberated by nonclinging, they are well liberated. Those who are well liberated are consummate ones. As to those consummate ones, there is no round for describing them.
“And what, bhikkhus, is feeling? There are these six classes of feeling: feeling born of eye-contact, feeling born of ear-contact, feeling born of nose-contact, feeling born of tongue-contact, feeling born of body-contact, feeling born of mind-contact. This is called feeling. With the arising of contact there is the arising of feeling. With the cessation of contact there is the cessation of feeling. This Noble Eightfold Path is the way leading to the cessation of feeling; that is, right view … right concentration.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feeling,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are practising for the purpose of revulsion towards feeling, for its fading away and cessation, they are practising well. Those who are practising well have gained a foothold in this Dhamma and Discipline.
“And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feeling …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 As to those consummate ones, there is no round for describing them.
“And what, bhikkhus, is perception? There are these six classes of perception: perception of forms, perception of sounds, perception of odours, perception of tastes, perception of tactile objects, perception of mental phenomena. This is called perception. With the arising of contact there is the arising of perception. With the cessation of contact there is the cessation of perception. This Noble Eightfold Path is the way leading to the cessation of perception; that is, right view … right concentration.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 As to those consummate ones, there is no round for describing them.
“And what, bhikkhus, are volitional formations? There are these six classes of volition: volition regarding forms, volition regarding sounds, volition regarding odours, volition regarding tastes, volition regarding tactile objects, volition regarding mental phenomena. This is called volitional formations. With the arising of contact there is the arising of volitional formations. With the cessation of contact there is the cessation of volitional formations. This Noble Eightfold Path is the way leading to the cessation of volitional formations; that is, right view … right concentration.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 … As to those consummate ones, there is no round for describing them.
“And what, bhikkhus, is consciousness? There are these six classes of consciousness: eye-consciousness, ear-consciousness, nose-consciousness, tongue-consciousness, body-consciousness, mind-consciousness. This is called consciousness. With the arising of name-and-form there is the arising of consciousness. With the cessation of name-and-form there is the cessation of consciousness. This Noble Eightfold Path is the way leading to the cessation of consciousness; that is, right view … right concentration.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consciousness,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are practising for the purpose of revulsion towards consciousness, for its fading away and cessation, they are practising well. Those who are practising well have gained a foothold in this Dhamma and Discipline.
“And whatever ascetics and brahmins, having thus directly known consciousness, its origin, its cessation, and the way leading to its cessation, through revulsion towards consciousness, through its fading away and cessation, are liberated by nonclinging, they are well liberated. Those who are well liberated are consummate ones. As to those consummate ones, there is no round for describing them.”
잡아함경 제2권
41. 오전경(五轉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5수음이 있으니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상수음(想受陰)·행수음(行受陰)·식수음(識受陰)이니라. 나는 이 5수음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사실 그대로 아나니, 곧 색(色)과 색의 발생[色集]과 색에 맛들임[色味]과 색의 재앙[色患]과 색에서 벗어남[色離]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식의 발생·식에 맛들임·식의 재앙·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色)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존재하는 색은 모두가 4대(大)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으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受)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6수신(受身)이 있으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受), 귀·코·혀·몸·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로서 이것을 수(受)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觸]의 발생이 수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수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여섯 가지 수를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이것을 수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수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수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수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고,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수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수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想)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상신(想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想), 귀·코·혀·몸·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으로서 이것을 상(想)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상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상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상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상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이것을 상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상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상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상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 있으니, 곧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 귀·코·혀·몸·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로서 이것을 행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접촉의 발생이 행의 발생이니, 이렇게 나는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행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행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행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행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 있으니, 곧 안식(眼識)과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으로서 이것을 식신(識身)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신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명색(名色)의 발생, 이것을 식의 발생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 맛들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식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의 재앙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어떻게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가? 곧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식에서 벗어남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비구들아,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알고 본 뒤에 탐욕을 여의는 방향으로 향하면 이것을 바르게 향하는 것이라 한다. 만일 그가 바르게 향하면 나는 '그는 들어왔다'고 말한다.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사문 바라문이 색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본다면, 그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며,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해탈한다면 곧 순일하게 될 것이요, 순일하게 되면 곧 범행이 이루어질 것이며, 범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것을 떠나 자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 한다.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5) '비구들아, 만일 색·수·상·행을 떠나서 식이 머무르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이라는 내용이 원문에서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6) 원문에 '내지(乃至)'로 생략된 내용은 위의 {종자경(種子經)}을 참조하라.
雜阿含經
SA 41 (四一) 五轉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我於此五受陰,五種如實知——色如實知,色集、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是受、想、行、識如實知,識集、識味、識患、識離如實知。
「云何色如實知?諸所有色,一切四大及四大造色,是名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集如實知?於色喜愛,是名色集,如是色集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云何色患如實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離如實知。
「云何受如實知?有六受身——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如是受如實知。云何受集如實知?觸集是受集,如是受集如實知。云何受味如實知?緣六受生喜樂,是名受味,如是受味如實知。云何受患如實知?若受無常、苦、變易法,是名受患,如是受患如實知。云何受離如實知?於受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如是受離如實知。
「云何想如實知?謂六想身。云何為六?謂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想,如是想如實知。云何想集如實知?謂觸集是想集,如是想集如實知。云何想味如實知?想因緣生喜樂,是名想味,如是想味如實知。云何想患如實知?謂想無常、苦、變易法,是名想患,如是想患如實知。云何想離如實知?若於想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想離,如是想離如實知。
「云何行如實知?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是名為行,如是行如實知。云何行集如實知?觸集是行集,如是行集如實知。云何行味如實知?謂行因緣生喜樂,是名行味,如是行味如實知。云何行患如實知?若行無常、苦、變易法,是名行患,如是行患如實知。云何行離如實知?若行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行離,如是行離如實知。
「云何識如實知?謂六識身——眼識身,耳、鼻、舌、身、意識身,是名為識身,如是識身如實知。云何識集如實知?謂名色集,是名識集,如是識集如實知。云何識味如實知?識因緣生喜樂,是名識味,如是識味如實知。云何識患如實知?若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如是識患如實知。云何識離如實知?謂於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如是識離如實知。
「比丘!若沙門、婆羅門於色如是知、如是見;如是知、如是見,離欲向,是名正向。若正向者,我說彼入。受、想、行、識亦復如是。若沙門、婆羅門於色如實知、如實見,於色生厭、離欲,不起諸漏,心得解脫;若心得解脫者,則為純一;純一者,則梵行立;梵行立者,離他自在,是名苦邊。受、想、行、識亦復如是。」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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